-HALF of ME-
주말 저녁인데 가게의 테이블은 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가게의 위치가 번화가에 서 너무 안쪽에 있는 탓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단골들이었다.나도 단골 중 하나였다. 안주가 맛있기도 하지만, 재료가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다.특히 고추가.
’'권 사장, 오랜만에 왔네.”
내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부터 물건을 샀던 고마운 단골손님이 날 반겼다.모름지 기 인생은 상부상조다.내 단골이라면 나도 단골이 되는 게 당연하지.게다가 고추 하 나만 봐도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게 확실했다.주문하고 나서 우민 재가 가게를 둘러보며 물었다.
"네 손님이야?"
"응 내 가게 처음 열었을 때 첫날 와서 물건 사주신 분이셔.초반에 매상이 거의 없 어서 거래처 뚫느라 고생할 때 이분이 내 첫 단골이 되셨는데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 웠는지모른다.”
"여기 사장님도 전에 다니던 단골집이 있으셨을 텐데?"
"없었어.사장님도 그때 가게를 처음 오픈하셨던 거라.”
둘이 만나면 서로 처음 시작한 장사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 걱정을 털어놓곤했었 댜 그래서 이곳이 계속 장사하기를 바란다. 처음 1년간은 매출이 들쑥날쑥해서 고생 하셨지만,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매달 매출이 고르게 잡힌다고 했다.
“사장님 되게 똑똑하셔.외국에 유학도 다녀오시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셨대.자기 도 마혼 넘어서 요리를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더라. 원래 좋아하긴 하셨지 만,취미일 뿐전업이 될거라곤생각한 적이 없대.”
"하던 일은 왜 그만두셨는데?"
-HALF of ME- 5 / 181
"정교수 되는 일로 배신도 당하고 사람에 대해 환멸 같은 걸 느꼈대.거기도 원가 문 제가많나 봐. ”
우민재는바테이블뒤쪽에서요리중인사장님을보며 내말을들었다.
“사람 일은 참 알 수가 없어. 우리 엄마 말이야, 아빠하고 결혼할 때는 다들 눈 호강 하고 살겠다며 주변에서 부러워했었대. 그런데 남편은 바람나 집 나가고, 아들 새끼는 밖에서 사고만 치고, 돈은 없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마트에서 일하고. 다들 과거에 은행 다니며 잘나가던 예쁜 아가씨가 왜 이렇게 됐느냐며 불쌍하게 여겼대.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비웃지 않아.오히려 다들 부러워해.자기만 위해주는 새 남편 만났지, 아들놈 은 정신 차려서 돈 좀 벌지.엄마 말로는 걱정거리라곤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그것
뿐01래.“
한 잔 마신 양주에 벌써 취하기라도 했는지 내 얘기가 술술 나왔다.말하고 보니 그 아줌마 부러워죽겠네.
"네가 효자라서 어머니가 편하시겠다.”
효자라.불편한 단어였다.난 일부러 시선을 피하곤 다른 말로 화제를 바꾸었다.
"네 인생도 바뀔 거야.”
진짜 취했나 보다.돈으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우민재가 나보다 훨씬 나은데 이런 소릴 하다니.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괴로워도 10년, 20년 뒤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거야.”
"지금 괴롭다고 말한 적 없어.”
"안웃잖아.”
꼬치구이와 소주 두 병이 나왔다.알탕은 아직 끓이는 중인가 보다.차가운 술을 마 시고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 먹으면 이것처럼 끝내주는 것도 없다.
"마음이 괴로운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 야, 걱정하지 마.내가 꼭 너웃게 해줄 테 니까. ”
-HALF of ME- 6 / 181
우민재는 내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대꾸했다.
"너나 챙겨. 너야말로 지금웃지 못하잖아. 택인이가 영영 안 깨어날까 무서워서. ” 이 새끼가 남의 정곡을. 난 마시려던 술잔을 탁 내려놨다.
"맞아,무서워. ”
물론 인정할 건 인정한다. 무섭다. 그 빌어먹을 고딩이 안 깨어나면 어쩌지? 앞으로 월 해야 하지? 반장 형이 막연히 나쁜 놈이란 걸 알았지만,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데? 막막한 상황에서 생각나는 계획은 고작 이런 것뿐이었다.
"만약 내일도 몇 시간이 확 줄어버리면 반장 형 새끼 잡아다가 뚜드려 패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거야. ”
“그것도괜찮지. ”
반대할 줄 알았던 우민재가 내 뜻에 동참했다.
“그 사람이 택인이한테 무슨 짓을 했다면,법으로 처벌하는 게 옳아• 하지만,이미 한 번 법을 피해 갔으니 또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가 둬놓고 패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다만. ”
그가 조건을 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그 사람 잘못이 완전히 드러난 다음에 할 일이야. 추측만으로 사람을 잡아다 가 무슨 짓을 했는지 추궁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이야. ”
I'답답하니까 그러지. ”
난 투덜거리며 안주를 뒤적였다.
”이젠 모든 게 의심이 가고 이상해 보여. 여기 툭,저기 툭,이상한 게 하나씩 주변에 널리는데 이게 다 반장 형하고 연관이 있을 것 같아. 택인이가 그냥 반장 형에 반응해
서 착각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헷갈려. ”
"네 느낌이 맞겠지. ”
-HALF of ME- 7 / 181
그는 이번에도 내 편을 들어줬다.우민재답지 않게 왜 저래? 의심이 드는 한편 기분 이 좋았댜괜히 입가가 을라가려는 걸 감추려고 술잔을 들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의혹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할 문제야. 여기저기 흩어진 의혹이 하나씩 쌓이면 내가 미친 건가 싶긴 하지만, 사람의 육감이 진짜로 있더라.잘 생각해봐.어느 순간 아주 작은 연결 고리 하나만 찾으면 그 모든 게 하나의 그림으로 보일 테니까.”
"너 경험처럼 말한다?"
"경험이지.좇같은 경험.”
그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건 드물어서일까, 기다리던 탕이 나왔어도 반갑지 못했다.
녀석이 욕을 할 만한 게 무슨 경험인지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상처이니 묻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궁금했다.
"무슨 경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넣으니 칼칼하고 매운 향이 확 퍼졌다.와, 제대로 맵 네.역시 내 고추야.
"뭐겠어? 애인이 딴 놈이랑 자는 순간을 덮치는 드라마 같은 경험이지.”
역시.나는 탕에서 작게 잘린 고추를 골라 녀석의 앞 접시에 국자로 떠줬다.나는 녀 석의 숟가락에 고추가 올라가는지 매의 눈으로 확인하며 물었다.
"어때?"
”맛있네.“
"당연하지 내가 판 고추가 들어갔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잖아.” 뿌듯함을 느끼며 녀석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줬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대판 싸우고 어깨를 다쳤어?"
“그건 더 복잡해.”
-HALF of ME-
8 / 181
"쉽게 풀어봐. 궁금하니까.”
소주 한 잔을 바로 비우던 녀석이 날 뻔히 봤다. "궁금해?”
”응. “
바로 답했지만, 이상하게 녀석과 눈을 마주치는 게 어려워 안주를 열심히 먹는 척했 댜 뭐,싫다고 하면 화제 돌리면 되고.
"앤디하고 바람피운 내 동료가 자살한다고 난간에 매달린 걸 구하느라 어깨가 완전 히 빠졌어. ”
......뭐? 월 하고, 뭘 해? 난 설명을 더 바랐으나 그는 할 말이 다 끝난 듯 소주를 따라 마시며 조용히 안주를 먹었다.
"피해자는 넌데 네 동료가 자살한다고 난리를 쳐? 대체 왜?" ”이것 때문에II
그가 소주가 담긴 술잔을 들어 보이곤다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술은 금방 동났다.
"앤디는 술 세다며? 대체 얼마나 퍼마셨는데?"
”갠안취했어.그래서술마시고울며 애원하는녀석하고같이있었겠지.동료가난 간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건 앤디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어. 그래 봤자, 취한 놈의 빌어먹을 술주정밖에 안 되지만. ”
너무 매운 안주만 먹은 탓인지, 달콤한 콘치즈가 나오니 반가웠다. 낮은 스테이크 팬 위에서 지글지글 끓는 노란 옥수수 알갱이가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난 숟가 락으로 그걸 뒤적거리며 내 의견을 덧붙였다.
"앤디가 제일 빌어먹을 놈이네. ”
동의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설마 편드나? 약간 마음이 상했다.
-HALF of ME- 9 / 181
“그렇잖아, 어쨌든 앤디가 받아줬으니 네 동료가 같이 있었던 건데. 술 마시고 찾아
와 헛소리하면 뚜드려 패서 내쫓았어야지. ”
“그 정도로 날 사랑하지 않았나 보지. ”
"야, 그건 아닐걸?"
“그럼 내쫓지 못할 만큼 내 동료를 사랑했거나. ”
IIII
’'둘의 배신보다 다친 어깨 때문에 화가 나는 걸 보면 난 그만큼 앤디를 사랑하지 않 았고.“
주문한 소주가 새로 나오자 녀석의 빈 잔에 채우고 나도 채웠다.말없이 건배하는데 그가 갑자기 피식웃었다.
"재미있는 거 알려줄까? 난 동료가 앤디를 좋아하는 걸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 어 알면서 일부러 앤디하고 사귀었어. ”
“일부러?"
"내가 처음 어깨 수술을 받고 쉴 때 후보였던 동료가 나 대신 시합을 뛰었거든.아주 잘하더라 그게 질투가 나서 녀석이 좋아하는 앤디에게 사귀자고 먼저 말했었지. ”
그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겉으로 보이는 건 자신의 반쪽뿐이라는 거. 녀석의 숨겨진 반쪽이 이거였나 보다.
"내가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옹졸하고 치사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때는 죄책감을 무 시했어. 앤디는 날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주면 되지, 생각했거든.동료는 고백도 안 했으니 미안해할 것 없다고 뻔뻔하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내가 잘못된 길에 발을 들여 놨다는 느낌은 처음부터 있었어. 사건이 생기고 내 커리어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떠 오른 게 바로 과거의 나였어. 잘못된 길로 들어선 빌어먹을 나. ”
그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말릴 수가 없었다. 난 그저 빈 술잔에 말없이 술만 채 워줬댜
-HALF of ME- 10 / 181
“그래, 너도 빌어먹을 놈이네.전부 쌤쌤이니까 잊어버려,,
“제일 빌어먹을 놈인지도 모르지.100% 피해자인 척하면서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 하니까.”
그가 무슨 기분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잔에도 소주를 따르며 반병 정 도를 혼자 비웠다.이 정도 마시니 나도 숨겨둔 내 반쪽을 겨우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 았댜 그러고 보면 친구들 만날 땐 항상 술만 마시는데 우민재하고는 그렇게 자주 만났 으면서 술은 처음이라니.그러나 몇십 년 만난 술친구처럼 익숙했다.술과 분위기에 취 해서 입을 열었댜
“나 효자 아니야.엄마한테 잘못한 게 있어서 죄책감에 잘하는 것뿐이야.” "어머니를 때렸어?"
"야! 내가 그런 개막장은 아니야!!"
난 소주잔을 탁자 위에 광 내려놓았다. 주변에서 내 큰소리에 쳐다봤지만, 남의 시 선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너 대체 날 뭐로 보고 그런 소릴 해? 내가 눈에 보이는 것 없는 사람처럼 주먹만 휘 두르겠냐? ”
"반쯤은 안 보이는 것 같던데.”
하하, 참 기가 막혀서......·
"반 정도는 안 보이긴 하지.”
쿨하게 인정하고 세게 내려놨던 소주잔을 조심히 들어 마셨다.
"뭐, 내가 엄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물리적인 폭행보다 더한 짓이었을 수도 있어. 고등학생 때 나 말이야, 진짜 못돼 처먹었었거든. 아버지가 잘못해서 우릴 버리고 집을 나갔단 걸 아는데도 그 화풀이를 엄마한테 했어.아버지가 아니라.”
당시 엄마는 만만했고, 상처받아도 내 눈엔 잘 보이지 않았다.
-HALF of ME- 11 / 181
“아빠가 떠난 걸 엄마 탓으로 돌렸어. 거의 매일 아빠가 떠난 건 엄마가 못나고, 못 생기고, 재미도 없고, 매력이 없어서라고 화를 냈지. 나가웨지라는 저주도 매번 함께.”
고등학교 내내 입을 다물고 새 친구도 만 들지 않았던 건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나 자신 때문이다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난 피해자이니 어쩔 수 없잖아, 이유를 갖다 붙였다. 이게 날 제일 괴롭혔다.
그래서 더 100% 피해자인 척했던 것 같다. 집안 꼴이 이래서 내가 엇나가는 거니 누구도 신경 쓰지 마.웃지 않는 얼굴로 장막을 치고 대화를 거부했다. 보다 못해 나선 큰아버지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경찰서나 들락거리는 양아치가 됐을지도.
저녁부터 내린 비는 우리가 술집을 나선 2시쯤 거의 멈췄다.각자 알아서 헤어지곤, 술도 캘 겸 천천히 걸었는데 생각에 빠지다 보니 몇 정거장이 금방 지나있었다.어느새 집 앞 다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댜
타이밍 기가 막히네,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아파트의 입구로 빠르게 걸어가다가 문 득 시야에 들어온 것 때문에 걸음을 멈췄다. 내가 사는 아파트 라인 한 곳에 불이 들어 온 집이 있었댜 난 아래에서부터 층을 세었댜 1, 2, 3, 4.406호. 불이 켜진 건 택인이 방이었댜
왜 켜져 있지?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택인이가 깨어났나?! 나도 모르게 당장 뛰어가려다가 멈췄댜 아, 어머니 계시지. 하지만 어머니가 새벽에 택인이 방에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주무실 시간이잖아?
평일에 쉬는 탓에 주말에도 일하고 들어와 피곤하셔서 분명히 끓아떨어지셨을 텐 데 정말로 택인이가 깨어난 건 아닐까? 확인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댜
저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데, 소리 안 나게 조용히 들어가 볼까? 그러다 도둑으 로 오해받으면? 윗집 사람인데 우리 집인 줄 알고 잘못 들어왔다......라고 하면 바로 경 찰서행이댜 윗집 사람이 비밀번호를 아는 게 더 이상하잖아.
-HALF of ME- 12 / 181
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406호의 불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마 창이 열리 고 누군가 밖을 쳐다보지 않았다면 해가 뜰 때까지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택인이 어머니였댜종이 인형처럼 작게 보이는데도 한눈에 알아볼수있었다. 처음 엔 밖에 비 오는 걸 확인하시나 싶었다. 그러나 밖으로 손을 내밀진 않았다. 오히려 손 은 다른 곳으로 움직 였다.
어두운 밤, 4층 위에 있는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그렇게 또렷이 내 눈에들어왔는지 모르겠댜 택인이 어머니는 얼굴의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리곤 바로 안으로 사라졌다.
곧블도 꺼졌댜
우민재의 말은 맞았다. 조그만 연결 고리가 모든 걸 하나로 보이게 해줬다. 그것도 전혀 생각 못 했던 연결 고리가. 일요일 밤, 쉬는 날 다음이라 출하량이 늘어 가게는 정 신이 없었댜 10시부터 일을 시작해 중요 거래처로 보낼 물품을 정리하고, 상자에 넣 어 포장하고 나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새벽 1시쯤이었을 거다. 막 경매가 끝나
여전히 정신없을 무렵, 누군가 가게로 날 찾아왔다.
"맞다! 여기다!"
난 거래처와 전화하며 전표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 고 가게 입구에 서서 반가운 듯웃는 사내 두 놈을 알아봤다.
"어? 너흰 조삼이,모삼이. ”
반가워하던 둘의 표정이 바로 멈췄다. 원 삼, 원 삼? 하듯 날 보다가 이내 다시웃었 댜
"하하, 역시 재미있으시다니까. 아무튼 저희 기억하시죠. ”
당연히 기억한댜 반장을 때려줬던 고마운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Al?
-HALF of ME- 13 / 181
"파출소에서 형님이 이곳에서 고추 도매하신다는 얘기 듣고 혹시나 해서 사람들한 테 물어봤죠.여기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하는 가게가 어디냐고요.그랬더니 백이면 백, 다 여길 말하던데요? 하하-"
""
"왜, 왜 그런 표정으로 보세요?"
"누가 봐도 거짓말인데 기분 좋겠냐?"
"예? 거짓말 아니에요.진짜로 다들 그랬어요.”
‘웃' 기지마시장제일의미남은다롱마트미스터 최야.”
둘은 내 말에 눈을 끔벅이기만 했다.미스터 최의 부리부리한 눈과 남자다운 각진 턱을 볼 때마다 내가 잘생겼다고 여겼던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반성하게 된다.
“아무튼 잘 왔다.”
어깨를 툭 치며 반겨주자 그제야 둘의 얼굴이 다시 혜혜 풀어졌다.
"와, 잠깐 놀랐어요.맞는 줄 알고.......”
"맞을 짓 했어?"
“아니, 전에 맞은 게 있어서.......흠흠, 아무튼 진짜로 장사하시는구나.”
"진짜로 하지.너흰 왜 왔는데?"
"근처에서 놀다가 형이 여기서 일한다는 게 생각나서 왔어요.” 조삼이의 설명에 옆에서 모삼이가 덧붙였다.
”이 녀석 드디어 애인하고 헤어졌거든요.고딩하고 바람난 여자친구가 뭐가 좋다고 매일 괴로워하다가 어제야 정리했어요.어휴, 이 새끼 때문에 내가 고딩 뒤나 밟고.”
조삼이가 친구의 말에 욱했다.
-HALF of ME- 14 / 181
"누가 고딩인 줄 알았냐? 운전도 잘하고 차도 존나 좋더만. ”
''맞아 차는 좋더라 그거 내가 타고 싶던 XX사 SUV인데 색도 파래서 흔치 않더라
고. ”
이것들이 잡담하려면 나가서 할 것이지.
"야, 너네 싸울 거면 어서 나가....... ”
어? 순간 원가가 머리를 스쳤다. 난 말을 하다 멈추고 모삼이를 봤다.
"너 좀전에 뭐라고 했어?"
”고딩이 몰던 차가 좋았다고요.XX사 파란색 SUV인데 꽤 비싸죠.”
''씨발, 개새끼!"
내 갑작스러운 욕에 둘이 당황하는 게 얼핏 보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연결 고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의혹을 모두 하나로 보이게 할 단서.젠장, 왜 그걸 몰랐지? 왜 생각을 못 했었지? 반장이 몰던 흔치 않은 파란색 SUV는 형의 차 라고 했었댜 하지만 난 그 차를 전에 이미 본적이 있다.사고 당일 바로 우리 옆 차선 에 있던 차였으니까.
택인이도 알았던 거다.그 차가 누구 차였는지.아마 도로로 뛰어들어 차를 세워야 할 정도로 다급한 일이었을지도. 그 말은 결국 한 가지를 가리킨다. 택인이는 자살이 아니었댜 반장 형의 이름이 홍한영이라고 했던가? 씨발, 개씹새끼.
“사고 후 택인이의 가방이 늦게 나타나고, 휴대폰의 정보가 다 지워졌던 게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거네?"
충연 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가 가방을 가져간 게 분명해요.휴대폰의 내용이 지워진 것도 그 새끼가 사
-HALF of ME- 15 / 181
고났을 때 한 짓이고.”
새벽 4시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 바쁜 일이 거의 다 끝나고 충연 씨와 그 일에 대 해얘기를나눴댜그는다시들어도충격인지'세상에'하고중얼거리며 넋놓고있다 가 물었댜
“아직 확실하지 않잖아.그 차가 흔한 모델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같은 차를 모는 사 람이 있을 텐데.”
“그 자식이 분명해요!"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지용이가 헉헉대며 들어오고 있었다. 10분 전쯤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 지금 표정은 전쟁터 에 돌아온 것처럼 매우 급했다.난데없이 무
슨 소리야?
“그 자식이 맞아요.반장 형, 그 자식이 분명해요.”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말해"
"친구가 이걸 보냈는데 와씨, 나 미치는 줄 알았어요.친구는 대체 이게 뭐냐고 난리 여 I 요 .“
"야.제대로 말하라고.”
내가 두 번째로 같은 말을 하자 오히 려 지용이가 답답하다는 듯 침을 삼켰다. “아, 그, 아시잖아요.노트북, 택인이 노트북 맡긴 제 친구요.”
"개가 왜? 파일 열어봤대?"
"네! ”
지용이는 손에 든 휴대폰을 우리에게 내밀며 랩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와, 씨발, 친구가 이걸 열고 놀라서 새벽에 나한테 전화한 거더라고요.전부 동영상 이고 친구가 보내줘서 짧게 앞에만 봤는데.”
-HALF of ME- 16 / 181
지용이는 휴대폰의 동영상을 열려다 말고 우리를 쳐다봤다.
"마음의 준비 하세요.”
별것 아니면 넌 죽었어. 으름장을 놓으려던 건 재생되는 동영상을 보고 멈췄다. 마 르고 작은 남자가 나체로 엎드려 개처럼 기고 있었다. 그의 목엔 징이 박힌 개 목줄이 매였고, 목줄과 연결된 끈을 누군가 잡고 있었다. 잡은 이의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으나 목소리가 들렸다.
짖어. 넌 개니까 짖으라고.'
줄을 잡은 이가 명령하자 엎드린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다 쉰 목소리로 개 소리를 냈댜그러나이내채찍이날아왔댜
'꼬리도 세워야지!'
남자는그말에엉덩이에힘을주는것같았다.그러자항문에꽂혔던술이달린 막 대기가 조금 움직였다.
”이게 대체 뭐야? 설마 야동이야?"
충연 씨가 눈을 확 찌푸리곤 묻자 지용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친구가 찾아봤는데 올 초부터 퍼진 야동이래요. SM 하는 사이트에선 이미 유명하대요. ”
“그럼 택인이가 이런 취향이라고?"
나도 같은 의문을 품었지만, 지용이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절대 아니에요 친구 말론 이 영상이 택인이가 내려받은 건 맞지만, 다음 파일은 아 니라고 했거든요. 택인이가 이 영상을 가지고 있던 건 아마 이것 때문이었나 봐요. ”
지용이가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좀 전에 본 것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화 질이 더 좋고 모자이크가 없었다.채찍질하는 남자의 얼굴이 다 보였다.
"친구가 보기에 이건 내려받은 게 아니라 원본 같대요.이 동영상이 먼저 컴퓨터에
-HALF of ME- 17 / 181
저장돼 있었고, 그다음 야동을 내려받은 거죠. 혹시 택인이가 동영상 속의 저 남자를 안 거 아닐까요?"
"알o�."
나는 답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저 새끼 반장 형이야. ”
내가 멈춘 동영상을 노려보는 사이 두 사람은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지용 이가 말했댜
"역시 맞네요. ”
"넌 반장 형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녀석이라고 생각했어?"
지용이는 말없이 세 번째 동영상을 열었다. 화면은 1/3이 무언가로 가려 있었다. 가 방 속에 카메라를 넣어 몰래 촬영한 영상인 듯했다. 배경은 호텔 방 같은 곳인데, 침대 에앉은남자가바닥에무릎꿇고엎드린 남자에게짜증을내고있었다.
'씨발, 벌써 울어? 김빠지게 하네, 이 새끼, 진짜.’
또 반장 형이었댜 지용이가 화면을 한 장면에서 멈췄다. 바닥에 엎드렸던 남자가 고개를 틀어서 얼굴이 조금 보였다. 맞았는지 코피가 얼굴에 번져있지만, 누군지 알아 차릴 수 있었댜 그가 입은 옷이 내게 익숙한 교복이기도 했고.
"보세요, 택인이 맞죠?"
내가 침묵하는 사이 충연 씨가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너I."
"여기 찍힌 날짜가 택인이가 동영상 내려받은 날보다 뒤래요. 저도 정확히 무슨 일 인지는 모르지만, 택인이가 혹시 반장 형이 하는 짓을 알고 막으려다가 도리어 당한 건 아닌지....... 어? 사장 형, 어디 가려고요?"
”가게 문은 알아서 닫아. ”
-HALF of ME- 18 / 181
차분하게 내뱉고 돌아서는데 충연 씨가 내 팔을 꽉 잡았다.
"안돼권 사장,안돼II
"뭐가 안 되는데요?"
그는 내 생각을 눈치했는지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원가 해보려는 거잖아? 안 돼. 하지 마.일단 상황을 좀 더 파악하고 그다 음 경찰에 신고하자고. ”
“그 새끼전에도 풀려난 적 있어요.이번이라고 안 그럴 것 같아요? 이 동영상도 다 자기들이 좋아서 찍었다고 우기면 끝이잖아요?"
“그래도 권 사장.......” ”놓으세요한대치기전에"
난 그를 떼어내려고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떼어내기도전에 그가 내게 덮치듯 달려들었다.
“아, 씨발! 이거 놓으라고!"
내가 발악하며 소리쳤지만, 그는 두 팔로 내 몸통을 잡고 늘어지며 지용이에게 외쳤 댜
"지용아! 어서 그분한테전화해! 빨리!" "다죽이기 전에 어서 놔!"
난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서 뚜껑이 열려버렸다.
17분 뒤,난장판이 된 가게는 충연 씨의 그분이 오셔서야 상황이 정리됐다.괜한 데 -HALF of ME- 19 / 181
힘쓰느라 지친 날 우민재가 한 손으로 제압해버린 것. 난 씩씩거리며 앉아있고, 충연 씨와 지용이는 그에게 H陸t 붙어 조잘조잘 고자질했다.간간이 내 흉이 들릴 때면 눈에 쌍심지를 켰으나 둘은 비겁하게 우민재 뒤로 숨었다.에이 씨, 몽둥이 어디 있지?
“사장 형 지금 흉기 찾죠? 내가 벌써 다 치웠어요!"
지용이가 깐죽댔다.저 자식을 반장 형 다음 2순위로 조져버리고 말테다.
"야, 문지용, 너 뭘 믿고.......II
''권희찬. 조용히 앉아있어. 아니면 그 드라마 마지막 회를 대사까지 전부 읊어줄 테
니까.”
흠칫 내가 몸을 떨며 도로 의자에 앉자, 둘은 우민재를 존경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젠장, 내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 드라마는 꼭 다 보고야 만다. 그 사이 우민재는 지용이가 틀어준 동영상을 보며 설명을 들었다. 눈을 찌푸릴 만도 한데 사물을 관찰하 듯 집중해서 보곤 중얼거렸다.
“택인이 맞네요.”
그는 지용이에게 휴대폰을 받아 화면을 몇 번 터치하곤 내게 보였다. ”이 사람 누군지 혹시 알아?"
나는 딴 데를 보며 씩씩거리다가 못마땅하게 눈을 돌렸다.두 번째 영상에서 개 흉 내를 내며 엎드려있던 남자였다.그러나 내가 본부분에선 얼굴을 숙였는데 이 화면에 선 들고 있었댜 저 사람이 누군 줄 내가 어떻...... 어?
”줘봐"
난 휴대폰을 받아서 들고 자세히 살폈다.화면이 작아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히 호 텔에서 봤던 그 학생이었다.
"반장 형하고 호텔에서 나오던 학생이야. 그때 어디 아픈 것처럼 반장 형한테 꿀려 갔었는데...... 씨발.”
-HALF of ME- 20 / 181
난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욕을 내뱉었다. 호텔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하기도 싫었댜 대체 이 녀석은 뭔데 반장 형한테 당하지?
”이 학생을 찾아야겠네. ”
"어떻게?"
"너 교복 봤다며? 어느 학교 거였는데?"
“모르지.“
우민재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학교마다 교복은 다르니까. ”
””
“그것도 기억 안 나?"
“그게 어, 반장 형을 노려보느라.아니,그리고 너 무 빨리 스쳐 지나가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에이 씨, 그걸 제대로 보는 게 이상하지. 그러나 기억 못 하는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시선을 돌렸다.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맞다, 어쩌면 XX고등학교 다니는 2년 꿇은 학생일지도 몰라. 택인이 짝이 전 에 그 학교 학생하고 택인이가 친해 보인다고 했거든. ”
오전 11시.
난 계속 시계만 봤다.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언제 영혼이 이동하나 기다리고 있지 만,5분이지나도10분이지나도여전히 내몸이었다왜안옮기지?빨리옮겨야학교 에 가고, 가서 반장을 쥐어패서 정보를 얻을 텐데.
-HALF of ME- 21 / 181
난 반장을 만나 녀석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며 혼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 댜 물론 택인이 몸으론 상대가 안 될 테지만, 녀석이 자기 형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인 하고 싶었댜 만약 알고서도 괴롭혔다면 택인이가 상대에게 맞는 한이 있어도 택인이 주먹으로 한 대는 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몸으로 찾아가 아끼는 동네 동생을 네놈이 때렸느냐며 피의 보복을 하고 말리라 생각하는 순간 어지러움이 밀려왔댜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그러나 눈을 뜬 곳은 낯설었댜 한편으론 익숙하기도 했다 ‘ 처음 보는 곳이지만,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왜 또 병원에? 이런 곳에서 시간을 잡아먹을 때가 아니다. 빨리 학교에 가서 반장을 족쳐야 하는데 병원이라니,이게 무슨 일이지. 마음이 급해 얼른 상체를 일으켰다가 어 지러움에 도로 침대 위로 머리를 떨꿨다. 아우 씨, 이놈의 어지러움. 난 숫자를 세며 숨 을 골랐다.
그때 희미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벌떡 고개를 세웠다. 택인이 어머니 목 소리였다 난 침대에서 내려와 주위를 둘러 봤다. 아무도 없는 2인실 병실이었다. 택인 이는 환자복 차림인 걸로 보아 입원을 한 것 같았다.대체 왜......·
불평하려다가 어제 새벽에 본 택인이 어머니가 떠올랐다. 밖을 보며 울던 모습. 아 들이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웠을지도모르겠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 월 해야 할
지도모르니 방법은 병원밖에 없겠지.
싸우는 소리가 나는 병실 밖으로 나가보니 택인이 어머니가 같은 또래의 웬 남자와 언성을높이는중이었댜이제보니그녀는 다른방법도택한것같았다.처음본남자 지만 난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택인이하고 생김새가 닮았으니까.
"애한테 대체 어떻게 했기에 애가 저모양이 됐냐고.계속 잠만 자다니? 이게 말이 돼?”
“나도 몰라 애 버리고 간 건 당신이잖아?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 없어.”
"자격이 왜 없어? 내가 아뻔데! 원하는 대로 집도 다 주고 갔잖아. 너 시집을 때 맨 몸으로 와선 몇억짜리 집을 건졌으면 양심 좀 챙겨라. 나니까 그렇게 주고 갔지,다른
-HALF of ME- 22 / 181
사람은 어림도없어.”
택인이 어머니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넌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진즉에 연락하든가, 아니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했어야지. 바보도 아니고 애가 저렇게 몸에 문제가 있으면 원가 조처했어야 하는 거 아 냐? 이제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서너 시간밖에 안 된다면서? 그러다가 더 큰 일이 생기면.......”
"엄마"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 택인이 엄마는 날 보자마자 달려와 손 을잡았다.
"언제 쨌어?괜찮아?"
“괜찮아요 병원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왜 데려오셨어요?"
그녀는 답을 못 하고 그저 택인이 손만 꼭 잡았다.
"집에 가요.저 진짜괜찮아요.”
“그래도 검사를 더....... ”
“아니에요.저 그냥 자는 것뿐이라 병원에서도 어떻게 못 해요.엄마 저 믿으세요.
곧원래대로 돌아가요.”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는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냥 병원에 있어.잠이 계속 늘어서 학교도 못 간다며? 너 학교 가기싫어서 일부 러 그러는 건 아니잖아?"
난 택인이와 닮은 남자를 뻔히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서I요?”
-HALF of ME- 23 / 181

?.
뭐·
’I
그가 눈에 띄게 당황해선 택인이 엄마를 쳐다봤다. 그녀가 기억상실에 대해 설명해 줬으나 택인이 아버지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텍인아, 너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거라면 꼭 검사를....... ”
“아저씨, 누구신지 몰라도 제 일은 저와 제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참견하지 마세 요.“
"야, 내가 네 아빠....... ”
''좀전에 보니까 저희 엄마 괴롭히시던데, 한 번만 더 제 어머니한테 소리치시면 가 만 안 있을 겁니다.당신이 누구든 반죽여버릴 거야.아셨습니까?"
충격으로 할 말을 잃은 그를 놔두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갔다.몇 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택인이 아버지란 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자식한테 고 작 그 한 소리 들었다고 확인도 없이 가다니. 어이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실망은 들지 않았댜 실망은 원래 기대가 있어야 생기는 법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날따라 참으로 길었다.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내려서 10 분 정도 집까지 걷는 사이 택인이 어머니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택인이 어머니는처음 됐을 때보다 더 마르 고 안색이 좋지 못했다.
”죄송해요. “
"뭐가?"
"엄마 힘드시게 해서요. ”
“아냐, 그런 거....... ”
"곧원래대로 돌아와요. 더는 잠들지도 않고, 전부 기억하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고, 엄마 걱정하지 않게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혼자서 저 키우시느라 엄마 고생하는데 옆 에서 도움도 못 드리고 걱정만 끼쳐서 죄송해요.”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다.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고, 입술을 꼭 다물기만 했다.
-HALF of ME- 24 / 181
나도 더 할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하고 그냥 몸을 돌렸다유1에서 택인이 어머니가 천 천히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심장이 불구덩이에 담근 것처럼 뜨겁고 아팠다. 택인이가 아니라 내 반응이었던 것 같다.12년전 했어야 할 말이 너무 늦게 나와서였 을지도모르겠다.
한번 물꼬가 트이니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이밍 좋게 다른 증거가 나타났다.그 것도 결정적인 증인이. 언제 쓰러질지 몰라 학교 가는 건 포기하고 택인이 집으로 돌아 왔댜 침대에 자리 잡고 앉아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새로 깐 SNS에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댜
[나한테 연락받는 거싫겠지만...... 중요한 말이 있어.한영 형 동생하고 무슨 일 있 었어? 학교 가지 먀 절대로 가면 안 돼.한영 형이 동생 말 듣고 너 잡는다고 교문에서 지킨다고 했어]
보낸 사람은모르는 번호였으나 메시지 안에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한영은 반장 형 새끼의 이름이잖아? 나는 일단 캡처한 화면을 내 휴대폰으로 옮기고 발신자에게 바로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런데 머리가 핑 돌았다.쓰러지기 직전 시계를 봤다.2시 30분 오늘은 겨우 세 시간이다 젠장.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욕이 늘어갔다
나는 그리 운이 좋은 편은 아니다.로또를 사도 5등 한번 당첨된 적이 없고, 뽑기를 해도 잘해야 중간,아니면 꼴찌를 도맡았다.그러나 이번만큼은 운도 필요 없을 상황이 라고생각했다아직 퇴근시간도아닌우민재가학교근처에있는날알아볼확률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왜 그러고 있어?"
아이고, 깜짝이야! 진짜 놀랐다.교문 근처의 분식집 입간판 뒤에 숨어있다가 너무
-HALF of ME- 25 / 181
놀라 엉덩방아를 찡을 뻔했다.
"뭐야? 너 왜 여기에 있어?"
“그건 내가 할 소리야.너 여기서 뭐 해?"
난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른 녀석을 내 옆으로 끌어내렸다.
"누굴 기다리고 있어 들키면 안 되니까 너 도 빨리 숨어.”
”누군더I?"
""
''권희찬,누굴 기다리느냐고 묻잖아.”
이 자식이 무섭게 왜 목소리를 깔고 그래.
“그냥 있어.기다리는 사람.넌 할 얘기 없으면 방해하지 말고 꺼져.”
나는입간판뒤에다시자리를잡았으나 녀석은가지않고날카로운눈으로내주변 을 살폈다 난 그제야 내 옆에 놔두었던 물건을 기억하고 얼른 숨기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댜
I'망치, 쇠 지렛대, 멍키스패너.”
녀석은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본 것처럼 읊었다.난 깜짝 놀라 가방과 녀석을 번갈
아봤댜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걸로 반장이라도 때려죽이려고?"
"야, 날 뭐로 보고 그런 소릴 해?"
"반장은 아니야? 그럼 누군데? 설마 반장 형이 오늘 학교로 온대?"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놈이었다.부인하려고 해도 놀라서 굳은 상태라 그대로 입을
-HALF of ME- 26 / 181
다무니 녀석이 정답으로 확신했다.
"반장 형이 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IJ......메시지 받았어.”
"누구한테?"
난 그저 어깨만 으쓱하곤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계획을 방해하려는 놈한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기싫었다. 그런데 녀석이 내 가방을 핵 낚아채 버렸다.
"야, 그거 내놔. ”
"학교 앞에서 수상한 사람이 흉기를 들고 숨어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내가 무슨 수상....... 조금 수상하긴 했다. 그렇지만 분식집 아줌마는 기다리며 마시 라고 종이컵에 어묵 국물도 떠다 주고 그랬는데. 한여름에 입천장 데어죽는 줄 알았 댜
"내가 여기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았어?"
"지용 씨한테전화했어. 가게에 놓고 온 게 있어 갔다가 네가 가게에서 공구 가방 들 고 나가는 걸 봤다고. 표정이 일 치르러 가는 얼굴이었다더라. ”
"간신배 같은 자식. 그래도 내가 어디 가는지 말 안 했을 거 아냐?"
"네가 갈 곳이야 뻔하지. 반장 형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반장 뒤를 밟으려고 학교 에서 잠복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녀석에게 수를 다 읽힌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내가 인상을 팍 썼으나 그는 신경 쓰 지 않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 따2.卜와.“
당연히 저항했으나 헛수고였다. 매번 느끼는데 이 자식은 힘이 장사다. 대체 무슨 운동을 한 거야? .....씨름인가? 그렇게 천하장사를 따라 근처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 고, 나는 할 수 없이 모든 걸 털어놨다. 그리고 휴대폰에 전송된 메시지를 보여줬다.
-HALF of ME- 27 / 181
"동영상에 찍힌 그 남학생인 것 같아.아직 전화는 안 해봤어.낯선 사람보다는 택인 이 목 소 리 로 통 화 하 는 게 나 을 것 같 아 서 . 그 래 서 아 직 어 느 학 교 , 누 구 인 지 는 몰 라 .”
"XX고등학교 학생 맞아"
"어떻게 알아? 확인해봤어?"
"응. 이름도 알아냈어.”
잠시 우리 사이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녀석도 아마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거 댜그토록찾아헤매던 실마리가눈앞에나타났는데그이후 어떻게해야할지캄캄한 기분 메시지를 보낸 이 학생도 피해자일 텐데? 끔찍한 일을 당했고 택인이가 도와주 려다가 실패해서 계속 잡혀있다면? 나는 그가 어떻게 버틸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아 무리 나이는 성인이라도 학생이잖아.무서울 거다.
“택인이는 그날 왜 반장 형 차 앞으로 뛰어들었을까?"
"본인만 알겠지?
J' 복권방 사장님이 택인이는죽을 각오로 뛰어들었을 거라고 했어. 자신이 당연히 죽었으리라고 여겨서 깨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무서움에 벌벌 떨면서.확실한 건 반장 형이 택인이에겐 공포의 대상이고,그 새끼가 처리되지 않는 이상 택인이는 진짜 안 깨
어날 것 같다는 점 이야.”
“그래도 망치로 처리하는 건 절대 안돼”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우민재는 잠시 딴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녀석이 원가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는 다른 말을 입에 올렸다.
“일단 내일 동영상 속 학생을 만나서 얘기 먼저 듣자.”
-HALF of ME- 28 / 181
이름이 정범이라고 했다.어딘지 앤디를 연상시키는 외모지만, 앤디가 밝은 쪽의 제 일 끝에 서있다면, 이 학생은 어두운 쪽 제일 끝에 선 느낌이었다.그는 사람의 눈을 마 주치지 못했다. 택인이의 연락을 받고 나왔는데 낯선 남자 둘이 버 티 고 있으니 죄를 지 은 사람처럼 벌벌 떨었댜 우민재가 자신이 택인이네 학교 선생님이라는 걸 밝히자 더 사색이 됐다 그나마 내가 말하기 편할 것 같아 첫 질문을 던졌다.
"너 야동 찍었어?"
옆에서 우민재의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내 질문 선정에 감탄했나 보다. 정범이는 더 감탄했는지 고개를 완전히 푹 숙이며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아냐? 그럼 그 천하의 둘도 없는 개씨발놈의 새끼가 강제로 한 게 맞네?"
정범이는 그제야 놀란 눈을 둘었다. 내가 더 물어보려는데 우민재가 내 팔을 잡아 말렸댜 그리곤 자기가 물었댜
"홍한영은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던데 너하곤 어떻게 알게 됐어?"
녀석의 욕에 나도 당황하고 정범이도 당황했다. 우민재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부 드럽게다시물었다
’'말하고 싶을 때 답해도 되지만,널 그 개씹창 새끼한테서 한시라도 빨리 구해주려 면 네 도움이 필요해.”
정범이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와 우민재를 번갈아 봤다.
"왜, 왜 절 도와주시는데요?"
“택인이 때문에"
난 솔직하게 털어놨댜 다행히 택인이에게는 책임감을 느끼는지, 정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댜
“택인이 괜찮나요?" " 안 괜찮아.”
-HALF of ME- 29 / 181
"어, 어떤데요?"
“아주 심각해.”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그러나 봐줄 여유가 없었다.
''택인이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그 녀석이 무서워하는 홍한영을 처리해야 해.
그런데 왜 택인이가 그 빌어먹을 씹새끼하고 얽혔는지를 몰라.그러니까 네가 말해
2.�."
정범이는 울 것처럼 어깨를 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한 설 명은 오래 걸렸지만,시간은 금방 흘렀다. 내용 중 대부분은 우리가 상상하던 최악이 맞았댜 정범이는 홍한영을 동성애자 모임 사이트에서 만났다고 한다.
거기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실제로 만났는데 돈도많고,외모와 매너도 좋아서 만난 날 바로 사귀자는 말에 승낙했다고.하지만 그길로 호텔에 가서 강간당하고 동영상을 찍혔댜 정범이는 자신을 홍한영의 개라고 표현했다.처음엔 그가 부모님한테 동영상 을 보낸다고 협박해서 그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폭력과 변태적 행위에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번엔 그가 목숨 을 가지고 협박했다. 그게 을해 초. 새 학기가 시작되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없던 그는 우연히 택인이를 길에서 만났다.택인이는 그전부터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가 됐고, 같 은 동네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택인이는 첫눈에 정범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했고,사정을 듣곤도와주고 싶어 했 댜 게다가 홍한영이 자신의 반 반장의 형이라는 걸 알곤증거까지 찾아다 주겠다며 적 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일부러 반장에게 접근해 집까지 갔던 모양이다.
대체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노트북에 있던 원본영상을 보건대 증거를 찾은 게 분명 했댜 택인이는 자신이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경찰에 신고한다는 빌미로 홍한영이 직 접 실토하는 말을 찍어두려고 계획한 듯했다.하지만 협상하려고 가져온 증거는 입 밖 에 꺼내지도 못하고 개처럼 맞았다고.
아마 반장과 싸우고 택인이가 다쳐서 학교에 왔다던 그때였을 거다.그 이후 로 택인
-HALF of ME- 30 / 181
이는 말도 없어지고, 반장의 괴롭힘도 당했으니까. 정범이는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 는 죄책감에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자신은 이제 홍한영과 안 만 난다고.
“그런데 사고가 난 날 아침에...... 한영 형이 학교 가려는절 붙잡아서 억지로 차에 태웠거든요.그걸 택인이가 본것 같아요.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었는데...... 저도 택 인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네가 모르면 어떡해? 너 구하려고 뛰어들었잖아 너 빼내려고.네가 다시 그 악마 같은 자식한테 잡혀가는 줄 알고,너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한 거잖아. 그 순간 차에 치여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덜덜 떨면서도 널 그냥 둘 수 없었던 거라고. ”
나도 모르게 욱해서 낮게 외쳤다. 하지만 학생이 고개를 폭 숙이는 걸 보니 그도 피 해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택인이도 그 개새끼를 엄청나게 무서워했어. 그런데도 널 무시하지 않았어.그런 데 넌 길가에 쓰러진 택인이를 두고 그냥 갔잖아. 네가 그때 나서서 택인이가 누구고, 왜 차 앞으로 뛰어들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만 했어도....... ”
씨발,그럼 일이좀더쉽게풀렸을지도모르는데.더하고싶은말이있었지만,옆에 서 우민재가 내 팔을 잡았다. 난 답답함에 그에게 화풀이하듯 물었다.
“대체 김택인은 겁도많으면서 왜 자기가 다 해결하려고 한 거야? 친구가 위험하다 싶으면 어른들한테 알렸어야지. 바보도 아니면서 왜 지가 혼자 다 짊어지냐고.”
"자신도 도움을 받은적이 없으니 친구를 도와줄 어른도 없다고 생각했나 보지. ”
우민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안에는 분노가 섞여있었다.미리 알아차리지 못하 고, 믿음을 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나도 비슷한 어른이라 할 말은 없었다. 내 가 입을 다문 사이 그가 정범이에게 물었다.
“택인이 가방은? 그 새끼가 가져간 거 맞아?"
정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HALF of ME- 31 / 181
텍인이 휴대폰을 찾아서 쓰러진 택인이 손가락으로 잠금을 풀고 안을 뒤지더라고 요 택인이가 차 앞으로 뛰어든 게 자기 때문인 걸 알면 안 된다고 하면서요.”
쓰러진 녀석의 휴대폰 내용을 다 지웠겠지.택인이를 학교 폭력 때문에 자살하려는 학생으로 보이게 하려고 주위 애들이 괴롭히는 카톡만 남겨놓고.그런 뒤에야 병원으 로 보낸 게 분명하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어떻게 20대 중반밖에 안 된 놈이 저렇 게 못돼 처먹은 짓만 골라 할 수 있지? 나는 분노를 삼키며 중요한 걸 물었다.
"반장, 홍한영 동생도 형이 하는 짓을 알아?"
11더11더
―-,―-,.
"동영상 찍을 때....와서 구경한 적 있어요웃으면서요.”
난 할 말을 잃었다.우민재도 나와 같은 기분인지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나는 도저 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자식은 택인이한테 게이라고 욕했잖아? 그것 때문에 반 아 이들 앞에서 망신 주고 괴롭혔잖아?
"반장 새끼 이중인격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학교에선 게이를 그렇게 욕하면서 뒤 로는 형이 하는 짓을웃으면서 구경해?"
"원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크고 더러울수록 겉으론 정반대로 행동하는 법이니까.”
우민재의 말대로라면 반장의 숨겨진 반쪽은 더럽다 못해 역겹고, 추한 괴물이었다.
형제가 쌍으로 이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너 앞으로 그 새끼 안 만나도 돼.우리가 도와줄게.”
그러나 내 말에 정범이는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저 안 도와주셔도 돼요.전 이제 어쩔 수 없어요.한영 형한테서 벗어난다고 해도 전 이미 개예요.”
-HALF of ME- 32 / 181
엄마가 좋아하는 아침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막장인 내용에 늘 놀란다.저러니까 드라 마지,생각했지만 어쩌면 TV에서 보이는 게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이번 일로 한 번 더 깨달았댜 현 실보다 더한 막장은 없다.
"반장 형은 아무리 봐도 개씹쌔네요.그 학생 너무 안됐어요.어떻게 도와줄 방법 없 을]} �요?"
지용이의 질문에 충연 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봤다.
"경찰에 신고해야겠지.그렇지?"
JI "
''권 사장,경찰에 신고할 거지? 어?"
그가 재차 묻는 말에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신고 안 해요.”
"왜?"
"피해 학생이 원하지 않아요.죽어도싫대요.”
""
"저도 신고할 생각 없고요.”
학생이야 그렇다 치지만, 넌 왜 원하질 않는데? 둘의 시선에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 댜
“조사를 제대로 받기나 하겠어요? 피해자는 고소할 마음이 없고,해봐야 그 새끼한 테 걸 죄목이 음란물 유통밖에 없는데 벌금 내면 그만이겠죠.”
"폭행이긴 하지만,피해자가 한 명 더 있잖아?"
안댜 한 명 더 있댜 택인이.하지만 이제 그의 몸으로는 하루에 몇 시간 깨어있는 게 고작인데 일이 제대로 진행될지 알 수 없다.그 시간도 언제 줄어들지 모르고.제일
-HALF of ME- 33 / 181
중요한 01유는,
“택인이 어머니가 다 아시게 되잖아요.”
아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게 할 순 없었다.충연 씨는 공감이 갔는지 고개를 끄 덕였댜 지용이는 그런 우리 둘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 새끼 어떻게 벌줘요?"
난 또 입을 다물었댜 그러나 충연 씨는 내가 방법이 없어 입을 다문 게 아니라는 걸 눈치했댜 그가 내 팔을 꽉 잡았댜
‘' 직접 나서려는 거 아니지? 반장 형을 법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무리 답답해도 눈 감고 뒤돌아서.그 시간에 차라리 피해 학생을 돕고, 다시는 반장 형과 엮이지 않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나아.권 사장도 세상 살아봐서 알잖아? 억울하고 분한 일을 전부 내키는 대로 처리했어? 아니지? 넘어가.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도 권 사장이 직접 나 서는건안돼.”
''직접안나서요.”
“기러?” ―C]
“아는 녀석 통해 조폭 몇 명 부를 수 있어요.돈 주면 뭐든 하는 놈들이니 내 손 쓸 거
없죠.“
’' 권 사장!"
충연 씨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난 그를 뻔히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이건 최후 의 방법이에요.다른 방법을 썼는데도 반장 형이 버젓이 고개 쳐들고 다 니면 힘쓰는 애들 불러서 평생 못 돌아다니도록 다리를 잘라버릴 거예요.”
“그러다가 권 사장이 큰일.......”
”이 새끼 성범죄자예요.그런데 피해자가 겁먹어 신고 못 할 거 알고 설치잖아요O 새끼가 앞으로 얼마나많은 사람을 건드릴지 누가 알겠어요? 정충연 씨도 아이가 있
-HALF of ME- 34 / 181
잖아요. 그럼 절 막으면 안 되죠.”
””
"알아요 내가 굳이 나설 일이 아니죠 그런데 재수 없게 내 앞에서 걸렸으니 내가 처리할래요. ”
충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우리 눈치만 보던 지용이 가 물었댜
I'쓰려는 다른 방법은 뭔데요?" “모르겠어.“
”너I?"
진짜다.나도모른다.어제 우민재가 내게 다짐을 하나 받았다. '내 방법을 먼저 써본다고 약속해.'
‘네 방법이 뭔데?'
검시자를 붙여놓는 거.’
'그게 다야?'
'단발성으로 끝날 방법은 안돼온몸의 사지를 분질러서 아무 데도 못 가게 만든다 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평생 감시할 사람이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가 당 장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그 녀석의 발을 묶고,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는 게 중 요해.그러려면 감시자가 있어야지.’
그걸 누가 하겠어? 녀석의 답은 간단했다. '7�족.’
까족이 어련히 하겠다 개네 엄마만 해도 아둘을 위해선 뭐든 할 사람이던데.’
-HALF of ME- 35 / 181
'바로 그거야. 아들을 위해서 뭐든 할 사람이니까 제일 적당해.’
아들을위해그가나쁜길로가지않게감시한다는건가?하지만 반장어머니는원 래자식들의잘못은인정안하고도리어큰소리만 치던사람이잖아.이해가안갔으나 반대는 못 했다. 나한테는 무작정 쫓아가서 몽둥이 휘두르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그 래서 확인이 필요했댜
'제대로할거지?'
우민재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도 빡쳤어.’
별것도 아닌 말에 욱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 을 생각은 없었다 난 명함을 찾으려고 서랍을 뒤졌다. 앤디가 택인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알려준 상담 전문가에게 정범이를 보낼 생각이었다.
지저분한 물건들로 복잡한 서랍에서 명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서랍을 닫으려는데 접힌종이쪽지하나가유난히 내시선을끌었다.저게뭐더라?쪽지를꺼내펼쳤다.아 무것도 없이 전화번호만 달랑 적힌 종이. 그러나 보자마자 정체가 바로 떠올랐다.
“그게 뭐예요?"
''택인이가 사고 당일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거. ”
두 사람은 기억이 났는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젠 필요 없잖아요. 택인이 깨어나면 주려고요?"
아니. 난 고개를 저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이 번호로 전화했어야 한다는 후 회가 들었댜 어디의 누구인지도모르면서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신호가 몇 번 가고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XX 조리전문학교입니다.」
II... ...어디라고요?"
-HALF of ME- 36 / 181
상대가 다시 이름을 말하곤되물었다.무슨 일이시죠?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무슨
일이랴 택인이는 왜 여기에전화했을까? 아니, 짐 작은 간다.
"xx고등학교에 다니는 김택인 학생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김택인? 모르겠는데.그녀가 중얼거리곤덧붙였다.
「상담 선생님은 퇴근하셨으니까 평일 5시 전에 다시 연락해주세요.」 ”이 번호가 상담 선생님 번호인가요?"
네, 라는 답을 듣고전화를 끊었다.
"뭐래요?"
옆의 두 사람이 궁금한 눈으로 쳐다봤다.난 가만히 전화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직 업학교에 가려면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죠?"
''직업학교? 정상적으로 학력이 인정되는 곳이라면 전학을 가면 되지만, 그게 아니 면 자퇴하고 가야지.직 업 고등학교래?"
"네. “
한동안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참 뒤 충연 씨가 낮은 한숨을 토하며 중얼거 렸댜
텍인이는 정말로 자살하려던 게 아니었나 봐 어쩌면 새 출발을 하려고 마음먹었 을지도믈랴"
새 출발.말이 새 출발이지 고등학생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 나많이 고민했을까?
-HALF of ME- 37 / 181
텍인이 알죠 제가 직업 체험 무료 강습을 나갈 때마다 매번 와서 수업 듣고 갔어요.
말도 없이 혼자 구석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거 듣고 따라 하는데 얼마나 솜씨가 좋던지. 집에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혼자 연습한 것치고는 아주 훌륭했죠. 자기도 제빵사가 되 고 싶다고 했고, 감각도 있었어요. 저한테 상담받고 혼자 고민해본다고 했는데 한 달 전인가? 전화 와선 결정했다고, 고등학교 자퇴하고 여기로 오겠다고 했어요. 검정고 시도 볼 거고,아르바이트하면서 학비도 벌 거라고요. 부모님 허락은 받았느냐고 하니 까,좀 머뭇거리던 게 걸리긴 했는데 택인이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더라고요. 알았다고, 일단 내일 학교로 와보라고 하고, 학교의 제 전화번호를 줬죠. 그런데 연락은 없었습니
댜'
연락할 수 없었겠지. 그날 차 앞으로 뛰어들 줄 자신도 몰랐을 테니까.
11시 50분
오늘도 또 늦어졌다.난 택인이 몸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바로 집을 나가는 대신 침 대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평범한 고등학생의 방이었다.눈에 띄는 것도 별로 없고, 책 장엔 교과서와 만화책, 어릴 때 샀을 문학 전집이 전부였다.
아니, 책상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맨 아래 칸엔 내가 저번에 발견하고 무심히 넘어 간 책들이 있댜 난 몸을 낮춰 책장 아래 칸을 차지한 책을 꺼냈다. 대부분 중고 서점에 서 샀는지 낡았고, 뒤에 중고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제빵 관련 책들은 컬러에 사진이 들어간 게 대부분이라 중고라도 가격이 좀 나갔댜헌책이니살때부터 낡았을수도있지만,이건왠지 택인이의손때가묻은것 같았댜 조리법엔 어려운 부분인지 밑줄이 그어져있고, 옆에 빨간 글씨로 자신이 실패 한 부분이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택인이 글씨였댜 변변한 도구도 없다면서 어지간히 만들고 연습했던가 보다. 그러 나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하긴 쉽지 않았겠지. 게다가 어 머니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는 더욱더.
반항하며 엄마 말죽어라 안 듣던 나도 학교는 그만두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끝마치 지 못하는 건 뭐랄까, 엄마를 무너지게 하는 최후의 선 같았다. 친구를 위해 반장에게 접근해 증거 동영상을 빼낼 정도로 남을 위하고 착했던 녀석이라면 분명히 엄마가 마
-HALF of ME- 38 / 181
음에 걸려 괴로웠을 거다.
그런 녀석이 결심을 굳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얼마나 신났을까? 얼 마나 기대에 차고,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그런데 겨우 악마한테서 벗어난 줄 알았던 친구가 다시 놈에게 잡혀 차에 끌려가는 걸 본 거다.
충격이 컸겠지.그러나 달리는 차인 데다 상대는 자기도 폭행을 당한 무서운 놈이 댜 친구를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댜 아마 대부분 모른 척하거나 발만 동동 구르면서 움직이는 차를 지켜만 봤겠지.나라도 그럴 거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런데 조금만 놀라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겁쟁이가 어떻게 차 앞으로 뛰어들었는 지 모르겠댜 어떻게 누군가를 구하려고죽을 각오로 달려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택인 이는 내가 처음에 생각한 녀석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였다.감히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 고 말하기도 과분한 아주 좋은 녀석이었다.
띠리링 一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에 우민재의 이름이 떴다.
”응.“
「택인이 몸에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모르지.요.”
하긴.그가 중얼거리곤 차분히 말했다.
「목요일에 학교 꼭 나와라.방학식이야.」
"시상식도 아닌데 뭐 하러? 요?"
「홍한영 만날 거야.홍한영이 정말로 원인이라면 택인이 몸으로 직접 마주해야 하 잖아.」
"왜 하필 목요일인데? 요? 그냥 당장 만나러 가면 되잖아.요.”
지금도 겨우 두세 시간 깨어있는 게전부인데 그때는 얼마나 줄어들지도 모르고.게
-HALF of ME- 39 / 181
다가 학교라니?
「우리가 만나러 가면 재미없지.그 녀석이 흥분해서 학교로 오게 해야지.」
"흥분? 어떻게?"
「어제 동영상 뿌렸어.」
어제라면 일요일 아침? 무슨 동영상? 내가 연달아 묻자 그가 친절히 설명했다.
「야동 사이트에 퍼진 것과는 반대로 정범이 얼굴은 가리고 홍한영 얼굴이 나온 거.」
“일시적인 방법은 안 된다며? 요? 처음에야 놀라서 좀 떠들겠지만, 몇 달 지나면 다 잊을걸 요.”
「한 사람만 안 잊으면 돼.그러라고 특정인들한테만 뿌렸으니까.」
“그런데 동영상을 뿌린 걸로 혹시 정범이가 의심받지 않을까? 요? 개한테 해코지하 면 어쩌려고? 요?"
「정범이 서울에 없어.어차피 곧방학이라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치료받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냈어.본인이 원하면 외국으로 보낼 거야.후 원자도 있고.」
"후 원자? 누구? 요?"
「아무튼 넌 방학식 때만 제시간에 오면 돼.정범이를 못 찾으면 홍한영이 택인이를 의심하고 학교로 달려을 테니까.오늘 반장 상담하면서 택인이가 방학식 날 얼굴 비칠 거라고 알려줬어.」
물어볼 게많았지만,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다.한 사람만 안 잊으면 된다니, 그게 누군데? 특정인들이라니, 대체 누구한테 동영상을 보냈는데? 반장하곤 난데없이 웬 상담이야? 그러나 녀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바쁘다며전화를 끊었다.난 끊어진 휴대 폰을 보며 내 마음을전했다.
”이런 씨 벌놈을 봤나?!"
-HALF of ME- 40 / 181
우민재가 일요일 아침 퍼트렸다는 동영상은 5분짜리 편집본이었다. 반장 형의 얼 굴이 똑바로 보이는 부분과 최악의 장면이 교묘하게 섞여 원본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 한 영상이 되었댜 누가 편집했는지 기가 막힌다는 말이 나을 정도로 역겨웠다.
동영상을 받은 특정인들은 바로 일요일 아침 한 대형교회로 모인 신도들이었다. 제 목은 이러했댜
'xx 교회 000 권사의 큰아들.’
000 권사는 반장의 어머니 이름이었다.우민재의 말이 맞았다.반장의 어머니는 잊지 못할 거댜 원래 피해자는 잊지 않는 법이니까.
교회 사람들이 몇 달 뒤 모두 잊어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낸다고 해도 반장 어머니의 가슴속엔 이미 동영상이 깊이 박혀죽을 때까지 빠지지 않을 거다. 동영상엔 홍한영이 나왔지만, 주인공은 제목에 떡하니 이름이 적힌 그의 어머니가 됐다.
나 는 혹 시 라 도 이 동 영 상 때 문 에 원 본을 찾 는 사 람 이 늘 까 봐 걱 정 했 는 데 우 민 재 는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자신의 이름이 역겨운 SM 야동의 제목에 떡하니 박 힌 반장 어머니가 동영상이 퍼지는 걸 알아서 막아줬다.같이 제목에 언급된 대형 교회 역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영상을 지워주고 있다고.
일요일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반장은 다음 날 학교에 나왔다.
그러나 이미 학교에도 그 동영상이 퍼져서인지 말들이많은 상태였다.우민재는 반장 을 불러 상담이란 명목으로 조언해줬다고 한다.
네 형의 동영상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너 라는 얘기가 있다.혹시 동영상 에 너 도 찍힌 건 아니냐? 네 형은 이미 동영상이 퍼져 어쩔 수 없지만, 만약 네가 찍힌 동영상이 있다면 모두 없애고 절대 밖으로 퍼지지 못하게 해라.넌 앞으로 대학교 가야 하고 앞날이 창창하니 절대로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마라.진심을 반쯤 담아 충고했다 고.
진심이 통했는지 반장은 얘기를 듣는 내내 사색이 되어 정신이 딴 데 가있었다고 한
-HALF of ME- 41 / 181
댜 아마도 자신이 찍혔을 동영상이 형의 컴퓨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두려웠겠지. 내 가 반장에게 받은 인상은 자기 형을 존경하면서 한편으론 무서워한다는 거였다. 얼마 나 존경하면 형이 역겨운 범죄를 저질러도 대단하다고웃으며 감상했겠는가.
그러나 원래 팬이 돌아서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지금은 혼란스러워도 결국 형을 미 워하게 되겠지.그래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형의 손에 자신의 약점이 있다고 믿을 테니까.
우민재의 말대로 두 사람은 좋은 감시자가 될거다.게다가 우민재는 둘의 아버지에 게도 어느새 손을 써놨다. 그걸 안 건 방학식 날이었다.
-HALF of ME- 42 / 181
두 시간.제발 두 시간만이라도 버티자.택인이에게 말하듯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에 서 내렸댜 그러나 한 시간 반만 넘겨도 기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어제 이미 그만큼 을 채우지 못했다.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이것도 최대치다.지금 걸어가다가 픽 쓰러질지도 모른댜
그러나 우민재가 준비한 이 자리를 꼭 택인이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우민재는 아무 말 안 하지만,겨우 며칠 사이에 일을 진행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테니까.내가 해야 할 일을 그가 대신 했다는 점이 미안하고,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복잡하다.요 며칠 만 난 적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했지만,나중에 꼭 고맙다고 인사해야지.아니,오늘 일이 잘 풀린다면 해달라는 건 다 해줄수있다.오기 전 녀석과 통화를 했었다.
'내가 반장 형 새끼를 직접 때리는 건 안 된다고 했지만, 택인이 몸으로 때리는 건 말
리지 먀 택인이가 깨어나려면 이 녀석 몸으로 일을 해결해야 하잖아.이 녀석도 얼마 나 그 새끼를 패고 싶었겠어? 그러니까 네가 말려도 택인이 몸일 때는 무조건 달려들 어 팰 거 야 .’
'해.’
'안 말려?'
'안 말려다음껏 때려.'
그는 뜻밖에 등을 밀며 응원해줬다.
텍인이한테 두려움에 눌려 발산하지 못한 분노가 있다면 터트리는 것도 좋지. 어차 피 그 자리에서 반장 형을 처벌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너도 잊지 마. 제일 중요한 건 택인이를 깨어나게 하는 거야.’
J......깨어날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너도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까.’
그래, 택인이에겐 터트리지 못한 분노가 분명히 있을 거다.반장 형을 보면 또 몸을
-HALF of ME- 43 / 181
떨고 두려워하겠지만, 뭐 어떠랴. 내가 있는데. 그나저나 왜 내 뒷일을 우민재가 책임 지는데? 내가 한 짓은 내가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저리 든든하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하다. 반장 형이 학교 앞으로 안 오면 어 쩌나 하고 조금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게다가 녀석은 전처럼 멀끔한 모습으로 외제차 를 타고 나타나 여유롭게 학교 앞에 서있었다.
어머니가 화났을 텐데 저 자식을 그냥 놔뒀나? 하긴, 듣기로는 쓰러져서 병원에 입 원했다는 말이 있었다 반장 형은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화병으로 쓰러졌고, 모두가 자 신을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는 걸 알 텐데도 뻔뻔하게 낯짝을 쳐들고 있었다.
그리곤 죄책감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이제 막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뻔 히 쳐다보고 있었댜 기가 막혔다.나는 그가 찾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직접 그의 앞으 로 나서기로 했댜 이 새끼, 진짜 패줘야겠네.
가족의 비난, 사람들 사이에 퍼진 자신의 동영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면 또 그런 짓을 하고 다닐 거 아니야? 그런데 한 걸음 내딛기 전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 댜 돌아보니 오늘 이곳까지 데려다준 충연 씨와 지용이였다.
"몸조심해.“
내가 뭘 할지 눈에 보이나 보다.아니면 택인이 몸으로 맞는 게 걱정일지도. "바로 주먹질할 생각은 없어요. ”
“제발 그래 주면 고맙고. ”
고마울 것까지야. 난 머쓱하게 눈을 돌리며 차 안에 누워있는 날 봤다. 택인이가 언 제 쓰러질지 몰라 친절히 내 몸까지 실어서 왔다. 이유야 뻔하다. 택인이 몸으로 다 못 때리면 바통 터치해서 내가 때리려고. 모두가 뜯어말린 일이지만 저놈을 곱게 보내는 것보다야 낫겠지.
“괜찮을 거예요. ”
이번엔 지용이가 말했다. 난 두 사람을 잠시 봤다. 내가 칼 들고 설치겠다는 것도 아
-HALF of ME- 44 / 181
닌데 왜 저렇게 긴장하고 있어?
"당연히 괜찮지. 별일도 아닌데.”
대꾸해주고 반장 형에게 다가갔다.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갈 때마다 택인이 심장 이 반응했댜 쿵 쿵, 쿵.심장이 크게 뛰지만, 우민재 때와는 달리 기분 나쁜 한기를 동 반했댜 상대가 날 들아봤을 때 박동이 더 커졌다. 특히나 택인이를 알아보고 피식웃 을 땐 걸음을 멈출 뻔했다.야,야, 저딴 새끼 하나도 안 무서워.숨어있을 택인이를 다 독이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널 기다리는 거 어떻게 알고?"
반장 형이 계속 쪼개며 물었다.그러나 눈은웃지 않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그래, 너 도 시궁창에 빠졌는데 바보처럼 마음 편할 리가 없지.
"정범이 어디 있어? 너 알지?"
"몰랴"
"잘 생각해봐 아니면 너 도 나한테 당하고 싶어?"
쿵 심장이 낮게 내려앉았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며 어깨를 으쓱해보 였댜
"너 유명해졌던데 아무렇게나 행동해서야 되겠어?" "너?"
“그럼 별명으로 불러줄까? 개새끼야, 너 유명해졌더라" 그가 기가 막힌다는 듯 크게웃었다.
“아,씨발,이자식이뭐라는거야?너 돌았냐?사람들많은곳이라뒷감당도안하 고 막 지껄여?"
"네 뒷감당이나 잘해 충고할 처지가 아니 잖아?"
-HALF of ME- 45 / 181
그는 다시웃었댜
"왜? 내가 그껏 동영상 하나 퍼진 걸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적어도 네가 머리가 있다면 그런 척이라도 했어야지. ”
콧방귀를 뀌는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처음엔 떨리던 목소리는 말을 할수록 점점 안정을 찾았다.
"네가 그렇게 사는 건 네가 잘나서가 아니야.네 뒤를 봐주는 부모님 때문이지.이번 일로 어머니 충격이 크시지? 쓰러지셨다며? 하지만 넌 예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싸 돌아다녔겠지. 그런데 부모도 사람이야.자식의 존재가 아무리 커도 자식보다 중요한 게 있어. 자식들은 모두 착각하지.부모에겐 당연히 내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고, 1순 위여야 한다고. 그런데 말이야, 자식이 아무리 귀해도 자기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위협받으면 자식에게 한없는 사랑을 줄 순 없어. 네 어머니한테 가장 소중한 건 월 것 같아?"
그는 이상하다는 듯 날 찌푸린 눈으로 봤다.
"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교회와 어머니회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네 어머니가 월 중요하게 여기는지 자식인 네가 몰라? 제삼자인 나도 알겠는데 진짜 몰라?"
''씨발,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네 어머니의 깨진 자존심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넌 안 보이겠지.더는 네게 자유를 주지 않고, 네 생활을 옵아매리라곤상상도 못 할 거고. 항상 네 뒤를 봐주시던 분이니 까 그러고 보니 이번엔 어머니가 뭐라셔?"
그가 말없이 날 노려봤다. 확실히 전과는 다른 반응이었나 보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싸돌아다니다니.
"헛소리하지 마. 어차피 외국에 몇 년 다녀오면 끝이야. ”
-HALF of ME- 46 / 181
”? .
뭐”
"도망가 있으면 잠잠해지긴 하겠지. 그런데 너희 가족도 그럴까? 다녀와. 그리고 뜻 대로 되는지 지켜봐.”
이곳에 오기 전 우민재에게 들은 정보가 있다.반장의 어머니가 큰 결심을 앞두고 있다고.
“사고로 머리가 이상해졌다더니 너 다른 사람이라도 됐냐?"
심장이 여전히 떨렸댜 끔찍한 폭력을 몸이 잊지 못하는지 손에서 자꾸 땀이 났다.
일부러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돈도 없고, 네 뒤를 봐줄 백도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냐.그냥 좇밥이지.”
”이 새끼가!"
그가 큰 소리와 함께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이미 예상해서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뒤로 물러서느라 몸이 휘청거렸다.반장 형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멱살을 잡았다. 그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비웃음을 날렸다.
"내가 너 기억 찾을 수 있게 전처럼 손봐줄까? 아니다, 그냥 네가 정범이 대신 해
2.�."
입이 안 벌어졌댜 손으로 그를 밀치고 계획대로 한 대 쳐야 하는데 몸이 굳어버렸 댜 빌어먹을 녀석의 말에 택인이 몸이 공포에 묶여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왜? 무서워? 재미있을.......”
말을 하던 녀석이 갑자기 눈을 찌푸렸다. 동시에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겼고,
바로 근처에선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택인이한테서 떨어져!"
뭐야? 놀라서 돌아보니 충연 씨가 날 끌어당기고,지용이가 옆에서 힘을 보태며 소 리친 것이었다
"야, 이 나쁜 놈아!! 택인이 괴롭히지 마!!”
-HALF of ME- 47 / 181
그의 큰 목소리가 내 귀를 괴롭혔다• 에이 씨, 고막 터지는 줄 알았네! 갑자기 왜 튀 어나왔어?
"당신들 뭐야?"
반장 형이 기막혀하며 묻자 택인이 몸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던 충연 씨가 답했다. “택인이 보호자댜"
“그래, 우린 택인이 보호자야!"
언제부터?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나도 기가 막혔다.둘이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정 말로 몰랐댜 아마 내가 맞는다고 생각해서 온 것 같은데, 걱정은 고맙지만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댜 또 픽 쓰러지기 전에 이 몸으로 저 녀석을 패줘야 한단 말이다.저기 요, 둘을 부르려고 했으나 그들은 내 앞을 막아서선 소리치기에 바빴다.
"네가 원데 우리 택인이를 때려!"
"너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저 녀석을 때렸다고.......” "닥쳐! 네가 원데 우리 택인이를 협박해!"
"뭐? 이봐, 너희 둘.......”
반장 형은 2대1로 밀리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나 역시 그랬다.끼어들 틈이 없 었다 둘은 미리 준비라도 한 건지, 상대가 말을 못 하게 계속 쏟아냈다.
"너 재수 없게 깐죽대고웃으면서 우리 택인이한테 뭐라고 했어? 욕했지?!"
''충연 형, 욕한 게 분명해요.너 우리 택인이가 무식하다고, 바보라고 놀린 거 맞 지?!"
"너 우리 택인이가 무식하다고 만만하게 보면 가만 안 둬!”
......뭐지, 이 기분 더러운 느낌은? 그러나 내 느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침착함을
되 찾 은 반 장 형 이 우 리 셋 을 보 며 비웃 었 다 .
-HALF of ME- 48 / 181
"같은 머저리들이 끼리끼리 노네. ”
그 말에 앞의 둘이 감동했다.
"야, 말조심해.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맞아, 충연 형은 똑똑해! 그리고 나도 반에서 꼴찌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확실히 기분 더러웠다. 난 둘을 이 자리에서 내보내고 싶어 어깨를 잡았다. 충연 씨 가 돌아봤지만, 그는 다른 곳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여깁니다, 회장님!"
회장님?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돌부처처럼 굳어버렸다. 열 명 남짓한 아저씨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다들 손에는 하나같이 빨대가 꽂힌 형 형색색의 아이스크림 음료를 들고 말이다. 난 눈을 의심했다. 대체 왜 조기 축구 회장 님과 유기농 회원들이 여기에 있는데?
"어- 그레 대체 무슨 일이야?"
”이 사람이 택인이 때리고 욕하면서 괴롭혔어요!"
지용이가 얼른 일러바쳤댜 어느새 우리를 둘러싼 아저씨들이 일제히 날 돌아봤다.
그리곤다들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요즘 우리 유기농 열심히 응원하는 그 착한 학생이잖아?"
"맞아. 그 학생이네. 우리 팀 팬이잖아. ”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아는 척을 하곤다시 일제히 반장 형을 봤다. 단번에 눈빛이 변했다
"야, 너 뭔데 이 학생 건드려?죽고 싶어?"
반장 형은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겁먹을 만도 한데 끝까지 버르장머리를 놓지 않 았댜
-HALF of ME- 49 / 181
"당신들 뭐야? 왜 단체로 사람을 협 박해?"
’' 협박은 네가 했다며? 이 착한 학생을 왜 괴롭히는데?"
누군가의 질문에 또 지용이가 얼른 답했다.
"저 녀석이 택인이 친구를 강간하고 동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퍼트렸는데, 택인이가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택인이를 막 때렸대요! 그리곤정신 못 차리고 또 협박하러 왔 어요!"
음료수를 쪽쪽 빨아 먹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경악하며 반장 형을 노려봤다. ''씨벌, 못돼 처먹은 놈이구먼!"
"강간?! 그럼 감옥에 처넣어야지!"
지용이가 얼른 외쳤다.
"강간당한 친구가 남자라서 부끄럽다고 신고 안 하려고 한대요! 그리고 저 녀석 부 자라서 백도 좋대요!"
아저씨들의 얼굴이 단체로 일그러졌다.
"저, 저, 변태 새끼를 봤나!"
"완전 인간쓰레기 아냐? 매장당해야 정신 차리겠네!"
"야, 이 새끼야,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쓰레기 짓을 해?!"
아저씨들의 삿대질에 반장 형이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
"비켜 안 그러면 당신들 경찰에 다 넘겨버릴 거야. ”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동시에웃음을 터 트렸다 푸하하하― 나도 속으로웃었 댜 왜 아니겠는가? 경찰?
"하하- 야,불러.경찰 불러.내 동생이 경찰인데 직 접 불러주랴?"
-HALF of ME- 50 / 181
그랬다,회장님 동생이 경찰이다.
"경찰 특공대에 있는 내 매제도 부를 테니까,거기 박 사장 사촌도 부르지? 경찰이 라며?"
"응 폴리스야. ”
“아,나도 친한 형사 있어.전화해볼게. ”
다들 아는 경찰을 하나씩 대며 반장 형을 조롱했다. 감히 유기농의 탄탄한 공권력 인맥 앞에서 경찰 운운하다니. 아무리 주먹 좀 쓰는 반장 형이라도 열 명 넘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도 이렇게 정신이 없는데. 난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앞 으로 나서려고 했지만,회장님이 내 움직 임 을 보곤손으로 막았다.
"넌 뒤에 빠져있어라 저런 못된 놈은 우리 어른들이 따끔하게 혼내줄 테니까,어린 애는나서는 거 아냐. ”
하지만....... 말을 꺼내려던 내 어깨에 다른 회원의 손이 올라왔다.
“그래,넌 아직 학생이니까 저런 놈 혼자 상대할 필요 없어. 우리가 혼내줄게. 넌 억
울한 거 있으면 어른들한테 말하면 돼. ”
"진즉에 어른들한테 말하지 그랬어. 저런 놈 상대하는 건 네가 혼자 하기 어려워. 지 금이라도 우리가 알았으니 넌 걱정하지 마라. ”
툭툭. 투박하고 굳은살 박인 손들이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놈 겁먹었나 본데? 얼굴이 창백해. ”
"겁먹을 만하지. 얀마,혼자서 얼마나 꿍꿍댄 거야? 어린놈이 그러다가 속병 나면 어쩌려고.괜찮아 이제괜찮아. ”
다들 시장에서 일해 인상도 거칠면서 손에는 알록달록한 음료수 하나씩 들고 위로 라니. 게다가 차가운 음료를 들고 있어 토닥여주는 손은 축축이 젖어있었다. 뭉툭하고 굳은살이 박인 손은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러나 얼떨떨했다• 당황스러웠다. 뜨거운 무 언가가 목에 걸렸다.
-HALF of ME- 51 / 181
아저씨들을 볼 수 없어서 눈을 돌렸다가 어느새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에서 아는 얼 굴을 발견했댜 우민재였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눈으로 묻자, 알아들었는지 그 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그때 앞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비켜! 씨발, 비키라고!"
반장 형이 에워싼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는지 아저씨 하나를 밀쳤다. "어이쿠― 이놈이 사람을 치네!"
아저씨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다른 아저씨들이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반장 형 에게 한마디씩 했댜 반장 형의 악다구니도 같이 높아질 때, 누군가의 근엄한 목소리가 싸움판에 끼어들었댜
“대체 학교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학부였다.그는 누군가 불러서 왔는지 헐 레벌떡 뛰어와 근처에서 구경하던 학생들에게도 소리쳤다.
"너희는 방학식 끝났으면 어서 집에 가!"
학생들이 조금 흩어지는 듯했으나 멀리 가지 않았다.그리고 아저씨들의 틈이 벌어 지며 반장 형이 보이자 하나둘 아는 척을 했다.변태 야동 주인공이다, 2학년 5반 반장 형이다, xx 교회 000 권사 큰아들 맞지?
다들 눈썰미 좋게 단번에 알아봤다.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는지 반장 형의 표정이 굳었다 난 학부를 보다가 그 근처에서 창백하게 선 반장을 알아차렸다. 그는 멀리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우 선생,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날 부를 게 아니라 경찰을 부르든가 해야죠.”
학부가 근처에 있던 우민재에게 뭐라 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제가 나서면 한쪽 편을 든다고 오해받을 게 뻔해서요.”
-HALF of ME- 52 / 181
무슨 소리냐? 묻는 학부에게 우민재가 뒤의 반장을 가리켰다.
"저 사람 2학년 5반 반장 흥선규 형입니다. ”
학부는 이해한 듯 되묻지 않았다. 학교에서 반장 어머니와 우민재 사이에 있었던 일 을 모르는 선생은 없었으니까. 대신 뒤에서 움찔하는 반장과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인 반장 형을 번갈아 보았다.그리고 그제야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도 본 모양이
"김택인,넌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저 녀석이 택인이 친구를 강간하고 동영상 찍어서 인터 넷에 퍼트렸는데, 택인이가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택인이를 막 때렸대요! 그리곤 정신 못 차리고 또 협 박하러 왔 는데, 아저씨들이 말리려고 하니까 쌍욕 하면서 막 밀쳤어요!"
안 봐도 지용이다. 학부가 날 쳐다봤다.너 이리 와서 제대로 설명해.그의 입에서 금 방이라도 이렇게 호통이 나올 것 같았는데 그는 날 한번 보곤 몸을 틀었다.그리고 내 가 아니라 뒤에 있던 이를 불렀다.
"홍선규. ”
반장이 깜짝 놀라서 학부를 쳐다봤다.
”이리 와'’
.......
II II
"와서 설명해.오라니까?"
학부가 엄한 목소리로 명령했으나, 반장은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뒷걸음 질 쳤댜
"홍선규, 내 말 안 들려?!"
흠칫 언성이 높아지자 반장이 놀라서 다시 어깨를 떨더니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
댜 구경하던 학생들이 도망치는 반장을 보며 수군덕 댔다.할 수 없이 학부는 다시 날
-HALF of ME- 53 / 181
쳐다봤댜 잘못한 게 없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학부가 다가오며 물었다.
"저 사람이 너 괴롭혔어?"
그가 눈으로 가리키는 건 반장 형. 끄덕끄덕. 작게 고갯짓하자 그가 내 팔을 잡고 뒤 로 뺐댜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서 반장 형과 마주 봤다.
"당신이 내 학생을 괴롭혔습니까?"
학부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쿵,쿵, 느리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170cm 정도밖 에 안 되는 학부의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그대로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암전이 됐댜
눈을 뜨니 좁은 차의 내부가 보였다. 난 뒷좌석에 구부리고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습관처럼 고개를 좌우로 꺾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모여 응성거리는사람들이 보 였다 난 그쪽으로 걸어가며 어깨도 들리고 팔도 아래위로 꺾어 몸을 풀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곧사람들에게 가까워졌고,수군거리는 사람들 한가운데 바닥에 누 운 택인이가 보였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그쪽이 아니었다. 뒤로 빠져서 인상을 쓴 채 택 인이를 보다가 몸을 트는 놈만 눈에 들어왔다. 그가 뒤돌아 앞으로 발을 내딛기전에 탁,그의 어깨를 잡아했다.
"뭐야....... ”
돌아서며 성질부리던 그가 날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아마도 내 얼굴을 알아본 것 같았댜 뭐, 상관없댜 난 바로 주먹을 날렸다 퍽! 제대로 맞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반장 형이 뒤로 나자빠졌다.
''옥!"
충격이 큰지 바로 일어서지 못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재빨 리 두 번째 주먹을 날렸다. 이번엔 턱에 정확하게 맞았다. 난 쓰러지려는 상대의 몸을
-HALF of ME- 54 / 181
이번엔 놔주지 않았다.그대로 연달아 주먹질했다.
IIOOH'’
―-,.
그가 비명을 지르며 나됭굴었다.아래턱을 감싼 손에 피가 묻어나왔다.뒤에서 그제 야날알아차린사람들의소리가들렸으나난오로지반장형만보며 발로놈을걷어 찼댜 주저앉았던 녀석의 가랑이 사이에 정확하게 내 발이 꽂혔다.
다시 신음이 들렸다.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날 말리는 사람 들의 목소리와 손들이 몸을 잡았지만, 난 끝까지 한 대라도 더 치려고 쓰러진 녀석의 가랑이 사이를 운동화로 온 힘을 다해 내리꽂고 짓밟았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소리도 둘리지 않았다. 오직 반장 형만 보 였다 난 말리는 손들을 뿌리치며 기를 쓰고 그에게 다시 달려들었다.정확하게 한 곳 만 노리면서.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까지 누구도 날 멈출 수 없었다.
경찰서로 가야 할 인원이 너무많아서 대표로 나와 우민재만 갔다. 나한테 처맞은 반장 형은 쓰러진 와중에도 모든 사람을 깡그리 잡아가야 한다고 난동을 피웠으나 다 른 이들의 신분을 확인한 경찰이 우리 둘만 가겠다는 말에 동의했다.어쨌거나 폭력을 행사한 건 나뿐이니까.유기농 회원들은 잡혀가는 날 보며 걱정 어린 말을 한마디씩 건 냈댜
’넌 그 성질머리가 문제야.’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한동안 얌전히 지낸다 했더니만.그 성 질 어디 안 갔네,안 갔어-'
사고 뒤처리보다 유기농 아저씨들 잔소리가 더 귀찮았다. 분명히 큰아버지한테도 이를 텐데.눈앞의 경찰보다 큰아버지한테 불려갈 일이 더 무서웠다.게다가 경찰서에 앉아있는 내내 아저씨들한테 문자가 계속 왔다.
-HALF of ME- 5 5 / 181
[희찬아, 내 동생한테 연락해놨다. 걱정하지 말고 있어.]
[무조건 합의 본다고 해. 성질대로 끝까지 가지 말고, 합의해! 돈은 우리가 보태면 되니까.]
[나 아는 변호사 전화번호다. 저장해놓고 혹시 저쪽에서 변호사 대동하면 너도 지 지 말고 불러.]
[구속되는 거면 무조건 나한테 바로 연락해라. 내 단골집 아들이 검사야. 졸지 말고, 알았지?]
아저씨들이 나이 먹으니 잔걱정만 늘었다. 난 끊임없이 울리는 문자에 휴대폰을 무 음으로 돌렸다.그리고 누군가와 길게 통화를 마치고 옆에 앉는 우민재에게 물었다.
“유기농 회원들 네가 불렀어?"
”응.“
"왜 불렀는데?"
“택인이 깨우려고. 심장이 느껴야 한다며? 걱정해주는 이가많으면 효과가 늘까 해 서. 비록 택인이가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넌 알잖아. 네가 아는 이들에게 걱정과 도움 을 받으면 너라도 원가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택인이에게도전해질 테고. ”
.......
JJ"
"별로였어?"
별로긴. 난 괜히 칭 찬하는 게 어색해서 적당히 답했다.
“사람 수로 밀어붙이는 거 괜찮은 인애전술이네. ”
.......
JJII
”왜?”
“그냥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 놀랐다 인애전술. ”
-HALF of ME-
56 / 181
당연하지.내가 사자성어는 꽉 잡고 있다 邊 그때 우민재가 물었다. "효과 있었어?"
JI "
''권희 찬.”
"학부도 그래서 불렀어?"
응 그가 가볍게 답하고 날 뻔히 봤댜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가 보다.
심장의 반응은 분명히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장에 온기가 퍼지고, 목까지 뜨거운 게 올라왔으니까.이게 내 반응인지 택인이의 반응인지는 모르겠다.효과가 있는지 없 는지는 아직 모른다.효과가 있다면 택인이가 깨어나겠지.
“사실은 나도 학생부장 선생님이 널 도와줄 줄은 몰랐어.그렇게 화내실 줄도 몰랐
고.“
''화내셨어?"
“택인이 쓰러지고 반장 형한테 애 자극해서 쓰러지게 했다고 엄청나게 화내셨어.
못 들었어?"
몰랐댜 난 그냥 반장 형만 패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그 녀석밖에 안 보였다.그래 도 열심히 때려서 그나마 쌓였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택인이 몸일 때 때리지 못 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구?”
"누구긴.반장 형, 그 자식이지.”
"부모가 알아서 잘하겠지.”
우민재가 태평하게답했다.난 오히려 답답한 듯 녀석을 봤다.사실 반장 형에게는 허세 떠느라 네 엄마가 이제 네 뒤는 안 봐줄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불안했다.자식
-HALF of ME- 57 / 181
이 아무리 사고 쳐서 망신을 줬다 해도 버릴 수는없지 않은가?
“나한테 맞고 누운 게 불쌍해서 다 용서라도 하면 어쩌려고?"
"너한테 맞은 것보다 또 사건을 만들었다는 게 더 신경 쓰이고 화가 날걸.” “제발 그래서 네 말처럼 평생 감시해줬으면 좋겠다.”
“그럴 거야.아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테니,철저히 감시할 수밖에.” 아둘의 앞날이라.부모라서 자신에게 망신 준 아둘이라도 앞날을 위하는 걸까?
“그 어머니 대단하다.아들 잘못은 절대 인정 안 할 정도로 자존심 세 보이던데.이 번 일은 잘못을 덮을 수도 없잖아.게다가 교회라면 도덕적으로도 엄격할 텐데 그런 사 람들한테 다 퍼졌고.그런데도 아들의 앞날을 위해 뭐든 한다니.”
"하겠지.둘째 아들을 위해선.”
"뭐?"
“아직 자랑스러운 아들이 하나 더 남았잖아.둘째.”
그래, 반장이 있지.그런데 반장을 위해 첫째를 감시한다고?
"반장 어머니가 지금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멀쩡한 아들이 하나 남아서야.그 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들만큼은 지키려고 들겠지.그런데 자신을 실망시키고 망 신 준 큰아들이 찍은 동영상에 둘째의 모습도 담겼다는 걸 알면? 큰아들은 이제 자식 으로도 안 보일걸.”
"자식으로도안보이다니,야,설마......”
"두고 봐 반장이 울면서 누구한테 매달렸을 것 같아? 아버지? 형? 당연히 어머니 야 오늘 학교 앞에서 망신당한 형을 보니 무섭고 두려웠겠지 자기 모습이 될수도 있 으니까.집으로 달려가선 엄마 붙들고 울었을걸.내가 했던 충고를 그대로 내뱉었겠지. 형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할까 무섭다고. 반장도 형의 나쁜 짓을웃으며 구경했지만, 그 의 어머니에겐 중요하지 않아.반장 말처럼 하나 남은 아들의 미래가 망가질까,그 걱
-HALF of ME- 58 / 181
정만 하겠지. 완 고한 개네 아버지보다 오히려 어머니가 더 강하게 조처할 거야. ”
우민재의 말이 어딘지 섬뜩했다. 그가 덤덤하게 내뱉는 추측이 너무 사실 같아 그럴 지도. 저 집안 이상해. 아니, 평범한가? 모르겠다.
"무슨 조치?"
“전직 임시 교사로서 그쪽 아버지에게 조언한 게 있어. 둘째 아드님이 동영상에 같 이 찍힌 것 같은데 첫째 아드님의 악영향인 것 같다.첫째 아드님을 둘째에게서 떨어트 려놔라"
전직 임시 교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궁금한 걸 먼저 물었다.
"다른 곳으로 보낼 것 같아? 그 자식 외국으로 가면 된다, 어쩐다 하던데?" “대외적으로는. ”
"실제로는 계속 한국에 남는다는 거야?"
"응 국내에도 시설은많으니까"
시설?
"감옥에 가둘 수 없으면 다른 감옥에 가둬야지. ”
나는 우민재가 가볍게 말하는 시설이 치료라는 명분으로 가두는 강제 요양소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거기에 반장 어머니는 아들이 병이 든 거라고 굳게 믿고 독한 정 신과 약물 치료를 했다는 점도. 그게 반장 형을 아무 생각도 못하는 인형으로 만들었다 는 걸 훗날전해 들었다.
"넌 그 얘길 어디서 들었어?"
“그쪽 아버지와 통화했어.”
좀 전에 나가서 전화한 사람이 개네 아버지였나 보다.그런데 단순히 조언만 한 느 낌은 아니었다.
-HALF of ME- 5 9 / 181
"너 개네 아버지한테 압력 넣었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글쎄, 만큼이나 재수 없는 답이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그가 물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너.결국 힘 있고, 돈 있는 네가 나선 덕분에 해결이 됐잖아.만약 네가 아니었으면 그 새끼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세상이 참 엿 같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나섰으니 됐잖아.만약이란 가정은 필요 없어.중요한 건 앞으로야.”
”앞으로?”
“그 부모와 반장은 우리가 지켜봐야지.”
하긴 언제 또 마음이 바뀌어서 망나니 아둘을, 형을 풀어줄지 모르니까.
"알았어. 아무튼 그 자식이 고딩들 눈에만 안 띄고 괴롭히지만 않으면 상관없어.그 런데 너 학교 그만뒀어?"
"응 원래 한 학기 계약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뭐 할 건데?"
II ”
”왜?”
“나중에 말하자.”
뭔데 나중에 말해? 난 궁금했지만,우리 담당 형사가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고 있 었댜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었다.저쪽에서 합 의해주리란 기대는 없다.무조건 처벌을 원하겠지.
-HALF of ME- 60 / 181
나 역시 사과하고 합의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씨바, 감방 가면 가는 거다. 이런 각오 도 없이 그 새끼의 갈비뼈에 금을 내진 않았다.좇을 박살 내고 싶었는데 실패한 게 아 쉬울뿐.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내게 형사가 말했다.
“그냥가셔도됩니다"
"왜요?”
"왜긴요,그냥 가셔도 되니까 그러죠.”
그냥이라니?
”고소는요? 저쪽에서 제 처벌을 원하지 않아요?"
"네.이미 얘기 다 끝났다고 하던데요 권희찬 씨 쪽에서 제기할 문제가 없는 이상 아무 일 없던 걸로 마무리 짓겠다고 합니다. ”
아무 일이 없었다니? 내가 그 새끼 성불구 될정도로 좇을 그렇게 걷어찼는데? 그 리고 가해자인 나랑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 얘기가 끝난.......어리둥절해 하다가 그제야 옆자리의 우민재를 돌아봤다. 그리고 앞에선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줄 였댜
"너 반장네 아버지하고 대체 무슨 얘길 했어?" "말했잖아전직 임시 교사로서 조언했다고.”
“그리고 압력을 넣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 잘 아 네 .”
난 녀석을 뻔히 보며 고민했다.이 자식 되게 재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
은데.죽빵을 날릴까 말까?
“그런데권희찬싸"
경찰이 날 불렀댜 돌아보니 그가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물었다.
-HALF of ME- 61 / 181
"혹시 유명한 사람이에요? 나 찰 권희찬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며 알아보는 경찰이나 일반인전화가 이렇게많이 온 것도 처음이네. 진짜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 맞아요?"
"맞습니다.전화는 제가 유기농 회원이라서많이 온 걸 겁니다. ”
"유기농? 그게 무슨 조직인데요?" “조기 축구회요. ”
IIII
"제가 원톱 스트라이커예요.”
경찰은 말없이 날 보기만 하다가 어서 가라며 손짓했다. 경찰서를 나오면서도 일이 너 무 쉽게 끝난 거 아닌가 싶어 뒤를 한번 돌아봤다.
"빨리 나오니 아쉬워?"
“아쉽네. 유치장에서 먹는 밥이 맛있는데. ”
l'먹어봤단 소리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 ''먹었구나.”
......뭐지, 왜 이 녀석은 바로 맞히지? 원가 억울함을 느끼는데 우민재의 휴대폰이 울 렸다 급한 전화인지 그는 양해를 구하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통화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였지만, 통화 내용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영어였댜 캐나다에 있는 사람이랑 통화하나? 그러고 보니 아까 하려던 말은 뭐였 을까? 임시 교사 일이 끝나고 녀석이 할 일. 이미 뭘 할지 결정한 것 같았다. 설마 캐나 다로 돌아가려는 걸까?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잠시 후 전화를 끊은 그가 빠르게 말을 꺼냈다.
"너 데려다주고 난 바로 갈 곳이 있어. 집으로 갈 거지?"
-HALF of ME- 62 / 181
”됐어. 내가 유치원 가는 애도 아니고 안 데려다줘도 돼. 그리고 집으로 갈 거 아니 야. 시장 사람들한테 보고해야지. ”
다들 안 그런 척하면서 날 걱정할 거다. 그리고 욕을 하겠지, 젠장. 학부 선생님은 나 중에 꼭 음료수 들고 찾아뵐 생각이다. 졸업하고 제일 생각나는 선생님이 그분이었는 데 스승의 날에 전화 한 번 드린 적이 없는 게 후 회스러웠다. 이번 일로 도움을 받은 사 람이많았다전부 꼭 인사해야지. 다짐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동영상 말이야. ”
난 혹시 누가 들을 사람이 있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곤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편집했어?"
"왜?"
“아니, 원가 되게 잘한 것 같아서. 반장 형 얼굴이 잔인한 장면에 교차돼서 나오고 막 그러는데 반장 형 진짜죽일 놈으로 보이더라. 뭐, 내가 잘 알고 하는 말은 아니지 만.“
“아냐, 제대로 봤어. ”
우민재는 의외라는 듯 날 봤다. “전문가가 한 거야•II
“전문가?"
"영상아티스트.”
“아티스트? 예술가? 영상으로 어떻게 예술을 하는데?"
''직접 찍기도 하고, 그걸로 다른 효과를 더하기도 하고.CF 같은 거 생각하면 돼. 실 제로 그런 상업적인 일도 하고. ”
"너 그런 사람도 아냐?"
-HALF of ME- 63 / 181
그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내가 의아해할 때쯤 입을 열었다.
"앤디. “
IJ... ...아"
”이 일을 해줄 믿을 만 한 사람이 앤디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
""
“기분 나빠?"
내가 기분 나쁠 게 어디 있어? 되물어야 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난 시선을 다 른 곳으로 돌리며 떠오르는 걸 물었다.
“그러면 앤디는 소중하게 여기는 게 있으면 동영상으로 찍어놓기도 하겠네?"
"응 강박증처럼 찍어놓더라 내 시합도 전부 직 접 찍어서 소장할 정도니까. ”
""
"신경 쓰지 마.”
’'둘이 다시 연락하는 줄 몰랐다. ”
”갠 안 해 내가 한 거야. 시간이 촉박해서 부탁하느라 연락했어. 다행히 택인이 일 이라니까 기꺼이 도와줬어. ”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네.”
"넌안해도돼.”
그가 차갑게 내뱉곤자신도 반응이 격했다는 걸 아는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넌 앤디하고 엮일 필요 없어.”
"너나조심해.”
-HALF of ME-
64 / 181
"난 완전히 정리됐으니 괜찮지만, 넌. ”
나? 그가 무슨 소릴 하나 싶어 쳐다봤지만,우민재는 그대로 입을 다문 채 날 뻔히
쳐다봤댜
"네가 앤디하고 안 봤으면 좋겠어. 진짜야. ”
"본다고해도안싸워.”
"차라리 싸우는 게 나아. 반대가 될까 봐싫으니까. ”
반대? 싸우는 거 반대면....... 난 눈을 확 찌푸렸다.
"내가 앤디한테 돈 빌려줄까 걱정된다는 거야? 말이 되냐? 난 가족하고도 금전 거 래는절대로안해.”
1....일단 안심이다'
그는말하며시계를봤다.급한일있으면 먼저가.다시한번재촉했지만,그는내게
할 말이 있는 듯 뻔히 쳐다봤다.
”왜?"
"원래 출발 전에 시간이 되면 네 가게 들를 생각이었는데 출국일이 갑자기 변경돼 서 그 전에는 통화밖에 못 하겠다. ”
I I• ... . 출 국 ? "
"캐나다'
그는 짧게 한마디만 하고 돌아섰다. 그게 다였다. 나는 녀석의 차가 떠나고서야 몸 을 틀어 발걸음을 옮겼지만 한동안 내가 어디로 걸었는지 알지 못했다. 멈춰 서서 둘러 보니 모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낯선 곳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민재가 떠난다는 사실 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HALF of ME- 65 / 181
시장의 유기농 회원들에게 모두 인사를 하고 가게로 돌아왔을 때, 남수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녀석이 다짜고짜 물었다. 뭐가? 되물으니 남수가 빠르게 내뱉었다.
「무슨 학교 앞 개싸움이라고 해서 동영상 올라왔는데 누가 일방적으로 한 사람을 패는 거더라고. 사람들에 가려서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뒤태가 딱 너야! 그리고 보니 까 학교는 네 모교더라? 너 맞지? 어?」
"별게 다 올라오네. ”
「역시 너구나. 어? 그럼 너 설마 지금 유치장!」
”가게야. ”
「왜?」
왜라니?
"넌 친구가 감방에 갇히면 좋겠냐?"
「그게 아니라.......」
“나한테 맞은 쪽에서 처벌을 원치 않았어. 합의도 없이 그냥 나왔다. ”
「맞은 놈이 어지간히 잘못했구나? 하긴, 네가 그 정도로 뚜껑 열린 거 보고 상대가 어마어마한 개자식이겠다 싶었어.」
"넌 상상도 못 할 개자식이다.”
남수는 무슨 사정인지 궁금해했으나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뭐,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긴 하다.참, 동영상에 우리 회원분도 있던데? 네 친구라
-HALF of ME- 66 / 181
는 선생님 맞지?」
응 우민재의 얘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가라앉았다.그러나 짧은 대답이 라 남수는 알아듣지 못하고 우민재 얘기를 이어갔다.
「하긴 이제 선생님 안 한다고는 하더라.그분 담당 트레이너한테 들으니 다시 캐나 다 갈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 .......
「이제 재활도 다 끝났다니까.」
"재활?”
「응 네 친구분 원래 운동하다가 다쳤었잖아. 우리 헬스클럽에 그쪽 재활 훈련으로
이름난 트레이너가 있거든.그래서 일부러 우리 클럽 다닌 거야.올 초부터 다녔으L
반년 넘게 했지, 아마? 트레이너 말로는 시합은 다시 못 뛰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몸
이면 할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본인이 굉장히 열심히 했대.나중에 실전에서 뛰려면 몸이 좀 가벼워야 한다고 식이까지 조절하면서 몸 관리도 하고.」
"식이 조절이면 음식?"
「응 우리 헬스장에 작은 푸드바 있잖아.식이 조절하는 손님들 이용하라고 마련해 둔 거야.그분 매일 운동하고 거기서 아침 드셨어.」
“아닌데.나랑은 매일 아침 제육볶음이랑 돈가스 먹었는데?"
「에이- 설마 식이 조절하면 얼마나 음식에 깐깐한데.그리고 누가 아침부터 제육 볶음이랑 돈가스를 먹냐?」
”나.”
그리고 우민재. 남수는 내 말이 농담이라고 여겼는지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난 끊
긴 전화를 한참 내려다봤다.우민재는 대체 왜 나랑 그런 걸 먹었지?
''권 사장,괜찮아?"
"
-HALF of ME- 67 / 181
충연 씨의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언제 왔는지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 댜 경찰서에서 나와 제일 먼저 상황을 알렸으니 문제가 없다는 걸 알 텐데도 말이다. 그를 보며 툭 털어놨다.
“우민재 캐나다 간대요.”
“그래? 언제 오는데?"
“모르겠어요"
"빨리 와서 우리랑 다시 축구 시합 하면 좋은데. ”
그는 씩웃으며 우민재의 축구 실력에 새삼 감탄했다.
"처음엔 까칠하고웃지도 않고 사람이 참 정 없다 싶었는데, 이번 일 겪으며 보니까 사람이 참 진국이야.”
“그런가요?"
“그렇지! 택인이 일에 이렇게 나서준 것도 그렇고, 권 사장한테도 잘했잖아.전에 언 젠가 진지하게 물어보더라고.권 사장이 텍인이하고 하루를 반반씩 나눠 쓸 때,권 사 장 잠들면 여기 좁은 소파에서 열두 시간을 누워있느냐고.그러면 아무리 뒤척여도 근 육이 굳을 거라면서 우리한테 마사지해달라고 부탁했어. 권 사장이 자기가 묵는 숙소 에서 잘 때는 자기가 해줬는데 특히 어깨 근육이 심하게 뭉쳤다면서.”
“그런 말..... 한 번도 못 들었는데요?"
“그래? 민재 님이 과묵하니까 말 안 했나 보다.역시 진국이야.”
그러고 보니 녀석의 호텔에서 깨어났을 때 유난히 몸이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기분 이 몹시 이상했다.이 녀석은 왜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지? 그리고 난 왜 녀석이 캐나다 로 가는 게싫지?
-HALF of ME- 68 / 181
1시간 7분 51분. 38분. 삼 일간 택인이의 몸에서 눈을 뜬 시간이댜 우민재가 친절 하게 만들어준 반장 형과의 대면과 어른들의 위로로는 택인이가 깨기에 부족했던가 보댜 나는 어렴풋이 최후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걸 실행하기전에 해야 할 일 이 있었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안을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지만, 신경 쓰 지 않고 내가 만나러 온 이만 찾으려고 눈을 돌렸다. 1층을 다 돌고 2층에서 약속한 사 람을 찾았다• 그의 앞에 섰으나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앤디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손에 쥔 태블릿 PC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해할까 싶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그가 깜짝 놀라 눈을 들었
댜 그리곤긴장한 얼굴로 날 마주했다
"안녕 하세요"
인 사 하 니 그 가 입 안 에 서 웅 얼 거 리 듯 ‘ 안 녕 하 세 요 .’ 마 주 인 사 했 다 . 그 를 찾 는 건 그 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앤디가 택인이에게 준 번호가 있어서 바로 통화하고 약속을 잡
을 수 있었댜
"왜, 왜.....날 보자고 했어요?"
그는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듯 경계하며 물었다.누가 보면 내가 때리려고 한 줄 알 겠네.아, 싸우다가 열 받아 때리려고 하긴 했었지,참.
“인사 하려고요. 택인이 일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
꾸벅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눈을 드니 그에게 서려있던 경계가 그새 사라진 것 같 았다
“택인이 괜찮아요?"
"잘 모르겠습니마'
"왜요? 그 나쁜 놈이 또 괴롭혀요?!"
“아뇨. 그 일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지금은 몸이 좀 안 좋은데..... 곧 좋아질 겁니
-HALF of ME- 69 / 181
E|.“
그는 내게 더 묻고 싶어 했으나 내가 먼저 다른 화제를 꺼냈다.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린 건 그의 신경을 돌리기에 충분했다.작은 USB.물론 그에게서 가 져왔던 것과는 달랐다.
“그쪽 거는 내용 싹 지우고, 혹시 몰라 분해한 다음 불에 태워버렸어요.”
그래도 남의 물건을 함부로 없앤 거라 새 걸 하나 샀다.그러나 그는 내 얼굴을 보기 싫은지 고개를 돌렸다.처음에 이걸 발견했을 때 이 자식 미친 변태구나, 하는 생각밖 에 떠오르지 않았다.상대의 허락도 없이 그런 걸 찍다니.앤디가 그 영상이 제게 얼마 나 소중한지 말했을 때도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불법이잖아.감방 가야
할 일인데.
그런데 우민재에게 이 사람의 직업을 듣고선 생각이 변했다.영상 아티스트.뭐 하 는 직업인지는 잘 몰라도 반장 형 동영상 편집을 보면 이 일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 일 것이다 그런데 USB에 담긴 그 동영상은 전혀 편집되지 않았다.그저 반쯤 숨겨진 화면 그대로다.
마치 너무 소중해서 손조차 댈 수 없는 듯한 느낌.그래서 말도 안 하고 내 멋대로 페 기한 게 이번엔 좀 미안했다.뭐, 여전히 나쁜 짓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경찰에 신고 당해 마땅한 일이라고도 여기고.하지만 난 신고하는 대신 챙겨온 DVD를 그에게 밀 었댜
“대신 외롭거나, 괴로울 땐 이걸 봐요.” "원데요?"
“한국 드라마요.우리 엄마 베스트.”
그는 그제야 찌푸린 눈으로 날 봤다. 대체 이걸 나한테 줘서 어쩌자는 건데? 하는 시 선을 받으며 바닥에 두었던 봉투를 들어 내용물을 탁자 위에 꺼내놨다. 20권이 넘는 만화책이었댜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만화책입니댜 진짜 골 때리죠.보면 생각도 없어지고,웃음
-HALF of ME- 70 / 181
도 나고 할 거예요.그리고 이건.”
난 지갑에서 명함 몇 장을 꺼내서 하나씩 설명했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족발집 명함이에요.배달은 안 되고 포 장만 되니까, 직접 가야 할 겁니다.그리고 여긴 20년 된 곱창전문점, 여긴 짬뽕만전 문으로 하는 집인데 국물이 진짜 맵고 개운해요.보장할 수 있어요.우리 집 고추를 쓰 니까.그리고 여긴 내가 일하는 시장 안에 있는 횟집인데 내 이름 대고 주문하면 싸고 좋은거줄겁니다.”
그는 내 설명을 멍하니 듣다가 눈을 끔벅거렸다.
"왜 나한테 이, 이런 걸 줘요? 민재 일로 미안해서라면 필요 없어요.나도 자존심이 있고, 다 잊으려고 노력 중이니까요.”
“우민재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면 왜요?"
“그쪽이 좋은 사람이라서요.이런 위로는 당연히 받아도 될만큼 좋은 사람이니까. 그러니 경계할 것도 없고, 내 의도를 오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위로해주는 게 나라서 기분은 나쁘겠지만.”
""
''참, 한 군데 더.여긴 내가 아직 안 가봤는데 맛있나 봐요.홍대에 있는 빵집인데 블 랙 포레스트인지 하는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
아직 전해줄 맛집이 몇 군데 더 남아있었지만, 계속 말을 이을 수 없었다.그가 왠지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이라 한동안 입을 다물고 그저 앉아있기만 했다.
경찰서 앞에서 헤어지고 다음 날 저녁에 우민재에게 전화가 왔다.
-HALF of ME- 71 / 181
‘공항이야. 곧출국해'
응.'
'너 이달 말일이 휴가지? 그때 맞춰서 오면 술이나 하자.'
'다시 와?'
‘그럼 안 을 줄 알았어?'
'너 원래 하던 운동 때문에 가는 줄 알았거든.아냐?'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전화가 끊겼나 싶을 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맞 아 . 체 력 테 스 트 받 으 러 가 .'
절하고 와라'
' 권 희 찬 .’
'왜?'
' 넌 택 인 이 한 테 할 만 큼 했 어 .'
’......알아.’
'알면 됐어.가봐야겠다.'
사실 거짓말이댜 할 만큼 하지 않았댜 그래서 지금 마지막 할 일을 하러 왔다. 난 커다란 상자를 들고 406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니가 분명히 계실 거라고 생각했 댜 곧있으면 몇십 분이라도 택인이가 눈을 뜰 시간이니까.
그것 때문에 일도 그만두신 걸로 안다.아마도 택인이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 나 혼자 고민 중이실 게 분명하다. 잠시 후 , 내 예상처럼 문이 열리고 택인이 어머니가 날 맞이했댜 우셨는지 붓고 충혈된 눈과 마주쳤댜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며 핑계 삼아 가져온 상자를 내밀었다.
-HALF of ME- 72 / 181
”고추하고 채소 몇 가지 가져왔습니다. 드세요.”
”고D浮워요.”
“그리고 드릴 말씀도 좀 있어서요. ”
"지금이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 앞을 지키고 섰댜 할 수 없이 어머니가 날 집 안으로 안내했다 이젠 내 집만큼 익숙한 곳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차는 됐습니다 앉으세요, 어머니.”
택인이었을 때 내 칭찬을 몇 번 한 덕분인지 다행히 어머니는 별 거부감 없이 내 앞 에 앉았댜
"실은 택인이가 곧있으면 깨어날지 몰라서 긴 얘기는....... ”
“그런가요? 요새 깨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면서요? 자긴 이제 곧정상으로 돌아 갈 것 같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그러면 예전으로 돌아가 저도 기억 못 하니까 서운해 하지 말라던데요.”
“우리 택인이가 그랬어요? 정말로 돌아올 것 같다고 말했어요?"
네.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택인이 어머니는 울음이 목까지 차오른 것처럼 말을 하 지 못했댜 난 잠시 상대가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이곳에 온 다른 목적을 꺼냈다.
“택인이한테 들었는데 하시던 일 그만두셨다고요? 혹시 다른 일 하실 생각 없으세
요?”
”이, 일이요?"
"네. 제가 아는 곳에서 직원을 뽑 는데 택인이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xx 청과라고 시 장에서 제일 큰 업체예요. 급여도 좋고 복지도 좋은 편이죠.도매시장이지만,여긴 9시 에 출근해 6시에 칼퇴근하는 데라 택인이 뒷바라지하시기에는 마트보다 나으실 거예 요.“
-HALF of ME- 73 / 181
JJ"
“일단 면접을 봐야 하지만,제가 말을 잘 해놨습니다.마트에서 포스기 보셨죠? 그 정도면 바로 일하셔도 돼요.”
택인이 어머니는 내가 준 명함만 손에 쥐고 한참 내려다볼뿐 말이 없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아, 시장이라 좀 그러실까요?" “아니에요.그게 아니라....고마워서.”
그녀는 목에 걸린 걸 꿀꺽 삼키고 내게 명함을 다시 내밀었다.
”고마워요.택인이도 도와주는데 나까지 생각해줘서. 그런데 이미 다른 분이 제안 하신 일이 있어서 그쪽에 나가기로 했어요. 그래도 나 같은 사람한테 이런 제안 해줘서 고마워요.”
택인이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이미 다른 일을 한다니 다행이다 싶을 때 그녀가 덧붙였다.
''체육 선생님이 알아봐 주신 자리도 나한테는 너무 과분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요.“
''체육 선생님이요? 우민재요?"
"네.우 선생남 참, 그분하고 친구였죠? 그분이 일자리 알아봐 주셨어요.”
II II
“다들 이렇게 도와주시니 이제 택인이만 깨어나면 되는데. ”
어머니가 낮은 한숨을 흘렸다.난 슬픔에 빠진 얼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견한 참견으로 들리실지모르지만, 나중에 택인이 깨어났을 때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서I요.“
"하고 싶은 거요?"
-HALF of ME- 74 / 181
"요리요. ”
어머니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저도 고등학생 때부터 시장에서 일했습니다. 전 좋아해서 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후 회가 없어요.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합니다.저 대학은 안 나왔지만, 지금 대학 나온 친구들이 다들 저 부러워해요.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대학 가지 않더라도, 정규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택인이가 깨어나면 하 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세요. ”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깨어나면, 깨어나기만 하면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줄 거예요. ”
“그리고 나중에 김치 담그실 때 저 한 포기만 주시면 좋고요. 김치가 참 맛있던데
요. “
“그건 언제든지 줄 수 있는데..... 내 김치를 먹어봤어요?" "당연하죠, 매일....... ”
"?"
JJ......택인이가몰래가져다줬습니다.”
아, 택인이갸 어머니는 그제야 희미하게웃었다.
"좋은 형이라고 칭찬하더니 정말로 좋아하나 봐요.반찬은 다른 것도 싸줄게요. 그 런데 내가 요샌 통 만들질 못해서.......”
“나중에요 택인이 깨어나면 나중에 주세요. ”
택인이 얘기에 어머니의 표정이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택인이가 누워있는 방을 쳐 다봤다.
"잠깐 둘어가서 봐도 되나요?"
-HALF of ME- 75 / 181
“그럴래요?"
어머니가 안내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뒤따라 문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기 전에 생각난듯물었댜
"혹시 택인이가 외국 바닷가에 놀러 간 적 있나요?"
"외국? 아, 초등학생 때 가족끼리 사이판에 간 적이 있어요. 왜요?"
“택인이가 거기가 되게 좋았나 봐요"
“그래요? 그렇게 말해요? 그땐 애 아빠하고도 친하고 애도 활발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이제 나오게 해야죠. 아무리 좋았어도 나와야지. 어머니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댜 익숙한 얼굴이 누워있었댜 난 의자를 꿀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택인 이 손을 잡았댜 우습지만, 다른 이에게 강요했던 손잡기를 난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 댜
깨닫고 바로 해볼까 했지만, 마음의 준 비가 필요했다. 택인이에게 이 세상으로 나오 라고 진심으로 말할 준비가 필요했다.나는 잠시 말없이 손만 잡고 있다가 한쪽 팔에 문신을 가리는 용도로 낀 쿨토시를 벗었다.
문신이 빽빽하게 찬 걸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빈 곳이 아직 여러 군데 있다. 문신 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게 맨 처음 새긴 건데, 칼로 된 십자가를 뱀이 감싸고 그 주변 에 꼬부랑 영어로 긴 문장이 쓰여있다. 당연히 뜻은 모른다. 그냥 멋으로 골랐으니까.
”이건 고등학생 때 처음 한 문신이야.어울리는 친구 중 하나가 타투 하는 형을 알고 있었어.친구 따라 그 가게에 몇 번 놀러 갔는데 어쩌다 보니 다들 문신을 하는 분위기 가 됐지.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이러고 집에 가면 엄마가 상처받을 걸 알 았거든.그래서 이렇게 큰 걸 했지.
엄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땐 그냥 내 불행을 가장 만만한 엄마한테 들렸던 것 같아. 엄마한테 못 할 말도 쏟아내고, 문신도 하고, 공부도 안 하고. 속상하실 일만 골라 했 지 . 한 번 은 집 에 며 칠 안 들 어 간 적 도 있 었 어 . 본의 아 니 게 가 출 이 됐 는 데 나 중 엔 그 냥집에들어갈수가없더라.
-HALF of ME- 76 / 181
그때 모르는 사람이 엄마 걱정하니 집에 가라고 한마디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난 없었을 거야.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그 한마디가 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했거든. 그 일로 어머니한테도많이 혼나고 큰아버지에게 잡혀서 시장 일도 하게 됐지만, 그래 도 날 잡고 혼내줄 큰아버지가 계셔서 그나마 그 이후 엔 망나니짓은 안 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았지.그때는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랐어.날 끝까지 책임지려는 어머 니가 계시고, 날 걱정해서 바로잡으려는 어른이 주위에 있는 건 흔치 않거든.여기 있 는 다른 문신은 말이야.”
나는 보여주듯 팔을 틀었다.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하나씩 새겼어.다음엔 안 그러려고, 잊지 않으려고.사고를 친 뒤의 나는 너무나 한심했거든.이대로 막 살자며 다 놔버리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 어.하지만, 아니더랴 나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해도 다시 시작하면 되더라고.내가 날 놓지만 않으면 말이야.”
나는 반응 없는 상대를 가만히 봤다.
"너도 널 놓으면 안돼널 걱정하고 기다리는 분이 계시잖아.저렇게 좋은 어머니 말이야.알아, 네가 짊어진 문제를 의논하고 도움받을 어른이 주위에 없었다는 걸.미 안하댜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늦었지만,지금이라도 내가 널 잡아줄 어른 이 돼줄 테니까 일어나.”
난 그의 손을 꼭 잡고 낮게 외쳤다.
”좇같은 해변은 네가 돈 벌어서 어머니 모시고 다시 가면 되잖아.눈 뜨라고, 새끼 야.김 택인, 빨리 안 일어나? 어?!"
고딩의 손을 부서져라 세게 잡고 있지만, 아프다는 신음은 들리지 않았다.다만 꿈 틀거렸댜 손이, 머리가, 그리고 눈꺼풀이.잠시 후 , 감겼던 택인이의 눈이 천천히 뜨였 댜
-HALF of ME- 77 / 181
1년 중 가장 좋은 날. 바로 휴가다.휴가전, 미리 물량을 빼서 업체에 보내고 판매하 느라 다른 때보다 배 이상으로 바빴다.그래서 새벽 4시면 거의 정리가 되는 일도 6시 가 넘어서야 겨우 끝났다.다들 녹초가 됐지만, 오늘부터 휴가라 충연 씨도, 지용이도 입가에웃음이 넘쳤댜
''충연 형, 캠핑장 다녀와서 꼭 알려주세요.저도 다음에 친구들하고 놀러 가게요. ”
"응, 그레 너도 워터파크 가서 잘 놀다 와'’
충연 씨는 휴가 때 가족과 캠핑장을 가고 지용이는 하루 날 잡아 워터파크에 간다고 한댜 둘은 휴가 얘기로 신이 나서 떠들다가 내게 물었다.
“사장 형 진짜로 아무 데도 안 가요?"
"안갸"
''권 사장, 휴가 마지막 날 우리 가족하고 같이 식사라도 할까?"
싫” 습니다.”
내 단호함에 충연 씨는 머쓱해했고, 지용이는 못마땅해했다.
“아초침 정말로 휴가 내내 집에만 있으려고요? 진짜요?"
그랬댜 내 휴가 계획은 집에만 있기댜 아무도 안 만날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 고, 더 맹렬히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다.
"안 해. 그러니까 두 사람도 절대 나한테 연락할 생각 하지 마요. 난 나흘간 먹고, 자 고, 숨만 쉬며 보낼 거니까....... ”
띠링, 문자가 왔댜 아침부터 누구야?
[희찬이 너 휴가라며? 잘됐다. 내일이 남수 생일인 거 알지? 오늘 밤에 모이기로 했 어. 딴 사람은 몰라도 넌 꼭 나와라]
제자
...... � o .
-HALF of ME- 78 / 181
"친구 생일주만 마시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진짜야. ”
변경된 계획을 알리며 두 사람에게 한 번 더 확인했다.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닌 이상 나 절대로 부르지 마요. 아니지, 목숨이 위험하면 119 를 불러요. 나흘 동안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에요.혹시 봐도 인사도 하지 말고 그냥 지 나쳐요.“
휴가 때 나한테 연락하면 가만 안 두겠다.눈빛으로 전하니 충연 씨가 그제야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용이는 내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친구 생일주요? 어디서 마시는데요? 클럽에서 마실 생각 없대요? 사장 형이 나랑 같이 클럽으로 가주면.......”
"내가 너랑 같이 가줄 곳은 고추 배달처뿐이니까,닥쳐. ”
지용이가 고개를 돌리며 '우씨'를 남발했다. 저 자식은 왜 저렇게 날 클럽에 못 데려 가서 난리야, 대체?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잖아요? 매일 시켜 먹는 것도 지겹지 않아요?"
"반찬많아. 안 시켜 먹어도 돼. ”
많댜많다 못해 넘쳐난댜 충연 씨는 내 말을 바로 이해했댜
“아- 택인이 어머니가 매일 반찬 가져 다주신다며?"
"네. 새로 일 나가는 곳이 아주 좋은 곳인가 봐요. 들뜨셨더라고요. ”
잘됐네, 잘됐어. 충연 씨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지용이도 이 얘기엔 흐뭇해하다 가 물었댜
J' 참, 택인이도 빵 만든 거 가져다준다면서요?"
"응. 개네 어머니가 바로 학원에 등록시켜주셨거든. 엄청 신나서 다니나 보더라.” "깨어난 지 일주일쯤 됐죠? 기억 안 나는 일이많을 텐데 안 물어봐요?"
-HALF of ME- 79 / 181
”이상해하지. 그래서 병원도 갔다 왔나 보더라. ”
하지만 병원 간다고 기억날 일이 아니다.그건 내 기억이니까.
“아직혼란스럽고어리둥절한가본데,학교도그만둬서딱히 내가왔다갔다한시 간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기억상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
“그래도 반장이 와서 빌었다면서요? 개네 아버지가 같이 와서 무릎까지 꿇고.죽어 라 괴롭히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의심하지 않아요?"
했댜 나한테 와서는 대체 자신이 기억을 잃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 다며 걱정했댜 사과를 받았으면 신명 나게 어깨춤이나 출 것이지, 어린놈이 쓸데없는 걱정은.
”의심해봐야 자세히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곧포기하겠지. ”
난 두 사람을 보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만 입 다물면 돼요. ”
“한 사람 더 있잖아요.”
II II
"민재 님이요.그분도 알잖아요.그나저나 왜 민재 님 안 와요? 다음 시합에 꼭 나와 야 하는데.”
나도 알고 싶댜 그 녀석이 왜 안 오는지.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 댜
"다음 시합엔 내가 있는데 우민재가 무슨 상관이야? 어?" “아, 뭐..... 사장 형도 잘하지만 ....... ”
"잘하지만 ? 잘하지만 뭐?"
지용이는 내 다그침에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HALF of ME-
80 / 181
"잘하면 뭐 해요? 만날 전반전 끝나기도 전에 반칙으로 퇴장당하는데. ”
''씨바, 내가 반칙하고 싶어서 해? 다들 나만 잡고 늘어지잖아! 성질 안 나게 생겼 어?"
옆에 있던 충연 씨가 지용이 편을 들었다.
“그래도 권 사장, 민재 님은 아무리 태클 들어와도 절대 반칙 안 하시던데.” ”이런 싸...... 그래서 지금 나보다 우민재가 더 잘한다는 거예요? 어?"
"내가 너보단 잘하지. ”
두 사람을 몰아붙이던 난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굳어버렸다. 나보다 먼저 반응한 건 지용이와 충연 씨.
"어?! 민재 님이다!!"
"민재 님 오셨군요!"
두 사람의 열렬한 환영이 들렸다. 난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진짜 우민재였 댜 그가 우리 가게 문 앞에 서있었다 캐나다에 있다던 놈이 난데없이 이 새벽에 말이 댜 그는 달라붙어 환호하는 두 직원 사이로 날 바라봤다. 반갑다. 인사라도 해야 하는 데 입이 통 열리지 않았다.
"공항에서 오는 길입니댜"
그가 두 사람의 질문에 답하며 내게 물었다.
"H卜빠?"
"뭐, 좀.”
하나도 안 바쁘다. 그런데 답이 이렇게 나왔다.
”에이, 우리 바쁜 일 다 끝났잖아요"
-HALF of ME-
81 / 181
물론 눈치 없는 지용이가 다 까발렸다.내가 무뚝뚝하게 서있자, 충연 씨가 눈치를 보더니 지용이를 테리고 창고로 갔다.우민재와 둘만 남자 난 그에게 한쪽의 소파를 가 리켰댜
"앉o�."
“오늘부터 휴가지?"
”응.“
''권희찬?"
”왜?”
"너 나한테 화났어?"
“아니.“
“그런데왜나안봐?"
난 그제야 책상에 뒀던 시선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치는 게 어려웠 댜 왜 그러지? 여긴 또 왜 이렇게 덥지?
I'체력 테스트는 잘하고 왔어?" ”응.“
"잘됐네.다시 원하는 일 하게 돼서.”
"글쎄.“
글쎄는 또 뭐야? 내가 눈을 찌푸리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구단에선 다시 들어오라고 했는데 거절하고 왔어.”
"거절했다고? 어깨도 괜찮은데? 왜?"
그는답대신 가만히 내눈을봤다.난또눈을피하고싶어졌으나억지로참았다.
-HALF of ME- 82 / 181
"왜 거절....... ” "보고 싶었어.”
”뭐?”
"계속 네 생각만 나더라"
IIII
다행히 그가 시선을 돌렸다.그는 가게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 가볍게 물었다.
"휴가 때 뭐 해? 같이 보낼까?"
"뭐,그러든지.”
우민재가 무어라 말을 했다.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기억나는 거라곤우민재가 내 앞에서 고등학생 때의 모습처럼 씩 웃었다는 것뿐이다. 아, 그래. 이렇게웃었지. 심장 이 터질 것처럼 뛰고, 가슴이 너무 뜨거웠다. 그리고웃는 그를 본순간 무언가 머리를 강타했댜 아, 씨발.나 우민재 좋아하나 봐.
-HALF of ME- 83 / 181
-epilogue-
7lEHO|I
o
-기 L- ·
누군가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어? 내 이름인데? 소년은 바닷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야, 김택인!
이번엔 더 분명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익숙한 기분도 들었 댜 누구지? 소년은 기분 좋은 모래 위로 걸음을 내디몄다.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웠 댜 그러나 상대가 계속 다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렀댜 걸음을 내디딜수록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자기도모르게 소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그리고 뛰기 시작했다.이내 그 를부르는소리는소년의몸내부로퍼지며 몸전체를크게울렸다.
7lEH0l1II
E=, -기 L..•••
번짝 소년은 눈을 떴댜 달리기에서 막 결승점을 통과한 것처럼 숨이 막혔다.끔벅 끔벅 멍한 정신을 다잡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댜 잠시 뒤에야 시야에 들어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댜 익숙한 천장.아,내 방이다.그리고...... 눈을 돌렸다가 누군가와 시 선이 마주쳤댜
“기태이 "
Cl -,L..:.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모르는 사람이었다.아니, 얼굴은 알고 있었다.엘리베 이터에서 몇 번 만난 사람이었다.아마도 5층에 사는 사람.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택인은 깜짝 놀라서 손으로 눈을 비몄다.나 꿈꾸나?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이 사람은 볼 때마다 숨이 맞을 정도로 아주 잘생겼기 때문이 댜 너무 멋있어서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쥐가 날 정도로 긴장했더랬다.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누구하고 어울릴까? 그 뒤로 내내 궁금했다.그런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댜 아니, 다짜고짜 욕설을.
-epilogue- 84 / 181
''씨발 새끼야, 누가 이제 눈 뜨래?"
그러면서 그는 마치 천사처럼 환하게웃었다.
-epilogue- 85 / 181
-기억의 반쪽-
택인이 깨어나서 처음 한 일은 우는 엄마의 손에 잡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일 이었다 1박 2일간 입원해서 정밀 진단을 받은 뒤 더는 수면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나을 눈물이 없다고 여겼던 엄마는 다시 우셨다.택인은 엄마를 말릴 수 가 없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혼란스러워 기억을 추스르기도 벅찼다.
분명 자신은 아무 기억도 없는데.자신의 마지막 기억은 정범이 형이 홍한영에게 납 치당하는 걸 보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차 앞에 뛰어든 일이었다.그 뒤로는 백지였 댜 그런데 깨어나 보니 그날로부터 한 달도 더 넘게 흘러있었다. 그리고 방학도 했단 다 물론 자신은 멀쩡히 학교도 다녔다고 한다.게다가 제일 놀라운 건.
"성적표가 나왔다고?"
바로 이 사람이었댜 윗집 사는 아주 아주 잘생긴 형.사람에게서 빛이 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외모의 주인공이 자신과 친한 사이가 돼있었다. 손이 떨렸다.심장은 더 떨렸다 도저히 눈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넋 나갈 아름다운 외모 와 달리 희찬은 말투도 험했고,하는 일도 거칠었다.
그러나 택인의 눈엔 그 모든 게 멋있어 보였다. 그의 성격이 찌질하고 쪼잔해도 상 관없었을 거댜 동경하던 사람과 친분이 생겼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나? 다만,그의 행 동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지금처럼 자신의 성적표에 과한 관심을 보인다든 가 하는 것 말이다.
"점수가,흠흠,점수가 어떤데?"
택인은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서 이런 성적을 말해야 하는 게 부끄러웠댜
"개판01에요. ”
.......
II II
-기억의 반쪽- 86 / 181
"제가 기억이 없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 는 점 수 를 받 았 는 지 ...... . ”
"야, 닥치고.영어는? 영어 점수는? 영어는개판이 아닐 거 아냐?"
"개판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음.”
"며, 몇 점인데?"
영어요? 택인은 성적표를 펼쳐서 다시 확인했다.영어가 몇 점이더라.......아, 여기
있댜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점수.
"78점0|요.”
"영어는 80점 아래로 받아본적이 없는데...... 어?"
갑자기 희찬의 손이 독수리처럼 날아와 성적표를 빼앗아 갔다. 그는 크게 뜬 눈으로 성적표를 확인하며 눈가를 떨었다.
"7, 78점.....78점...... 78점!"
왜 그러지? 78점에 심각한 트라우마라도 있나? 걱정이 들려는데 희찬이 팩 하고 외쳤댜
" 무 려 7 0 점 을 넘 다 니 ! 말 도 안 돼 ! 내 갸 ..... . ”
내가? 택인이 놀라자 희찬이 멈칫거리더니 말을 바꾸었다. "너, 네가 70점을 넘는 기적을 이루니 대견해서 그래,인마"
툭 특 희찬이 택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으나 성적표에서 절대로 눈을 떼지 못했 댜 택인은 그가 고마웠다 아마도 점수가 다 바닥인데 그나마 잘한 영어를 저런 식으 로 칭찬해주려는 것 같았다. 입은 험해도 엄마 말을 들어보면 그간 자신이 쓰러졌을 때 마다 데려다주고 체육 선생님과 더불어많이 도와줬다고 한다.체육 선생님. 택인은 또 한 명의 동경의 대상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그때 희찬의 희미한 중얼거림이 들렸
-기억의 반쪽- 87 / 181

-- ·
"총점도 78점을 넘어본적이 몇 번 없는데.” ”여|?"
아무 말도 아니었나? 택인은 그저 머쓱하게웃기만 했다.그때 자신의 성적표를 금 덩이인 양 바라보던 희찬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이거 내가 가져도 돼?"
“제 성적표를요?"
”응.“
당황스러웠댜 남의 성적표를 왜? 그것도 잘 나온 것도 아니고 바닥을 기는 성적인 데.택인이가 갈등하자 희찬이 한 번 더 물었댜
"넌 필요하면 학교에서 하나 더 뽑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너 이제 그 학교 안 나가니까 상관없지 않아?"
"네, 필요는 없는데요.”
"알았어. 내가 가질게.”
희찬은 떨리는 손으로 성적표를 반으로 접곤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택인에겐 그의 행동이 당연히 이상하게 비쳐야 했으나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보인 미소가 너무나 아름 다워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상대가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택 인은 자신이 그를 홈쳐본게 창피해서 얼른 눈을 피하곤 변명하듯 아무 말이나 꺼냈 댜
‘' 학교에서 선생님들이랑 반 아이들하고도 모두 인사하고 왔어요. 보충수업 때문에 다 나와 있더라고요.”
"학부한테는 인사했지?"
-기억의 반쪽- 88 / 181
”? .
뭐”
네. 택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학부가 자신을 크게 도 와줬다고 한다. 특히 희찬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널 믿어준 유일한 분이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마라. 그래서 이번에 찾아가서 준비한 빵과 함께 인사를 드 렸다 학부 선생님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만큼 부끄러움많은 택인을 보며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셨지만, 앞으로의 일을 응원해주셨다.
“나중에 제대로 빵을 만들면 다시 찾아가 인사드리려고요. ”
"잘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빵을많이 줄 필요는 없어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론 고생 도 제 일 많 이 시 킨 장 본인 이 니 까 제 일 맛 없 는 빵 으 로 만 몇 개 가 져 다 드 려 . ”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어색하게웃었다. 왜냐면 절대로 농담으로 들리지 않 았으니까.
"반 애들은 어때?"
“그게. “
택인은 학교에 다녀오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계속 떠올렸다. 혹시 내게 기억 이없는동안다른사람이와서 내몸을조종한게아니었을까?있을수없는일이지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말하는 그때의 제 모습은 자신과전혀 달랐댜
물론 이 일에 불만은 없다. 반장과 그의 형 문제가 해결된 것만 해도 기적이니까. 그 러나 마냥 기쁘거나 후련하지는 않았다. 이건 스스로 만든 기적이 아니므로. 마치 먹기
싫은 음식을 남이 대신 먹어준 듯한 기분이었다.
"반 애들이 또 괴롭혀?"
"예? 아뇨.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였어요. 몇 명은 와서 사과도 하고, 짝은 제가 학교 그만둔다는 거 알고 친해지지 못해 아쉽다고까지 하더라고요. ”
"잘됐네. 근데 왜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야?"
“그냥 얼떨떨해서요. 저는 어떤 것도 한 기억이 없는데 상황이 갑자기 달라져 있어
-기억의 반쪽- 89 / 181
서요.기억이안날때의난정말로내가아니었던 것같아요.”
"너 맞아 네가 아니면 누군데?"
하긴 그렇긴 하지만. 택인은 상대가 가만히 보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래를 보 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런데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요.”
”이상한 얘기라니?"
”짝이 그러는데 제가 자물쇠를 땄대요. 열쇠로 연 게 아니라 철사 같은 걸로 몇 번 쑤셔서요.”
II II
“그런데전 정말로 자물쇠 딸 줄모르거든요.시도해본적도 없어요.이상하지 않나
요?” “일어나.”
갑자기 희찬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예? 하며 놀라니 희찬이 굳은 표정으로 앞장섰 댜
"어디 가세요?"
"연습하러.“
”뭘요?” "자물쇠 따기.”
택인은 하루하루가 신이 났다. 엄마는 혼쾌히 택인의 꿈을 밀어주기로 했고, 절대
-기억의 반쪽- 90 / 181
허락받을 수 없을 거라 여긴 직업학교도 들어가게 됐다. 그곳을 다니기전에 먼저 실력 을 키우고 싶어 학원도 등록했다.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처음 깨어 났을 때 혼란스럽던 마음이 차차 안정되어 갔다.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당시 일을 종종 듣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매일 힘 들게 마트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는 체육 선생님의 소개로 커다란 빌딩 관리 업체에 들 어가셨댜 처음엔 엄청나게 긴장하셨는데 일주일 넘게 다니시더니 이제 자랑도 하셨
'나 오늘 부장님이 시킨 거 제일 먼저 해서 칭찬받았다?'
'너 엑셀이 원 줄 알아? 엄마 이제 그거 좀 한다?'
택인은 엄마가 이렇게 귀여운 줄 몰랐다. 월급도많이 주고, 정직원에, 복지혜택도 좋아서 엄마는 몸을 다 바쳐 일하겠다고 벌써 난리였다.신기했다. 일을 다녀오면 언제 나 기운 없고 피곤해 보였는데 이곳은 달랐다.근무 시간도 전보다 적고, 앉아서 하는 일에, 함께 일하는 분들은 엄마에게 잘 대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들어온 백이 엄청났대. 너희 체육 선생님한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
정말로 은혜를 갚고 싶었다. 체육 선생님도, 희찬이 형도. 참, 형네 가게의 직원 형들 도 한 번은 새벽에 야식을 싸 들고 가게에 갔었댜 한창 바쁜 그들을 도와 자진해서 상 자도나르고포장도하고트럭에짐을옮겨싣고등등,부지런히 일하다보니어느새 하늘이 밝아져 있었다.
“택인이 너 힘 좀 늘었구나.”
친절한 인상의 충연이웃으며 칭찬했다.바로 날카로운 음성이 뒤를 이었다.
"당연하지 엎드려뻗쳐만 만 시간을 넘게 했는데. ”
희찬이었댜 택인은 이번에도 기억에 없는 일을 들으며 입을 열었다.
"저 정말로 엎드려뻗쳐 때문에 팔 힘이 생겼나 봐요.학생부장 선생님이 저보고 엎 드려뻗쳐만 하려고 학교 다니는 줄 알았다고 그러셨거든요. ”
-기억의 반쪽- 91 / 181
광 희찬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였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충연이 그에게 다 가가 진정하라는 듯 말리고 있었다.그러나 희찬의 입에서 분노에 찬 한마디가 나왔 댜
II
숭卜느’ '"
•••••• -기 -,-.
택인이 놀라자 옆에서 지용이 속삭였다.
"무시해 원래 성질 더러우니까.”
희찬이 같은 고등학교 선배라더니,학부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학부 얘기 가 나오면 가끔 저렇게 치를 떨었다•
’' 참, 너 이번 주 일요일 시합에 응원하러 올 거지?"
지용이 생각난 듯 물었고 택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에게 도움을 줬다는 또 다른 사람들.시장 내 조기 축구회 ‘유기농' 팀이었다.택인은 자신과 이들의 인연을 도저히 연관 지을 수가 없었다.딱히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축구 시합이 자주 있다 는 운동장은 가본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전에 찾아가 인사하니 아저씨들이 엄청나게 반겨주셨다.오늘도 일하는 택 인이를 알아본유기농 회원들이 한마디씩 아는 척을 해줬고.기분이 좋았다.자신은 딱 히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무리에 끼인 적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또래가 아니더라도 마 치 식구처럼 대해주는 시장 사람들이 아주 좋았다.
"빵 만들어서 가지고 가려고요.”
“빵 좋지.그러지 말고 너도 나중에 유기농 팀에 들어와라.”
지용이 빵 얘기에 신이 나서 말했다.택인은 고마운 제안이지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운동을 잘 못해서요.실은 완전히 몸치라.그런데 이상하게 피구를 잘했나 봐
요.“
멈칫 택인이를 제외한 셋이 동작을 멈췄댜 택인은 반 아이들에게 들은 얘기를 떠 을리느라 그들의 단체로 굳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기억의 반쪽- 92 / 181
"시험 끝나고 체육 시간에 피구를 했는데 제가 그렇게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 히 날렵하게 공을 피해서 다들 놀랐다고.......”
콰당. 희찬이 벌떡 일어서며 의자가 넘어졌댜 택인이 깜짝 놀라 말을 멈추자 희찬 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나와.”
"네? 왜요?"
"연습하게.“
"뭐, 월요?"
"피구. ”
일요일 오전 6시 50분. 택인이 예전이라면 깨어있지 않을 시간이지만, 이젠 달랐 댜 일요일 아침엔 유기농의 시합이 있었댜 턴|인은 학원 오븐을 빌리는 걸로도 모자라 집의 작은 오븐까지 쓰며 빵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그럴 가치가 있었 댜 조금 늦었어도 빵을 가지고 가자 회원들이 격하게 그를 반겼댜 특히 회장님이 엄 지를 치켜들었댜
"역시 유기농의 광팬답군!"
이건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대체 난 언제부터 동네 조기 축구팀의 광팬 이 됐을까? 게다가 아저씨들의 말을 들으니 상대 팀의 분노를 살 정도로 열렬한 응원 을 했다고 한댜 정말? 동네 조기 축구팀에?
“우리가 광팬이 생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 유기농의 특기인 압박 수비가 한번 떴다 하면 다들 우왕좌왕 난리잖아? 네가 감탄할 만하지.”
공 하나 두고 우르르 몰려다닐뿐이다.그래도 내가 열심히 응원했다면 그럴 만한
-기억의 반쪽- 93 / 181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그들의 시합을 봤다.그리고 보면서 다시 느꼈다. 기억이 안 나는 과거의 나는 정말로 다른 인격이었던 걸지도. 지금은 도저히 감탄이 나을 수 없었 댜
대신 빵을 만들었다.열심히 만들었다.골라 먹으라고 할 수 있는종류는 다 만들어
갔댜 특히 사람들에게 인기많은 피자빵이나 소시지빵 위주로.아직 서툴지만, 선생님 의 도움으로 먹을 만한 빵이 됐다. 그러나 생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피자빵01네. ”
"소시지 들었네.”
"피망도 들었네. ”
다들 잘 먹었다고 해주었으나 택인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에 시간이 없어서 팥빵 하나로 통일해서 가지고 갔다.성의 없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 으로 빵을 내밀었다.
“맛있겠는데?"
”팥이네!"
"난 하나 더 줘.”
인기 폭발했댜 한 명만 빼곤.
“아이 씨, 난 팥빵 안 먹는데.”
지용이었댜 옆에서 말없이 무표정하게 먹던 희찬이 한마디 했다.
“그럼 택인이가 가져오는 건 앞으로 계속 먹지 먀"
팥빵은 지용의 입 안으로 5초 만에 사라졌다.일주일, 또 일주일, 또 그다음 일주일. 유기농 회원들을 위해 빵을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이 돼갔다. 그리고 개개인의 취향도 알 게 됐댜 누구는 팥을, 누구는 흰 앙금을 더 좋아했다. 지 용은 크림빵을, 희찬은 피자빵 을좋아했다그리고마지막한사람.택인이유기농시합을꼭보러 나오는이유중하
-기억의 반쪽- 94 / 181
나.
“맛있는데? 실력많이 늘었네.”
아무거나 잘 먹는 체육 선생님이 칭찬을 해줬다. 택인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지 만,힐끗 그를 보는 걸 잊지 않았다.빵을 다 먹은 체육 선생님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 했댜 택인은 그가 희찬에게 자주 시선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댜 희찬을 보는 눈은 부드러웠고, 그의 앞에서는 언제나 미소가 흘렀 댜 택인이 알던 체육 선생님은 그곳에 없었다 희찬의 앞에선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 댜 체육 선생님의 시선을 느꼈는지 회장님과전술 문제로 말싸움하던 희찬이 눈을 돌 렸댜
그리고 순간 그의 눈에도웃음이 퍼졌다.택인은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는 장면을 보며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그냥 이상하게도 부끄러웠다.마치 누군가의 연애를 몰 래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라 택인은 얼른 고개를 들렸다.아쉽다.두 사람 정말로 잘 어
울리는데.안타까워하는 택인의 뒤로 희찬의 분노에 찬 음성이 운동장을 울렸다.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나한테 공을 돌리라고요!"
-기억의 반쪽- 9 5 / 181
-18과 1/2-
고등학교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민 재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댜 그의 관심은 오직 운동뿐이었다.어제도 좋아하는 팀의 시 합을 보느라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보다가 마음에 드는 플레이가 있으면 몇십 번이고 되풀이해서 봤다. 이번 경기에는
특히 기막힌 작전이 하나 나와서 육성으로 우와, 소리를 질렀다.노트에 선수들의 스킬 과 동작, 작전을 꼼꼼히 적으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을 대입시켰다.
상상할수록 몸이 근질거렸다.빨리 연습장으로 나가 직접 해보고 싶었다.아직 저런 기술을 쓸 능력이 안 되지만, 비슷하게라도 연습하고 싶었다.그래서 지금 민재의 머릿 속에서 새로운 반에 누가 있고, 누구와 친해져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밤을 새운 탓에 졸려서 새로운 반에 가자마자 맨 뒤의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잠결 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녀석이 자신을 알아보고 '우민재 맞지?' 등을두드리며 아는척을했다.1학년때친했던 녀석도있었다.그가옆자리에 앉고, 그 주위로 아는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잡았다.
응성웅성. 학기 초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민재는 쪽잠을 청했다. 얼핏 아이들이 누 군가의이름을소리죽여말하며 개맞지?맞지?하는소리를들은것같지만,호기심 보다는 잠이 먼저였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신 것도 모르고 자다가 지적이 들리자 겨 우 고개를 들었다.
"거기 뒤에서 자는 두 사람, 어서 일어나.”
나 말고 또 자는 놈이 있나? 민재는 상체를 일으키곤누군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건 그만이 아니었다.반 아이들 대부분이 창가 맨 끝에서 부스스 잠이 덜 깬 얼굴로 일어나는이를 쳐다봤다.그리고 반전체가 몇 초간 짧은 침묵에 휩 싸였댜
-18과 1/2- 96 / 181
민재도 그중 일부였댜 그는 마치 이 상황이 만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모든 이를 침묵에 휩싸이게 한 녀석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그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댜 민재는 연예인을 실제로 몇 번 보긴 했지만, 이 녀석처럼 눈을 사로잡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가 살짝 찌푸린 눈으로 잠에서 깨어나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새카만 머리카 락이 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려 다시 이마를 가렸다. 다들 그 동작에서조차 눈을 떼 지 못했댜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쏠린 반 아이들의 시선을 알아차리곤눈을 돌렸다. 구경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씨발. ”
졸렸댜 아주 졸렸댜 짧은 봄방학의 마지막, 희찬은 친구들과 새벽까지 어울리고 늦게야 집에 들어갔다.엄마는 새벽에 들어온 아들에게 몇 마디 잔소리했으나 그게전 부였댜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한동안 멍해있던 엄마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자리 를 구했다며 마트로 출근을 시작했다.
집에 엄마가 있어도싫지만, 마트로 일을 다니는 건 더싫었다. 갑자기 돈을 벌겠다
고 그런 곳에 다니는 게 구질구질해 보였다.상황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가 너무 밉X
만, 한편으론 돈을 잘 버는 아버지만 잘 붙잡았어도전처럼 풍족하게 살 텐데 하는 생 각도 들었다
아니,돈이없는생활을못견딘 건아니다.그냥다싫었다.전과변한삶이싫었다.
아버지는 집엔 잘 들어오지 않았어도 기둥처럼 든든한 느낌이 있었기에 갑자기 사라
진 현실이싫었댜 남들 다 있는 아버지, 자식을 위해 열심히 돈 버는 아버지가 없는 게 싫었댜 쪽팔리게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싫었다.
인생의 커다란 부분인 가족이 싫어지자 다른 것들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1학년 때 는 그저 집 상황이 안 좋다는 걸 느끼는 정도로 아슬아슬 외줄 타는 기분이었으나 2학 년에 을라오며 외줄이 끊겼다.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이제 집에 안 온다는 걸
-18과 1/2- 97 / 181
알게 됐댜 아버지는 딴 여자와 살며 그 여자의 자식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는 것 도.
지옥 같은 겨울이었다. 어둡고 추운 세상이 따뜻하게 변해도 희찬에겐 여전히 세상 은 건조하고 끔찍했다. 거기 뒤에서 자는 두 사람, 어서 일어나. 선생님의 목소리에 억 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고개를 들기도 전에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느꼈다.
눈을 드니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왜? 분명히 자는 두 사람 일어 나라고 했을 텐데, 왜 나만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보는데? 내가 자면서 코라도 골았 어? 왜 나만..... 골았구나! 이런,
''씨발"
학기 첫날부터 욕을 해서 모든 이에게 적의를 드러낸 녀석은 학교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한 애였다 민재는 그를 처음봤지만,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
'성질이 엄청 더럽대.'
'잘못 건드렸다가는 주먹이 바로 날아온다더라'
'xx 정보고등학교 짱이 제일 친한 친구래. 친구들 다 거기 일진이고.’
항간엔 조폭과도 아는 사이라는 소문까지 돌아서 쉽게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게 아니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도 느낄 만큼 가시가 돋아있는 터라 누구도 그 녀석을 건드리지 않았다 민재도 그에게 큰 흥미가 없었다
자신이 게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지만, 잘생겼다고 다 관심이 가는 건 아니니까. 잔 뜩 가시 돋친 그 녀석은 민재의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증요하지 않 았댜 중요한 건 오직 그가 하는 운동뿐이니까. 그래서 주위 애들이 다 아는 녀석의 이 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이 배드민턴
-18과 1/2- 98 / 181
을 좋아해서 학기 초에는 계속 배드민 턴만 하다가 드디어 중간고사 전에 다른 수업을 하게 됐댜 종목은 높이뛰기. 높이뛰기 기구가 설치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뛰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가위 뛰기, 배면뛰기, 롤오버 등등이 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하면 잘 모르겠지? 직 접 보고 해보는 게 나을 거다. 권희찬. ”
체육 선생님이 시범 보일 한 명을 지목했다. 이름이 불린 희찬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체육 선생님을 잠시 보다가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무슨 표정으로 나왔든, 선 생님은 아랑곳없이 명령했다.
”가위 뛰기부터 해봐라"
"어떻게 하는 건데요?"
"설명했잖아. 다리를 가위처럼 벌려서 바 위를 이렇게 뛰어넘는다고. ”
체육 선생님이 두 팔을 다리인 양 아래위로 흔들며 설명했다.희찬은 여전히 저게 뭐야, 하는 표정이었으나 선생님이 그의 등을 밀었다.
"어서 뛰어봐. ”
희찬은 느릿하게 뛰기 시작할 지점으로 걸어가서 잠시 높이뛰기 바를 노려보다가 발을 뺐댜 처음은 천천히 그리고 확 속도를 높이며 바를 뛰어넘었다. 선생님이 설명한 그대로였댜
“그래, 그게 가위 뛰기야.이번엔 배면뛰기 해봐라"
자리로 들아가려던 희찬은 불만 어린 시선으로 선생님을 쳐다봤으나 상대가 꿈쩍 도 하지 않자 할 수 없이 다시 뛰었다. 그의 등이 U자로 굽으며 바보다 훨씬 높은 곳을 넘어갔댜 민재는 그가 성공했다는 것보다 깨끗한 자세에 놀랐다. 마치 선수 같았다. 그렇게 느낀 건 그만이 아니었다.
''권희찬, 너 배면뛰기많이 해봤냐?"
“모르겠는데요. 초등학교 체육 시간 때 한 이후 로 처음입니다. ”
-18과 1/2- 99 / 181
1....그래?"
선생님은 가만히 희찬을 보다가 다른 학생에게 지시했다.
"바 높이 10cm 높여봐라.권희찬, 다시 뛰어봐" IIEE 0?”
“아니면 운동장 들든가.”
”... ... 뛰 겠 습 니 댜 "
그날 희찬은 일곱 번을 더 뛰었다.그리고 그가 뛴 높이가 당장 청소년 대회에 나가 도 될정도라는 걸 알았다.물론 반에서 같은 높이를 기록한 이가 한 명 더 있었다.바 로 민재.그러나 민재는 희찬보다 키가 10cm 이상 컸댜
나름대로 운동을 잘하고 남에게 져본적이 없었는데 반의 문제아에게 지다니.기록 은 같더라도 신체적 조건을 보면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민재는 그제야 그가 조금 신경 쓰였다 운동을 잘한다는 건 적어도 남자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 된다.
체육 시간 후 다음번 쉬는 시간에 희찬이 자리를 비우자 아이들은 빈자리를 보며 수 군거렸댜 진짜 잘하더라 엄청 멋지더라 배드민턴도 되게 잘했잖아.다들전과는 조 금 다른 시선으로 그를 봤다.수업도 안 듣는 문제아인 줄만 알았는데 원가 능력을 숨 긴 고수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수업전 교실로 돌아온 희찬이 뒷 문에 서서 반 아이들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우리가 자기 얘기 하는 걸 둘 었나? 별 얘기는 아니었지만 다들 좀 찔리는 듯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희찬은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그렇게 반 아이들을 노려보다가 선생 님이 들어와서야 자기 자리로 갔다.희찬의 얘기를 했던 아이들은 다들 한마음이 됐다. 와 씨, 되게 살벌하네.
+..LL.
.
-18과 1/2- 100 / 181
기분이 더러웠댜 희찬은 정말로 기분이 더러웠다. 체육 시간에 빌어먹을 선생님이 높이뛰기를 계속 시킨 덕분에 허리가 다 뻐근했다.운동장을 돌기싫어서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체육 시간이 끝나니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매점에 갈 시간은 없었다 희찬은 잠도 못 자고 다음 시간 내내 허기로 괴로 워하다가종이 치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갔다.배고픈 내내 머릿속엔 좋아하는 피자빵 과 바나나 우유를 먹을 생각밖에 없었다.
아직 3교시. 당연히 매점엔 피자빵이 남아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희찬은 믿기지 않 아서 몇 번이나 빵들을 뒤적이며 확인했으나 정말로 피자빵은 없었다. 이게 말이 돼? 평소라면 점심때도 살 수 있는 피자빵이 왜 오늘은 없는데?! 가장 인기 있는 소시지빵 도 아직 안 떨어졌는데 왜 피자빵이 매진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허기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소시지빵을 우걱우걱 씹 어 먹으면서도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감탄하며 먹을 소시지빵이지만 이날은 그 맛을 음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씨바, 대체 어떤 새끼둘이 피자 빵을 다 처먹은 거야?
교실로 돌아오면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눈앞에 보이는 교복 입은 모든 학생이 범인으로 보였댜 그리고 교실로 들어서다가 멈췄다. 그래,너희 중에도 피자빵을 처먹 은 놈이 있겠지? 같은 반 아이 중에도 범인이 있을지모른다는 것에 더 분노가 치밀었 댜 원래 인기 있는 소시지빵이었으면 이렇게 배신감이 크진 않았을 거다• 희찬은 문틀 을 꽉 잡고 반 아이들을 둘러보며 눈으로 외쳤다. 왜 하필 피자빵이야!!!
’' 못하는 운동이 없다더라.”
"개 중학교 때 야구 했었어 팀에서도 진짜 잘했지. ”
방과후 민재는학원에서희찬의얘기를들었다.야구얘기를한아이는다른반녀 석이었댜
-18과 1/2- 101 / 181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권희찬하고 같은 중학교 나왔거든.그때도 잘생긴 걸로 유명했어.게다가 야구도 잘하고.인기가 얼마나많았는데.여자애들이 하루가 멀다고 개 보러 반에 구경 오고, 아이돌 쫓아다니는 것처럼 선물 주고 장난 아니었어.야구 그만뒀어도 인기는많았지 만.“
"왜 그만뒀는데?"
”욱하는 성질 때문에"
중학교 동창은 고개를 절레절레 혼들었다.
"원래 운동부가 빡세잖아.코치가 밥 먹을 시간도 안 주고 애들을 엄청 굴렸나 보더 라고.다른 애들은 뒤에서 욕해도 앞에서는 참는데,개는 코치하고 한판 하곤때려치웠 어.그런데 내가 알기엔 원래 그렇게 반항적인 녀석이 아니었는데 사춘기인지 애가 성 질이 좀 더러워졌더라고.”
"무슨 사춘기가 이렇게 오래가는데? 중학교 때 시작된 게 지금도 이어진다고?" 반 친구가 어이없어했댜 민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사춘기가 아닐 수도 있지.”
“아니면 ?"
"성격이 바뀌었나 보지.아니면 즐거울 일이 없거나.”
친구들은 대꾸할 말이 없는지 민재를 보다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혼자 그렇게 벽을 치는 건 좀.......”
"뭐 어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그리고 솔직히 난 개가 성질이 그렇게 더러운지도 모르겠어. 사고 친 것도 없고, 선생님이 벌을 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르잖아.오히려 잘 참는 것 같던데.”
그런가? 친구들은 듣고 보니 그렇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한 명이 아냐,
-18과 1/2- 102 / 181
하며 입을 열었댜
“그래도 첫날 씨발 한 건 절대 못 잊겠댜"
하긴 그건 인상 깊었지.민재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자신이 한 말처럼 그가 성 질이 더럽다는 건 믿지 않았다.오히려 저렇게 아무와도 말 안 하고 혼자서만 학교생활 을 하는 건 엄청난 인내와 정신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다가 1학기 중반 무렵 희찬의 나쁜 성질을 볼 기회가 왔다.연습이 없는 주말, 아는 형들과 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이미 185cm를 넘는 키와 열심히 만든 몸 덕분에 민재를 미성년자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형들은 여자를 만나려고 갔지만,민재는 그저 술을 마시고 분위기를 즐기려고 따라갔다.
어차피 집에 가봤자,아버지와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분명히 한 소리 들을 터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민재가 운동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공부가 안 되니 운동으로 대 학에 가겠다는 핑계 하나로 봐주고 있긴 하지만, 대학만 졸업하면 자신의 밑에서 일을
배우게 하려는 속셈이 다 보였다.
물론 민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꿈이 있었다. 매일 동영상을 돌려보는 팀 속에 자 신도 끼고 싶었댜 사람들의 환호성,시합의 어마어마한 열기,이곳에선 볼 수 없는 거 친 플레이의 현장에 서고 싶었댜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영어 공부만큼은 확실히 했 댜
그 이외엔 설렁설렁.공부를 잘하면 괜히 아버지가 다른 기대를 품을지 모르니 성적 은 적당히만 유지했다.꿈에 다가가는 시간이 너무 더디고 지루했으나, 한편으론 즐거 웠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운동도 잘하고,머리도 좋고,지금 좋아하는 일만 아니라면 부모님을 실망시킨 적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의 얼굴엔 언제나 미소가 있었다.사람들에겐 친절했고,친척 동생들 을 만나면 참을성을 갖고 같이 놀아줬다.대부분 그가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다.물론 맞긴 하다 다만,조금만 더 친해지면 그의 고집과 까칠함에 어라, 하며 놀라게 된다. 그 리고 완전히 친해지면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민재는 어릴 적부터 항상 무리의 우두머리였다.처음엔 추진력 있고, 말 잘하는 친
-18과 1/2- 103 / 181
구가 무리를 이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민재의 의견을 따랐다. 큰소리 한 번 내 지않고,그저웃으며 대해도결국그의눈치를봤다.그에게는말로표현할수없는카 리스마가 있었댜
사람을 보는 통찰력이 있었고, 머리가 좋았다. 단순히 잘웃고 운동하는 덩치 큰 녀 석인가 싶어 무시하다가 민재에게 눈물 쏙 빠지게 당한 녀석도 있었다. 무리의 리더가 된다는 건 팀 운동을 하는 그에겐 이점이었다.
혼자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팀원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경기에선 지고 만 다.그래서
경기에 관련된 일엔 절대웃지 않았다. 팀원들에게만 큼은 그의 본성격을 그대로 드러 냈다 그가 속한 팀이 눈에 띄게 잘하는 데는 민재의 영향이 컸댜
대학팀에선 벌써 그를 눈여겨봤다.훈련장이 적어 대학을 찾아가는 일이많은데, 자 주 보는 대학생 형들도 민재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자신들과 동급으로 대해줬다.클 럽에 데려온 것도 이 형들이었댜 대부분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아 여기저기 흩어지고,
민재는 남은 형 하나와 여름전지훈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밴쿠버로 갈 거야. 캐X스 2군하고 연습 경기 할 텐데,따라오고 싶냐?" 끄덕끄덕. 민재는 크게 고갯짓했다.
”옆에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요. ”
“전에 가봤다며?"
”로저스 아레나는 가봤죠. 플레이어숍 물건을 다 쓸어왔는데 그걸로도 성에 안 차 서 며칠간 계속 갔더니 직원이 여러 가지 얘기도많이 해줬어요.하지만 직접 뛰는 것 하고 구경하는 건 다르잖아요. ”
다르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민재에게 씩웃어 보였다.
“그렇게 부러우면 따라와 네가 네 돈 내고 쫓아오면 적당히 눈감아줄걸?" “그래도 돼요?"
"안 될게 뭐 있어? 감독님도 너 좋아하고.......”
-18과 1/2-
104 / 181
말을 하던 그가 다른 곳을 보며 갑자기 눈을 찌푸렸다.
"저 새끼가 여기 다니나?괜히 왔네. ”
누군데요? 물으며 돌아보니 키는 크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가 잔뜩 멋을 부린 모습으로 클럽의 여자들 사이를 휘젓고 있었다.
“그냥 아는 놈인데. 완전 쌩 양아치야. 여자들한테 발정제 먹이고 따먹기로 유명해. 센 척하고 싶어서 나대는데 실제는 완전 등신이야. 돈이 있으니까 고딩 애들 데려다가 부하처럼 부리고 다닌다던데 저 녀석 뒤에 딱 봐도 고딩 맞네. ”
민재는 등신 뒤에서 따라오는 둘을 보고 형의 의견에 동의했다.클럽이 처음인 티가 나 는 데다가 나 름 꾸몄다고는 하지만, 얼굴에 고등학생이라고 쓰여있었다.
"저래서 어디 여자나 낚겠...... 어라?"
형은 다시 놀라며 말을 멈췄다.이번엔 등신의 등신이라도 온 건가? 민재도 눈을 둘 렸다가형처럼 어라,싶었댜흥분한고딩들뒤에선이는아는얼굴이었다.모든것에 관심 없다는 듯 구석에 서서 맥주만 마시고 있는 녀석은 같은 반 그놈이었다.이름이 아마 권희찬?
"여자 낚을 미끼를 제대로 데려왔네.”
그의 말처럼 미끼는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돌인가? 연기자?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냥 학생이에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같은 반이니까.민재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그리고 미끼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관찰했댜 여자 하나가 접근했지만, 희찬은 보지도 않고 무어라 말했다.들리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가 민망한 표정으로 바로 돌아선 걸 보면.
그는 클럽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그냥 술만 마시면서 바닥을 보고 주변에 벽을 세
-18과 1/2- 105 / 181
웠댜그와함께온고딩들이그에게무어라말을걸었지만,차가운눈을들며 입을움 직였댜 민재는 그의 입 모양을 보며 발음을 알아맞혔다.
'씨발'
욕을 먹은 하나가 얼굴을 찌푸렸으나 같이 온 녀석이 그를 말렸다.고딩 둘과 희찬 은 친구가 아닌가? 친한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따라왔나.”
형의 말처럼 희찬은 이런 곳인 줄 몰랐는지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리고 나가려는 듯 몸을 틀었으나 고딩 둘이 그를 잡아 말렸다.둘의 말에 귀찮다는 듯 손을 내치곤 다 시 구석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민재의 눈에 그는 원가 위태로워 보였다.
평소 그는 학교에서 잠밖에 안 자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었다.학기 초에는 자는 것 때문에 선생님들한테많이 혼나고 벌도 받았지만, 저 녀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잤댜 이젠 선생님들도 지치고, 담임도 그를 내놓은 자식 취급했다.
아마도 잘생긴 얼굴만 아니었다면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존재감 없는 녀석이 됐을 거 댜 그런데 저 얼굴이 있으니 누구도 그를 기억 못 할 수가 없다.민재는 잠시 그쪽을 보다가 신경을 끄고 다시 형과 대화를 나눴다.같은 반 녀석을 클럽에서 만났다고 반갑 게 인사할 건 아니니까.
그 뒤로 한 시간쯤 흘렀을까.슬슬 가려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안에서 아까 그 고딩 둘이 인상 쓰며 수군거리고 있었다.민재가 들어서자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야, 씨발, 그냥 보내.더 있다가 저 새끼 폭발하면 어쩌려고?"
"너 자꾸그런소리할래?저새끼가폭탄이야?폭발은무슨폭발?아직저새끼가 면 안 돼.형이 찍어놓은 여자한테 작업 들어간 다음에 보내라고 했단 말이야.그 기집 애 덩치 큰 놈들한테 붙어서 몸 혼들어대던데 희찬이가 있어야 겨우 우리 쪽에 얼굴이 라도 비칠 거 아냐.봤어? 가슴 흔드는데 옷에 달린 술이 막 같이 흔들리니까 진짜죽 01더랴"
-18과 1/2- 106 / 181
“아 씨, 그러다가 권희찬이 눈치채면 우린 다죽는다니까? 그 자식 일하는 편의점에 매일 가서 애원하고 겨우 꼬셔서 데려왔단 말이야. ”
"새끼야, 무서우면 넌 그냥 입 다물고 모른 척하면 되잖아. 그리고 개가 원데 화를 내? 작업 거는 여자하고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친구의 말이 답답한지, 말리던 고딩이 한숨을 쉬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희찬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자기 외모 얘기 하는 거야. 그 런데 그걸 이용했다는 걸 알아봐, 저 성격에 가만있겠냐? 게다가 희찬이 친구들 이....... ”
''씨발, 그러니까모른 척하라고, 넌!"
하나가 크게 소리를 치고 나가버렸다. 남은 녀석은 입술을 깨물다가 구경하는 민재 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쓰며 뒤따라갔다. 민재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잠시 생각 하다가 밖으로 나와서 직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뭔가를 부탁하며 수표 한 장을 건 냈댜 직원은 주머니에 돈을 넣고 그의 부탁을 바로 따랐다.
민재는 자리를 옮겨서 희찬 일행이 잘 보이는 2층 난간으로 갔다. 바로 아래 그들의 테이블에 직원이 술과 함께 민재가 부탁한 메시지를 전했다.손가락으로 가슴에 술이 달린 옷을 입은 여자도 가리켰다.직원의 말은 들리지 않지만 짐작할 순 있었다.
'저 여자분이 이분 혼자만 와주실 수 있냐고 하는데요.’
직원이 희찬을 지목하자 다른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고등학생을 부하처럼 데리고 온 등신이 직원에게 무어라 하는 것 같았다.아마도 내가 가겠다, 아니면 그 여자보고 오라고 해라 등등의 협상일 거다. 직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희찬만 가리켰다.
희찬은 물론 고개를 저었다.
싫어.'
그의 입 모양이 또렷하게 한 단어를 말했다.그러자 등신이 화장실에서 봤던 두 녀 석에게 눈짓했댜 설득해서 희찬이 여자를 이곳으로 데려오게 해라, 라는 뜻이겠지만,
-18과 1/2- 107 / 181
한 명은 머뭇거리며 뜻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다른 하나가 희찬에게 무어라 말했다.민재는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소 문처럼 정말로 성질이 더러울까? 싸움을 얼마나 잘하는데?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이 런 일을 조작한 것도 그저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희찬이 무표정하게 얘기만 듣는 것에 실망했댜
성질 더럽다는 건 과장된 소문 아냐? 그때였다.등신이 짜증 나는 표정으로 희찬에 게 소리쳤다 그중 몇 단어는 바로 머리 위에서 구경 중인 민재에게까지 들렸다.
씨발, 여자, 낚으려고, 반반한 얼굴.
이 정도면 다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씨발, 너 는 여자나 낚으려고 데려온 놈이야.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끼지도 못했 다고.'
그러나 이번에도 희찬은 가만 히 상대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러다가 한 손을 뻗어 맥 주병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등신이 다시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희찬 이들고있던 맥주병으로탁자를내리쳤다.
코 H XH 기 2. H 0· 0―O•
다들 깜짝 놀랐으나 아직 더 놀랄 일이 있었다. 희찬이 깨진 맥주병을 들고 등신에 게 바로 덤벼들었다.민재도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쿠당탕탕―
등신이기겁해서피하려했으나희찬과가까이있어서어깨가찔린 건어쩔수없었 댜 그는 바닥에 됭굴고 나서야 자기 어깨에서 피가 난다는 걸 알곤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 헉!"
욕은 다 나오지 못했다. 희찬이 그대로 탁자를 밟고 올라가 바닥에 주저앉은 등신을 향해 뛰어내렸댜 그리고 깨진 맥주병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18과 1/2- 108 / 181
IIO, OOHIIl” ― ―-.....
등신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댜 맥주병이 몸에 박힌 거 아냐? 갑작스러운 싸움에 여 자들의 비명도 같이 들렸으나 다행히 등신의 몸에 깨진 맥주병이 박히는 일은 없었다. 희찬이 내리친 맥주병은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머리 옆을 스쳐 바닥을 가격했다.
쩡그랑!
맥주병이 깨지며 사방으로 조각이 날렸다.등신은 위에서 덮친 희찬에게 기가 눌려 바닥에 누운 상태로 깨진 유리 조각을 뒤집어썼다.그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서 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희찬은 그의 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걸터앉아 내려다보다 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바닥에 내리친 맥주병은 아직 끝부분이 남아있었다.여전히 톱 날처럼 날카로운 단면을 가지고.
희찬이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여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일행인 고딩 둘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직원과 함께 희찬을 말리려고 뛰어들었다.그 뒤로는 난장판.2 층에서 지켜보던 민재는 그 과정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어느새 옆으로 온 형이 물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표정인지도 몰랐다.
''싸움 구경이 그렇게 재미있냐?"
재미? 형은 돌아보는 민재에게 입을 손으로 가리켰다.
"너 입이 이렇게 휘어졌잖아.”
"저 원래 잘웃잖아요.”
대꾸했으나 다시 아래를 구경하며 미소를 겨우 숨겼다.그는 조금전 분명히 봤었 댜 마지막으로 맥주병을 들어 을리던 희찬의 얼굴엔 정말로 살기가 있었다 권희찬 저 새끼 진짜웃기는 놈이네.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형이 그를 잡아당겼다.
"너 지금웃을 때가 아냐.빨리 나가자.경찰 을 텐데 재수 없게 걸리면 안 되잖아.” 아, 경찰 민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형에게 부탁했댜
"저 등신 아신다고 했죠? 지금 좀 만나게 해주세요.”
-18과 1/2- 109 / 181
"지금? 왜?"
”이번 일로 고소 안 하게 하려고요.”
그걸 왜 네가 신경 쓰는데? 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곤물었다.
“그리고 네가 말한다고 저 녀석이 듣겠어? 보니까 어깨에서 피가 철철 나네.”
‘' 듣게 해야죠.”
"어떻게? 돈이라도 주게? 저렇게 다친 걸 무마하려면 백 단위로는 안 돼.천이 넘을
수도.......”
그는 말을 하다가 원가를 깨닫고 허탈하게웃었다.
"하긴, 너한테는 별거 아니지.”
"별거 아니긴요.저한테도 큰돈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잠시웃은 대가를 지불하기에도 문제가 없고.권희찬의 성질이 정말로 더러울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으니 말이다.권희찬은 어느새 말리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이를 악물고 상대를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그러나 더 는 덤 비지 않았다.
등신은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보곤 뒤늦게 비명 지르고 울었지만, 희찬과 눈이 마주 치자 움찔거렸다 희찬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눈에 독기와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댜 그 때문에 그는 크지 않은 덩치에도 홀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야수처럼 보였 댜 민재는 잠시 그 모습에 끌렸댜 취향이 아님에도 재라면 사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짧게 스쳐 지나갔댜 그러나 이내 몸을 돌렸다.그의 머릿속은 이미 방학 때 캐나다에 갈 생각으로 가득했다.
희찬은 원래 아르바이트할 생각이 없었다.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 한 명의 집이 편
-18과 1/2- 110 / 181
의점을 하는데 새벽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해서 아버지가 일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 버지가 다치시는 바람에 새벽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희찬이 일주일 정도 도와주게 됐 댜 어차피 매일 피시방 아니면 술집에서죽치며 시간 보내는 것도 지겹던 참이었고.
그런데 그곳에서 중학교 때 같은 야구부였던 친구를 만났다. 그도 고등학교 가선 야 구를 그만뒀다고 하는데 옷차림을 딱 보니 뭐 하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도 어지 간히 노는구냐 그는 희찬을 매우 반가워하며 매일 새벽 다른 친구와 함께 편의점에 왔 댜
와선꼭말을붙이고옆에붙어있는터라귀찮았다.꺼져라.몇 번말을했으나그는 다른 친구의 눈치를 보며 그저 실실거리기만 했다.원가 바라는 게 있나 본데? 의심을 확인시키듯 그가 사흘째 되는 날 물었다.
'같이 클럽 안 갈래? 넌 그냥 공짜야.돈은 안 내도 되고, 가서 여자랑 놀면서 술만 마시면 돼.’
싫어.'
'야,너 주말엔 편의점 일 안 한다며? 가면 진짜 신나게 놀 수 있어.거기 아무나 들 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싫다고.’
’이런 기회가 혼한 게 아닌.......'
'씨발, 싫다니까.’
희찬이 목소리를 낮게 깔자 그제야 친구가 입을 다물었다.그러나 나가면서도 한마 디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생각 바뀌면 꼭 연락해'
연락할 일 없다고 여겨서 그 친구는 잊었다.그러나 주말 밤, 밤늦게 마트에서 들아 온 엄 마 와 또 한 바 탕 했 다 . 대 부 분 일 방적 으 로 엄 마 가 당 하 는 거 지 만 , 그 럴 수 록 희 찬 은 더 진흙탕에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데도 짜증과 화를 삭일 수가 없
-18과 1/2- 111 / 181
었댜 곧터질 폭탄을 안은 듯 위태로운 상태에서 무작정 집을 나와 걷는데전화가 왔 댜 편의점에 와서 귀찮게 하던 그 친구였다.
'지금 뭐 해? 시간 나면 내가전에 말하던 클럽에 같이.......’
‘알았어.’
놀라는 상대를 무시하고 클럽의 위치를 알아내어 그곳으로 갔다.가는 내내 무슨 정 신이었는지 모른다.자신은 어느새 물주인 형이라는 사람을 소개받고,시끄럽고 눈이 아픈 실내로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주위가 시끄럽고 정신없으면 엄마한테 퍼부은 못된 말들을 잊을 줄 알았는데전혀
아니었댜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댜 음악과 사람들의웃음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넋 놓고 볼 정도로 예쁜 여자들이 사방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엄마에게 한 그 끔찍한 말만 벌을 주듯 남아있었다.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혐 오,그러면서도 여전히 엄마가 미운 마음도 뒤섞였다.갑자기 공기가 답답했다. 그냥 나가자.몸을 돌렸는데 친구가 와서 말렸다.조금 더 있다 가라.너 여기 들어오는 데돈을얼마나쓴줄아느냐,등등귀찮은말들을쏟아내서할수없이 테이블까지따 라갔다.
여자들이 몇 번 테이블로 왔다.희찬은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술만 마시며 앉아있 는데 일이 터졌다.직원이 오더니 술을 돌리며 희찬을 지목했던 것.여자가 희찬만 오 라고 했다는데 당연히 갈 생각이 없었다.그 일로 몇 번 실랑이가 오가고 물주라는 형 에게서 문제의 말이 튀어나왔다.
'씨발,빼긴 월 빼? 여자 낚으려고 왔으면 할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반반한 얼굴 하 나만 보고 데리고 들어와 줬더니 인상 쓰고 술이나 퍼마셔?'
하긴 내가 인상 쓰고 술만 마신 건 사실이지.희찬은 인정하면서 친구를 쓱 돌아봤 댜 잘난 외모 때문인지 여자들이 잘 꼬여서 가끔 그것 때문에 희찬과 친해지려는 애들 이 있었다 물론 다 걸러냈다 교무실에 끌려갈 정도로 주먹질하며 지랄을 해댔더니 이 후 엔 그런 목적으로 접근하는 녀석들이 없었다.
-18과 1/2- 112 / 181
지금 친구들이 좋은 건 이 점 때문이다.그들은 희찬의 외모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희찬이 외모와 관련해 달라붙는 사람들에게 지랄하는 걸 다 본 녀석들이었다.그리고
눈앞에 있는 저 친구도 알고 있다.그런데도 날 이용하려고 데려왔다는 거지?
친구의 눈이 겁먹은 듯 변하는 걸 보며 다시 물주를 돌아봤다.반반한 얼굴 하나만 봤다니 나한테 있는 다른 장점도 알려줘야겠지.희찬의 손은 이미 맥주병을 잡고 있었 댜 그리고 자신이 뭘 한다는 자각도 없이 병을 깨고,상대를 찌르고,탁자를 뛰어넘어 그를위협했댜
정신이 들었을 땐 사람들이 자신을 물주에게서 떼어놓은 상태였다.그리고 물주의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봤다.씨발,좇됐다.경찰서 가거나 소년원에 들어가는 건 무섭 지 않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어떻게 할지 아니까 그게싫었다.경찰서에서 또 울면서 빌겠지.어쩌면 용서해달라고 물주에게 무릎을 꿇을지도 모른다.
씨발, 씨발.희찬은 욕설을 내뱉으며 물주를 노려봤다.나 고소하지 마.어떻게 해서 든돈벌어치료비던져줄테니까.나고소해서우리엄마알게하면너 진짜로죽일거 야.그리고 희찬은 다음 날부터 편의점 정식 아르바이트생이 됐다.하루라도 빨리 합의 금을 모아야 했다.게임기도 중고로 팔려고 내놓고 눈물의 이별식도 가졌다.
그런데 하루,이틀,사흘,나흘.일주일이 됐지만,아무 연락이 없었다.희찬은 주말
에도 쉬지 않고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의문이 들었다.왜지? 왜 고소 안 하지? 그리고 왜 이 새끼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 하루가 멀다고 편의점으로 쳐들어와 수다를 떨 고 가는 친구들이 토요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나 빼고 노나? 에이 씨.
토요일.민재는 훈련이 끝나고 갈 곳이 있었다.일주일 전 클럽에서 권희찬의 뒤를
봐주느라 등신과 합의를 했는데 오늘 만나 그가 원한다는 물건을전해주기로 했다.물
론 가족 변호사를 통해 등신이 전한 공증 서류는 미리 받은 상태다.물건만 받고 마음
이 변할 수 있으니 증거를 남겨놓는 게 좋았다.등신은 고등학생인 민재가 이런 서류를 챙기는 것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순순히 말을 따랐다.
-18과 1/2- 113 / 181
'너 그 얼굴 반반한 녀석이랑 아는 사이야?'
’이 일과 가해자에 대해선 절대 입 밖에 안 낸다는 데에 동의한 거 아닙니까?'
'야,너 어린놈이 말하는 게 무슨....... 알았어. 대신 너 직접 물건 들고 내 학교 앞으로
와서 기다려. 네가 직접 와서전해. 알았어?'
민재는시내의 한대학교앞에서등신을기다렸다.연습후 바로와서그는운동복 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185cm가 넘는 키 때문인지 이어폰을 꽂고 선 그를 다 들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대로 20분쯤 기다렸을까,민재는 시계를 확인하며 전화를 걸려고 했다
아마도 일부러 기다리라는 심보로 늦게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정도 기다렸으 면 됐다 안 나온다면 들어가서 잡아끌고 나올 생각이었다. 이어폰을 빼고 휴대폰을 둘 었댜 그런데 바로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자애들의 말이 신경을 끌었다.
''씨바, 이 학교 맞아? 왜 안 나와?"
”이 학교 맞아. 희찬이 꼬여서 데려갔던 놈한테 확인했어.그 놈이 내 눈앞에서 직접 전화해서 오늘 이 시간에 학교 앞에서 약속 있단 정보까지 얻었단 말이야. ”
희찬이? 민재는 그제야 그들을 힐긋 보았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세 명.
그중 하나는 덩치가 좋았고,나머지는 보통 체격이지만 다들 깡이 있어 보였다. 그것 빼곤 그저 평범했다.아니,이어지는 얘길 들으며 그리 평범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근데 희찬이한테 고소할지 모른다는 그 피해자 새끼 얼굴은 알아?"
누군가 물었다. 그리고 다른 둘이 동시에 답했다.
”몰2.�."
"몰라"
순간 셋 사이에 찬바람이 흘렀다. 셋은 서로를 쳐다봤다. "뭐? 니네 몰라?"
-18과 1/2-
114 / 181
"당연히 모르지. 네가 아는 거 아냐?"
''씨바, 내가 어떻게 알아?"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셋은 동시에 똑같은 욕을 내뱉었다.
에이, 씨팔! 지나가는 이가 쳐다보건 말건 셋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이의 얼굴을 알아 내려고 마음이 급해졌다.
"야, 희찬이 중학교 동창한테 전화해봐. ”
"하고 있어. ......안 받아. 씨바. ”
“아우 씨! 그럼 우리 여기 왜 온 거야, 대체!"
민재야말로 묻고 싶었다.전설에나 나올 바보 삼 형제가 현실에 있었다.아마도 친 구인 희찬을 위해서 피해자와 얘기 혹은 협박을 하러 온 모양인데 얼굴도 모르다니.얼 굴을 모르면 어깨 다친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 충고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일단 구경하기로 했다.
셋은 열심히 머리를 짜내더니 결국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 같았다.
하나가전화했고 셋이 머리를 맞대고 휴대폰에 귀를 가까이 댔다. 휴대폰의 스피커 용 도는 저들에겐 너무나 먼 미래의 과학 기술이었나 보다.상대가 곧전화를 받았는지 휴 대폰을 든 덩치 큰 녀석이 이름을 불렀다.
"어, 희찬아. ......어? 우리? 아닌데? 나 애들하고 같이 안 있는데?"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믿나 보 댜
"응 오늘은 안 모여. ......야, 근데 네가 맥주병으로 찔렀다는 그 물주 말이야, 어떻게 생겼어? ......왜 묻냐고? 그냥, 궁금하잖아. 재수 없는 놈 얼굴 알아야 우리도 피하지. 그 새끼가 우리 얼굴도 보고 여자 꼬시게 같이 클럽 가자고 하면 어떡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텐데. 민재는 옹기종기 모인 머리통 셋을 보며 확신했다. 등신 이 갑자기 장님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러나 우습다고 여긴 덩치의 변명이 통했나 보
-18과 1/2- 115 / 181
I I... ... 응 , 응 너 도 그 렇 게 생 각 하 지 ? 특 히 우 리 중 에 내 가 제 일 세 련 되 게 생 겼 잖 아 . 난 진짜 조심해야 돼.”
옆에서 듣던 친구 둘이 동시에 머리를 떼며 인상을 확 썼다.그중 하나가 작게 '남수 이 씨발놈아.' 하고 욕을 했다.그러나 이내 전화기로 들리는 희찬의 말을 들으려고 다 시 머리를 H陸t 댔댜 스피커폰을 켜라고, 스피커폰.민재가 속으로 외치는데 드디어 셋이 정보를 얻은 것 같았다.
깝삽한 얼굴에 키는 177cm 정도, 몸무게는 60kg쯤, 머리는 왼쪽 가르마, 눈썹이 흐려서 반 정도는 없는 걸로 보이고, 돌출 입에 턱이 길고, 오른쪽 광대 아래 작은 점이 세 개 있다고?"
덩치는 친구들 들으라는 듯 희찬이 한 말을 그대로 읊었다.민재는 의외다 싶었다.
꽤 자세한 설명이잖아? 게다가 제일 중요한 정보도 얻었다.
II... ... 오른쪽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고? 그럼 붕대라도 감았겠네? 아! 그거다! ...... 응?
아냐.알았어.끊어 야, 붕대다, 붕대! 어깨에 붕대 감은 사람 찾으면 돼!"
셋은 매우 기뻐했다.민재는 터져 나오려는웃음을 겨우 참느라 고개를 돌려야 했 댜 그러다가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오늘의 주인공을 발견했다.민재는 잠시 고민 하다가 뒤를 힐끔 보고 빠른 걸음으로 등신에게 다가갔다.뒤의 셋은 아직 교문을 보며 붕대, 붕대를 중얼거리는 중이라 후 문 쪽에서 다가오는 그를 못 본것 같았다.민재는 등신의 팔을 잡아채선 세 바보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갔다.
"어? 야, 너 뭐 하는... ....”
"입 닥쳐'’
"뭐?! 아니, 이 고딩 새끼가......으헉!"
쿵.
민재가 그의 왼쪽 어깨를 근처에 있던 건물 벽으로 세게 밀었다.그리고 멱살을 잡
-18과 1/2- 116 / 181
은 채로 위에서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꿀꺽. 등신이 두려움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 댜 민재는 그를 보며 낮게 말했댜
''받을 거 받고 꺼져. 말했지만, 그날 일 한 마디라도 입에 을리면 네 몸에 칼 박힐 거 야 권희찬 이름만 꺼내도 마찬가지야. 나에 대해 알아봤지? 우리 집 어떤지도 확인했 고. 그럼 알겠네. 난 널 죽여도 감옥에 갈 일은 없다는 거. ”
툭.그의 몸을밀며손에서놔줬댜그리고그가원하던 물건을가방에서꺼내친절 하게 손에 쥐여주었다
"잘 써라. ”
희찬은 한 달을 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집으로는 아무런 고소장이 날아오 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야구부 동창한테 전화해 물어봤더니 그도 애매한 답만 했다.
'나도 몰라. 그냥 너 신경 안 쓰는 것 같던데!
많이 다친 게 아니었나? 합의금을 준비하려고 열심히 일한 게 허무해졌다. 덕분에 큰돈만 생겼댜 반 정도는 친구들과 노느라 다 썼지만, 반은 남았다. 1학기가 끝나갈 무 렵까지 희찬은 여전히 엄마가 있는 밤엔 집에 안 들어가려고 피시방과 당구장, 술집, 편의점을전전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사고를 치진 않았다. 학교에선 여전히 공부도 안 하고, 온종일 잠 만 자고, 눈을 뜨면 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오는 게전부. 이 시절 엄마와 부딪치는 일도 줄었댜 희찬은 엄마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다. 마치 건들면 이를 드러 내고 덤
비는 개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그냥 집을 나올까? 고민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일해 돈을 벌어보니 집을 나 와도 혼자 잘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자신이 나오는 게 엄마를 위한 일 같았 댜 엄마가 자식이 무서워서 눈치만 본다면 자신이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제발 학 교만은 졸업하라던 엄마의 애원이 떠올랐지만, 한번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자 계속 이
-18과 1/2- 117 / 181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것만 이 옳은 방법 같았다.이 시절 반에서 유독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어느 날 눈을 뜨고 교실을 둘러보는데 반대편 끝 맨 뒤에서 긴 막대기를 닦는 녀석이 보였다. 별로 특이할 게 없는 풍경이었다.그는 무슨 운동을 한다고 했고, 학기 초부터 저렇게 장비를 들고 와서 닦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그는 막대기에 왁스를 꼼꼼 히 바르고 문질렀다.맨 위의 휘어진 쪽은 빛 아래로 가져다대고 유심히 살피기까지 했 댜 그에겐 그 일이전혀 귀찮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댜 어떻게 아느냐고? 그의 눈 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희찬은 저 기분을 알 수 있었다.오래전, 고작 몇 년전이지만 , 아주 오래전으로 느껴
지는 과거에 희찬도 저렇게 귀찮은 용구 관리를 신나서 할 때가 있었다.야구공을 일일 이 닦고, 글러브에 기름칠하고.기름이 스며들면 무거워지니 또 얼른 열심히 닦아내고, 운동장의 흙도 잘 정돈했다.
야구가 한창 재미있었을 땐 훈련으로 녹초가 되어도 집에 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때는 인생이 꽉 차있었댜 멋있고 자랑스러운 아버지도 있고, 항상웃는 친절한 엄마 도있었댜그때는그랬댜희찬은수업종이울릴때까지스틱 청소하는녀석을멍하 니보다가다시엎드렸다.
그날 저녁 그는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고시원을 알아보고 아르바이트 자 리도 미리미리 확인했다.다행히 합의금으로 준비한 돈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나가자 마자 일을 시작할 생각이라 돈은 문제가 안 돼 보였다.그래, 온종일 일하면 한 달에 얼 마 벌고, 방값 내고 나머지로 먹고살아도 돈이 남잖아.되게 쉽네.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이라며 뿌듯해했다. D-day로 잡아놓은 날은 방학식.그러나 거사를 며 칠 앞두고 계획을 모두 날려버릴 일이 생겼다.그날 희찬은 학교가 끝나고 습 관처럼 친구들을만나러피시방에가는게아니라다른곳으로향했다.
전철을 타고 백화점으로 갔다.우습지만 , 집을 나간다고 생각하니 엄마한테 작은 선 물이라도 하나 놓고 가고 싶었다.이제 안 본다고 생각하니 엄마에게 쌓였던 높고 높은 감정이 생각보다 쉽게 내려앉았다.그는 백화점 1층을 둘러보다가 진열대에서 파는 머
-18과 1/2- 118 / 181
리 장식을 봤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머리는 항상 어깨에 닿는 단발이었다. 머리띠도 하고, 반쯤 묶 어 예쁜 핀도 꽂고, 갈색으로 염색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더 짧게 자르고 무조 건 묶기만 했다. 1 년 사이 엄마가 머리를 푼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그 사이 로 흰머리가 보인댜 희찬은 머리띠를 하나 집었다. 반짝이는 큐빅들이 박혀 화려하고 예빴댜
'여자 친구 줄 거니?'
‘아뇨. 엄마요.’
'어머― 효자네. 정말 착하다.’
판매직원의 칭찬이 거북하고 불편해서 얼른 계산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사람 들을 밀듯이 헤치고 뛰면서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손엔 엄마에게 주려고 산 물건이 있 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부끄러웠다. 내가 이런 짓 해봤자 뭐 하겠나 싶었다.
어차피 집 나갈 망나니 같은 자식인데 이껏 머리띠 하나 놔둔다고 뭐가 달라져? 젠 장, 씨발, 괜히 샀어. 희찬은 백화점 야외 광장에서 입술을 깨물며 서있다가 주위를 둘 러봤댜 저 멀리 휴지통이 보였댜 손에 든 머리띠를 당장에라도 던져버릴 기세로 휴지 통까지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휴지통을 10m 정도 남겨뒀을 때, 걸음을 멈췄다 희찬은 손에 든 머리띠도, 눈앞의 휴지통도, 가시 같던 판매직원의 칭찬도 순간 모두 잊었다. 대신 정문 앞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며웃는 남자를 쳐다봤다.남자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과 함께 천천히 희찬의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 희찬이 그를 따랐다. 근 1 년 만에 보는 아버지였다.
방학식을 나흘 앞두고 반에는 무단결석자가 생겼다. 그러나모두 그냥 안 나왔구나 싶기만 했지,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여태껏 학교를 꼬박꼬박 나온 게 이상
-18과 1/2- 119 / 181
할 정도로 수업을 안 듣던 권희찬이니까 말이다.다음 날에도 안 나왔으나 다들 왜 안 왔지? 이렇게 생각하고 만 게 다였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다음 날에도 오지 않았다.담임선생님이 희찬과 친했던 이들을 찾았다 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그와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한 녀석이 있을까? 희 찬의 주변에 앉아 그나마 몇 마디라도 나누던 학생들이 불려갔다.반으로 돌아온 그들
이 입을 열었댜
'권희찬, 가출했대.'
'집에서도 찾고 난리가났나 봐'
'친한 다른 학교 친구들도 권희찬이 가출한 거 모른다는데 담임은 우리한테 물으면 어쩌라는 거야?'
'어디 부잣집 사모님이 데려간 거 아냐? 개 워낙 인물이 좋으니까.’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연예 기획사에 들어간 거다, 곧아이돌로 데뷔할 거란 다, 돈많은 여자 물어서 외국으로 튀었다더라 등등.권희찬이 학교를 빠진 나흘간 소 문은 눈덩이처럼 커졌다.대부분 소문 중 하나를 믿었으나 민재만은 달랐다.
그가 클럽에서 보고, 친구들을 통해 느낀 권희찬은 자기 외모로 원가를 하려는 녀석 이 아니었다 적어도 외모를 이용하는 걸 아주싫어했다.그래서 저런 이유로 가출했을 것 같진 않았댜 친구들이랑 친해 보이던데 친구한테까지 말 안 하고 집을 나갈 정도면 대체 무슨 일이야?
잠시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내 신경을 꼈다.드디어 기다렸던 방학이 시작됐다.그는
내일 아침 캐나다로 출국할 예정이었다.명목은 어학연수지만, 실제는 대학팀의 전X 훈련에 따라가는 거였다. 이미 대학팀은 몇 주 전에 그곳에 가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탈 때까지 조바심이 나서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짐은 이미 며칠전부터 싸놓았고,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그래서 저녁엔 캐나다 에서 그가 해야 할 일들과 가볼 곳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호출이 왔다 민재는 귀찮지만 옷을 차려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일 줄
-18과 1/2- 120 / 181
알았는데 운전기사가 내려준 가게는 그리 비싸 보이지 않는 일식집이었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가게야. 가끔 혼자 오셔서 식사하시지. 가게 사장님하고도 예전부터 잘 아시던 사이고.”
민재를 데리러 왔던 운전기사가 설명을 해줬다.아마도 아버지가 널 그만큼 아낀다 는 걸 알리고 싶었나 보다.민재는 그저 네, 대답만 하고 차에서 내렸다.아버지가 자신 을 아낀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다.물론 민재도 아버지를 아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아끼는 건 보통의 가정에서 부자가 나누는 정과는 달랐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빴고, 그 일을 즐겼다.민재가 기억하는 시점부터 아버지는 언제 나 일이 우선이었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의 부재를 서운해한 적은 없댜
어차피 어머니도 자주 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고.그러나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 랑했댜 아버지는 일을 선택한 대가로 자신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을 몇십 배로 불렸다 그의 노력은 민재에겐 자극이었고, 모범이 되는 사례였다.
민재가 하는 운동만 아니라면 그들 사이에 문제 될것이 없었다.하지만 이미 민재 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운동의 길로 평생 가자고 마음먹었다.그래서 이날 식사가 달갑 지만은 않았댜 보나 마나 식사 때 할 얘기는 운동밖에 없었다.운동은 취미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네가 할 일은 따로 있댜 운동에 정신 빠져서 헛꿈 꾸지 마라
아직 듣지 않은 얘기가 귓속을 울리는 듯했다.민재는 안내된 방에서 직원이 내준 시원한 냉차를 마셨다.차를 석 잔이나 마실 동안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아 버지가 말한 약속 시각이 1시간을 넘어가서야 민재의 휴대폰으로전화가 왔다.아버지 비서전화번호였댜 분명히 일이 생겨 또 못 온다는 연락이겠지.예상하고전화를 받았 댜
「민재야, 아직 가게지? 20분만 더 기다려.아버님 일이 지금 끝나서 바로 출발하실 거야.」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다.민재가 아무 말 못 하고 있을 때 비서가 빠르게 물었다.
-18과 1/2- 121 / 181
「참,어머니 오셨니?」
"어머니는 오늘 재단 만 찬회에 가셨는데요.”
「응, 그런데 그쪽에 얼굴만 비치고 오신다고 연락하셨어. 30분 전에 일어나신다고 하셨으니까, 곧도착하시겠네.」
민재는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려다봤다.얼떨떨했다.가족끼리 밖에서 함께 저녁 을 먹은 기억은 아주 오래전이다.그것도 민재를 위해서 모이는 건.생일에도,학교 입 학,졸업 때도 모이지 않던 가족인데 오늘 모인단댜 단순히 몇 주 어학연수를 가는 아
들을 위해서 말이다.
기분이 묘했다.민재는 둘뜨려는 심장을 억지로 눌렀다.아직 모르는 일이야.분명
히 곧다시전화가 오겠지.두 분 다 못 오신다는 연락이 을 거다.휴대폰을 노려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그리고 정확히 20분 뒤, 아버지도 오셨다.
좁은 가게의 름.천천히 하나둘 음식이 나왔고 배가 고팠던 부모님이 평소보다 더
맛있게 음식을 드셨다.특히 민재에겐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식사였다.아버지는 민재
가 예상한 잔소리도 없이 그저 캐나다에 잘 다녀오라는 응원만 하셨다.
1시간가량의 식사는 민재에게 아주 길었고, 한편으로는 아주 짧았다.식사를 마치 고 가게를 나오자 아버지는 남은 일이 있어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그의 차가 먼저 출 발하는 걸 보며 민재는 자신이 계속 미소 지었다는 걸 깨달았다.민재야.어머니가 그 를 불렀다.어머니는 운전기사가 가게 앞 도로에 대기시켜놓은 차로 먼저 걸어갔다.
민재는 천천히 몸을 돌려 걸었다. 빨리 가는 게 아쉬웠다. 엄마가 부르지만 않으면 좀 더 가게 앞에 머물고 싶을 정도였다.그렇다고 정말로 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가게 근처 바닥에 주저앉은 이를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처음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댜 그러나 곧그 사람이 자신의 시선을 끈 이유를 알았다.
아는 사람이었댜 한곳을 향한 공허한 시선, 며칠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후줄근한 교복 차림.가출했다는 권희찬이었다.재가 왜 여기에 있지? 민재는 그가 뚫어져라 쳐 다보는 가게의 창과 그를 번갈아 봤다.창으론 환한 내부가 보이고 그 안에서 술을 곁 들여 식사하는 손님 몇 명이 보였다.
-18과 1/2- 122 / 181
희찬은 그들을 보느라 자신이 가게 밖에 나온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대체 누군데? 민재는 창 안쪽의 손님을 살폈으나 특별해 보이는 이는 없었다. 왜 저기서 저 렇게 감시하듯 기다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아무튼 이런저런 소문은 다 틀린 것 같았 댜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가 기다리는 차로 향했다. 그러나 이날 기분이 좋았기 때문일까, 그는 차에 타지 않고 어머니한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곤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을 샀다.
열대야가 시작된 이후 해가 지고도 땅과 공기는 뜨거워서 숨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다가가도 알지 못하는 권희찬의 무릎 위로 음료수를 던졌다. 차가운 페트병이 몸에 닿 자 그가 깜짝 놀라 눈을 들었다. 그러나 빛을 등지고 선 민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눈 을 찌푸렸다
"당신 뭐야?"
뭐긴, 너랑 같은 반이지. 민재는 속으로 답하고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손을 뻗 었댜 누군가에게 참견하는 건 정말로 자신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이날은 이런 행동 이 자연스럽게 나왔댜 민재는 땀에 젖은 희찬의 머리에 손을 을렸다.그리고 아버지가 어릴 적 자신에게 해주시던 그대로 머리카락을 흩트리듯 쓰다듬었다.
"엄마 걱정하시겠다. 집에 들어가. ”
충고를 하고 몸을 돌렸다.뒤에서 너 뭐냐며, 욕이라도 들릴까 싶었는데 아무런 소 리도 나지 않았다.어차피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라서 권희찬이 방황을 끝냈으면 하는 바람도 없었댜 어머니의 차에 타며 그는 이미 권희찬을 잊고 내일 갈 캐나다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즐거운 방학이 될것 같았다•
희찬은 자신도 왜 아버지를 며칠째 쫓아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가출하려고 통 장에 넣어놨던 돈까지 쓰면서 말이다.휴대폰은 첫날 바로 배터리가 닳아서 전원이 꺼
-18과 1/2- 123 / 181
진 상 태 댜 아마도 엄마,학교,친 구들이 건 전화가 수도 없을 거다•
휴대폰은 편의점에서 충전하려면 할 수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아버지의 뒤를 쫓는 데전화는 필요 없었다.필요한 건 그저 더운 여름에 밖에서 기다릴 인내와 그의 앞에 나설 용기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쫓으며 희찬은 전혀 다른 아버지의 모습
을봤댜
그는 영업사원이었댜 온갖 동호회 활동과 잘생긴 외모, 누구라도웃게 할 매력적인 말재주 덕분에 실적은 아주 좋았다. 희찬이 알기엔 그는 매년 회사에서 주는 상을 받았 으며 전국에서는 top 5 안에 든다고 했었다.그 때문에 술도많이 마시고 집에서는 잠 만 잘 뿐이었지만 희찬에겐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나훌 전,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희찬이 상상한 그대로였다.영업 때 문에만나는손님인지연방미소를지으며 계속말을꺼냈다.백화점근처커피숍에들 어가선 여러 카탈로그를 꺼내놓고 한참을 설명했다.상대는 아버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하고,아버지의 잘생긴 미소에 마주웃기도 했다.
그러나 희찬은 아버지가 더는 자랑스럽지 않았다.실망스럽고, 분노가 치밀었다.엄 마와 자신은 생활이 모두 뭉개져서 고통스러운데 아버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것 같았댜 더 확인하고 싶었댜 아닐 거다.분명히 우리와 떨어져서 아버지 도 괴로울 거다.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정도로 후 회되지만 ,무서워서 못 돌아을지 도 몰라 희찬은 그 길로 계속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영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아버지는 해 질 녘이 돼서야 밖으로 나왔다.그가 어
디에서 사는지가 제일 궁금했다.그러나 첫날은 택시를 늦게 잡는 바람에 아버지의 차 를 놓쳐서 다시 회사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의 회사 앞에서 밤을 새웠다.
편의점에서 밥을 먹고 회사 입구가 보이는 길 건너 화단에서 꾸벅꾸벅 졸며 새벽을 맞이했댜 그리고 또 온종일 따라다녔다.그가 어디에서 점심을 먹고, 누구와 이야기하 고, 언제 담배를 피우는지도 봤다.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나웃는 모습도 함 께.
이날은 퇴근하는 아버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미리 택시에 타서 기다렸다.다행히 아 버지의 차는 잘 보이는 1층에 주차돼 있어서 따라가는 데 성공했다. 이틀간 기다린 게
-18과 1/2- 124 / 181
허무할 정도로 아버지는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차로 겨우 10분 거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였댜
지은 지 몇 년 안 된 신축 아파트인지 주위의 다른 아파트보다 더 높고 입구에서부 터 차량 통제가 있었다.희찬은 할 수 없이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려 아버지 차가 사라 진 지점을 기억해뒀다.그리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 지하 주차장을전부 뒤졌다.
아버지의 차는 107동 근처의 주차장에 있었다.운이 좋게도 차의 앞 유리 안쪽에 아 파트를 통과하는 인식 카드가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동 호수가 적혀있었다.주소를 확 인하고 1 07동 근처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기다렸다.
희찬은 몇 시간을 앉아있으면서 자신이 뭘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좁고 답답 한 원룸에서 살 줄 알았던 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좋은 곳에 사는 걸 쳐들어가서 확인 하려고? 저 집에 아버지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같이 사는 건 아닌지 보려고?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망하길 바라진 않았지만, 적어도 후 회할 정도 로 힘들게 살길 바랐다.그러나 현실은 달랐다.아버지는 땅값 비싼 동네에서도 비싼 아파트, 저 높은 곳에 살며 일도전처럼 열심히 하고 있었다.그리고 희찬은 이틀을 더 아버지를 쫓아다니다가 마지막 날 아버지와 함께 아파트에서 나오는 여자를 보았다.
어깨를 넘는 갈색 단발머리, 이목구비가 시원하게 큰 예쁜 얼굴에 푸른색 민소매 원 피스를 입은 30대 후 반의 여자.그녀는 아버지와 나란히 손을 잡고 아이처럼 팔을 혼 들며 걸어갔댜 오후 7시가 넘었지만, 길어진 여름 해는 아직 하늘에 조금 남아있었다.
희찬은 그들을 따라 걸었다.그는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했다.옷은 땀으로 젖었다 가 마르기를 반복해서 노숙자처럼 안 좋은 냄새가 났다.맨바닥이나 벤치에서 베고 잔 가방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며칠 사이에 낡아버렸다.두 사람은 아파트에서 10분 남짓 걸어 한 작은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일식집의 커다란 창 안쪽에 자리를 잡고 원가를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웃고, 떠들고, 사이사이 상대의 팔과 얼굴,
머리카락을 만졌다.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이였다.
희찬은 첫날과 달리 분노도 잊은 채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봤다.아버지를 쫓아다
-18과 1/2- 125 / 181
니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작은 바람이 있었다. 어느 순간엔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차리 고 놀라서 ' 희찬아' 이름을 불러주기를. 분명히 돌아보고 자신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식집 앞에 앉아서 희찬은 처음으로 모든 걸 포기했다. 아버지는 행복해 보 였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을 만큼 눈앞의 상대만 보며웃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 슨 짓을 하는 거지? 지난 나흘간 쓴 택시비만 몇십만 원.
난생처음 길거리에서 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편의점 컵라면으로 나흘 식사를 때웠다 한여름 35도를웃도는 더위에 숨이 막혀죽을 것 같으면서도 이 짓거리를 멈 추지 않았댜 대체 월 하려고? 난 왜 이런 짓을 했는데?
툭·
갑자기 무릎 위로 차가운 음료수병이 떨어졌다. 놀라서 눈을 들었다. 옆에 누군가가 서있었댜 그러나 빛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아주 키 가 크고, 젊은 남자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당신 뭐야?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답은 커 다란 손이었댜 며칠 제대로 씻지 못해 더럽고 냄새나는 머리를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 었다.
'엄마 걱정하시겠다.집에들어가.'
그가말을하고돌아섰다.희찬은나흘만에처음으로아버지가아닌 다른이를쳐
다봤다 누군지 모르는 그가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끔벅끔벅. 눈 에서 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잠시 후 , 희찬은 식당의 아버지를 뒤로하고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교실은 다시 반 아이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은 방학 때 있던 보 충수업에서 봤던 터라 크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충수업에 안 나온 몇 명이 있어 서 그들이 반에 들어왔을 땐, 다들 시선을 보냈다. 하나는 캐나다에 갔다 왔다는 우민
-18과 1/2- 126 / 181
재였고, 다른 하나는방학전 며칠을 무단결석한 권희찬이었다.
우민재는 방학 사이 키가 5cm는 더 컸고, 어깨도 더 넓어져서 반 아이들의 기를죽 였댜 그리고 권희찬. 이 녀석도 반 아이들의 기를죽였댜 그는 놀랍게도 머리를 반삭 으로 밀고 왔던 것이다. 더 큰 충격은 그게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전에 한 녀석이 권희찬은 대머리여도 어울릴 거라던 예언이 사실로 드러났다.살짝 탄 피부에 반삭, 어딘지 더 단단해진 몸.완전히 까리했다.그를 보며 몇몇은 고민했다. 나도반삭할까?
그 정도로 희찬의 반삭은 멋있어서 그를 둘러싼 무수한 소문은전부 잊힐 정도였다.
반에 잘난 놈이 두 명이나 있어서인지 가뜩이나 방학이 끝나 우울했던 반 아이들의 기
분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게다가 평소 권희찬을 괴롭히던 학부가 처음으로 그를 칭찬하며 반 아이들과 비교했다.
''권희찬, 일어서봐.”
학부와 앙숙인 희찬이 찌푸린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또 무슨 벌을 주려고? 의 심하는 그에게 학부가 말했다.
I'머리 스타일 아주 좋아.너 희 도 잘 봐. 저게 바로 학생이 해야 할 단정한 머리다.얼 마나 깔끔하고 좋아?"
몇 명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진짜 반삭 할까?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지옥으로 걸 어 들어갔댜 반면에 희찬은 뜻하지 않은 칭 찬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으나 표정은 영 못 마땅해 보였다 칭찬 덕분에 학부의 영어 시간이 조금 늦게 끝났고, 희찬은 기분이 안 좋은 듯 자리를 박차고 교실을 나갔다.그의 표정을 기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또 쓸데
없는 추측이 돌았다.
''권희찬 머리, 가출하다 잡혀서 밀린 거 아냐?"
"역시.그래서 저렇게 못마땅한 얼굴이었구나.”
“대체 가출해서 무슨 일을 했기에 저렇게 머리가 밀릴 정도인 거야?"
-18과 1/2- 127 / 181
호스트 했나 보다, 연예 기획사에 갔다가 잡혀 왔나? 등등 한창 권희찬에 대한 말들 이 오갈 때 갑자기 아이들의 말이 뚝 끊겼다.어느새 앞문에 권희찬이 서서 반 아이들 을 노려보고 있었다.우리가 자기 얘기 하는 거 들었나 보다.
다들 시선을 피하며 다른 일 하는 척을 했다. 권희찬은 반 아이들을 한참 노려보다 가 살벌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민재는 그를 보며 잠시 방학식 날 봤던 그를 떠 올렸댜 어찌 된 건지 몰라도 지금은 원래로 들아온 듯싶었다.저렇게 반 아이들을 공 포로 떨게 하니 말이다.
희찬은 다른 학생들처 럼 방학이 끝나는 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본의 아니게 가출 해서 집에 돌아간 이후 아들이 납치된 줄 알고 반 미쳤던 어머니에게 맞고, 외삼촌에게 맞고, 어떻게 소식을 둘은 건지 큰아버지까지 찾아와 혼냈다.물론 큰아버지한테도 먼 지나게맞았다
어머니는 희찬이 며칠째 소식이 없는 동안전남편에게도 연락했던 것 같다.희찬이 아버지의 차를 놓쳤던 때도 있으니 그의 행동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찾으려는 모습은 없었다 그에게 자신은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히 깨닫게 된 건, 큰어머니가 집 으로 찾아와 엄마한테 분통을 터트리는 걸 우연히 들었을 때였다.
'어떻게 자기 아들이 집을 나갔다는데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느냐고! 자기 일은 알 아서 할 나이이니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희찬이가 어른도 아니고 대체 그게 무슨 무 책임한 말이야? 희찬이가 자기 발로 안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어? 만약 밖에서 무슨 일
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큰어머니는 엄마가 터뜨리지 못하는 울분을 대신 토하듯 분노를 쏟아냈다.희찬은
열린 주방 창문으로 잠시 더 얘기를 듣다가 돌아섰다.뭐,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둘의 능력을 높이 샀든, 신경 쓰기싫어 버린 거든 상관없었다.
당장 희찬에게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큰아버지가 큰 결심을 한 듯 희찬을 바로 시장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켰으니까.그는 며칠간죽음을 경험했다.
-18과 1/2- 128 / 181
시장에서의 일은 굉장했다. 하루만 이 일을 해도 불면증 있는 사람은 5분 같은 10시간 의 잠을 잘 수 있고,평소 잡생각으로 괴로운 이들은 그저 숨 쉬며 살아있는 것에 감사 하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망도 몇 번 쳤다. 하지만 큰아버지에게 번번이 잡혔고 그렇게 방학 내내 일하느라 친구들과도 자주 보지 못했다. 학기 중에도 매일 보던 녀석들인데 방학 땐 일 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그리고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토요일.모처럼 일을 쉬는날이었댜
희찬은 계획도 세웠댜 오늘은 기필코 개처럼 놀리라.그리고 친구들의 호출에 전에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는 남수네 편의점으로 갔다. 방학 때는 남수가 오후 까지 편의점 을 보느라 대부분 그곳에서 모였다가 남수 일이 끝나면 다 함께 피시방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일찍 모였다. 한 친구에게서 다급한 문자가 온 탓이었다.
[비상이다! 남수큰일났다!]
무슨 큰일? 남수는 그나마 무리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녀석인데? 사고를 치면 다른 셋이 쳤지, 남수는 절대 아니었다. 녀석은 은근히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남자답지 않 게 깔끔하고, 패션에 민감하고,미를 추구했다.물론 그런 남수를 비웃는 사람은 없다. 남수는 키 177cm의 근육질 헬스 마니아니까.그래서 희찬은 무슨 일인가 싶어 편의 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굳었다.
"동41 -, . ’’
남수를 보는 순간 경악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게,365일 언제나 한 을의 흐트러짐 도 없이 완 벽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던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었 다 대신 빡빡이가 한 명 있었다
"남수 너 머리가.......”
"어허,권희찬.”
먼저 도착해있던 친구 둘은 그런 희찬의 반응을 미리 예상한 듯 말을 막았다.남수 는 희찬이 왔는데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저 편의점 계산대 뒤에 멍하니 앉아있기만
-18과 1/2- 129 / 181
했댜 희찬은 그의 상태가 좋지 못한 걸 확인하고 다른 친구 둘에게 다가갔다. 대체 어 떻게 된 거야? 작게 묻자, 얼굴이 긴 지홍이란 친구가 역시 작게 설명했다.
"남수가 편의점에서 파는 헤어 왁스를 몰래 빼 썼는데 아버지한테 걸렸대. ”
희찬은 남수보다 키는 작지만, 덩치는 비슷한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평소엔 털털 하시지만, 한번 화나면 장난 아니게 무서운 분이었다.그래도 그렇지.
"겨우 헤어 왁스 하나에 저렇게 아둘 머리를 밀었단 말이야?"
"하나가 아니니까 그렇지. ”
"하나가 아니면?"
“일주일에 하나씩 뽀렸다더라.그렇게 1 년간.” "뭐? 그럼 대체 몇 개나 뽀렸다는 거야?!"
희찬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으나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두 친구도 이미 계산해보려 고 노력했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산수는 그들에게 너무도 어려운 학문이었다.대신 다 른 친구인 철환이 끼어들며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요점은 남수가 1년에 몇 개의 헤어 왁스를 쓰냐가 아니야. 일주일에 하나라니. 씨 바, 어떻게 인간이 헤어 왁스를 일주일에 한 통씩 처바를 수가 있느냐고?! 저 자식 머 리 길이는 무슨 100m야? 오로라 공주도 일주일에 한 통은 못 쓰겠다!"
그의 큰 목소리에 남은 둘은 남수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그는 옆에서 천둥이 쳐도 모를것처럼 여전히 넋나가있었다.희찬은친구의상태에고개를저으며철환에게물 었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가 누구야?"
’' 머리 긴 동화 속 주인공이잖아. 머리가 엄청나게 길어서 탑에서 늘어트리면 그걸 타고 사람들이 올라가는 얘기. 너 그걸 모른단 말이야?"
"들어본것도 같고.”
-18과 1/2- 130 / 181
”이런 무식한 놈. 어떻게 오로라 공주를 몰라? 지홍이 넌 알지?"
지홍은 잠시 눈을 한 바퀴 돌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지. 머리 긴 오로라 공주. ”
"거봐, 지홍이도 안다잖아. ”
''씨바, 모를 수도 있지. 난 원래 책 싫어해. 심철환이 넌 동화책 좀 읽었나 보다?" "야, 내가 다섯 살까지만 해도 학구파였어. ”
"왜 다섯 살인데?"
희찬의 질문에 철환은 잠시 허공을 보며 회상에 잠겼다.
“그때 사춘기가 왔지. ”
''씨발, 다섯 살에 사춘기 오는 놈이 어디 있어?!"
"왜 없어? 일찍 을 수도 있고 늦게 을 수도 있지. 씨바, 우리 외삼촌은 마흔 넘어 사
춘기 와서 외할머니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는데. ”
그런가?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나? 희찬과 지홍은 심각하게 고민하다 가 이내 수긍했다. 하긴 철 안 들어 반항하는나이많은 친척들이 주위에 한둘은 있으 니까. 그러면서 둘은 철환을 새로운 눈으로 봤다. 5세에 사춘기라니, 원가 있어 보이는 데?
“그럼 사춘기 지나간 심철환이 네가 오늘 컵라면 쏴라"
''씨바,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기념 만들지 마. 그리고 라면 어제 먹었어. 딴 거 먹을
래.“
"뭐 먹을 건데?"
뭐 먹지? 돈가스? 제육 덮밥? 셋은 둘 중에 열심히 고민하다가 문득 허전함을 느꼈 댜 뭐지? 셋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깨달았다. 헉! 남수! 셋이 동시에 남수에게
-18과 1/2- 131 / 181
고개를 돌렸댜 그는 여전히 같은 상태였다‘ 맞다,이 녀석 위로하려고 모였지•
그러나 산송장 같은 녀석의 기운을 어떻게 북돋아 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편 의점 안에 모처럼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희찬은 판매대로 가서 껌 하나를 들고 직접 바코드를 찍어 계산했다. 그리고 껌 두 개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너 뭐 하냐? 쳐다보 는 둘에게 껌을 내밀었다.
''먹을래?"
먹을 걸 거부할 놈은 없다.껌 한 쪽이라도 공짜라면 1년은 씹을 수 있었다. 잠시 내 부엔 셋이 껌 씹는 소리만 들렸다.그리고 어느 정도 씹은 희찬이 손으로 먹던 껌을 빼 내서 자기 머리카락에 붙였다.
”에이 씨! 머리에 껌 붙었어!"
껌 씹던 둘은 저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으나 이내 친구의 속뜻을 알아차렸 댜 희찬이 신경질을 내며 계산대로 들어가 가위를 찾아 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자 기 머리를 싹둑 잘랐다.
"야! 너, 너 뭐 하는 거야?!”
그제야 인형처럼 앉았던 남수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희찬은 그에게 잘린
머리를 보이며 물었다. ”껌 다 떨어져 나갔어?"
"너, 너 머리가•....머리에 땜빵 생겼잖아!"
”껌 더는 안 붙었는지나 보라고.” II... ... 없어.”
”에이,빌어먹을 껍"
"너 머리 이제 어떡하려고?"
어쩌긴. 희찬은 손으로 잘린 머리카락을 만지며 쉽게 답했다.
-18과 1/2-
132 / 181
"다 밀어버려야지.”
그리고 몇 초 뒤 , 같은 소리가 또 들렸다.
''씨바! 여기 껌 왜 이래!!”
철환이 머리에 껌을 붙이며 길길이 뛰었다. ”에이 씨, 나도 밀어버릴 거야!"
그러더니 그가 하나 남은 지홍을 쳐다봤다.지홍은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슬쩍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철환이 '넌 안 해?' 협박하듯 한쪽 눈썹을 둘어 올렸다.지홍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잠시 후.꿀꺽.지홍이 껌을 삼켰다.
II II
""
''권희찬.저 새끼 잡아라"
그렇게 평일 오후 한가로운 편의점 안은 돼지 멱따는 소리와 비명, 친구의 진한 우 정이 뒤섞여 빡빡이 네 명을 탄생시켰다.그렇게 희찬은 빡빡이가 되었다.그러나 딱히 헤어스타일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빡빡이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학교에서였다.오랜만에 가는 학교는 역시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다.유일한 낙이라면 방학이라 먹지 못한, 학교 매점에서만 파는 소시지빵을 먹을 수 있다는 거였 댜 그러나 워낙 인기 상품이라 2교시가 지나면 살 수가 없다.당연히 1교시 끝나고 바 로 뛰어가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1교시 끝나고 불행이 찾아왔다. 담임선생님이 호출했다.기회를 놓친 희찬 은 2교시만 노렸다.종이 땡 하고 울리면 바로 튀어 나갈 생각이었다.그렇게 시계만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름이 불렸다.권희찬, 일어나봐라.학부가 난데없이 그를 불 렀다.
아 씨, 뭐야, 소시지빵 먹을 생각에 졸지도 않았는데 왜 부르지? 그러나 희찬의 경계 와 달리 학부의 입에선 칭찬이 나왔다. 머리가 단정하다나?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18과 1/2- 133 / 181
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곧종이 칠 시간이었다.제발 그만 칭찬하고 빨리 수업 이나 끝내라고요.
속으로 애달파하는데, 불길한 예상이 현 실로 다가왔다. 학부의 잔소리가 계속되는 와중 종이 울렸다.희찬은 짜증 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학부가 혹시 자신의 계획을 알고 방해하려고 일부러 저러나? 의심까지 들었다.그는 원래도 수업 시간마다 희찬 이 자지 못 하게 방해하는 인생 최대 적이었다.
그렇게 학부가 뜸을 들이다가 나갔다.희찬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뛰쳐 나갔댜괜찮아, 아직 2교시야.먹을 시간은 없어도, 살 시간은 있어! 희망을 품고 매점 으로 달려갔댜 가뜩이나 교실이 매점에서 가장 먼 곳이라 토할 만큼 전력으로 뛰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희찬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소시지빵은 없었다. 소시지빵만 없 었댜 다른 건 다 있는데 이것만 없었댜
“아줌마,소시지빵은요?"
믿을 수가 없어 진열대의 빵을 몇 번이고 뒤지다가 매점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가귀찮은듯답했다.
“다 팔렸어.”
그녀의 말이 귀에서 에코로 여러 번 울렸다.다 팔렸어, 다 팔렸어, 다 팔렸어.......교 실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주위에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을 하L�식 붙잡고 구 강 조사를 하고 싶었으나 교실로 얼른 돌아가야 했다.그러나 교실 입구에서 반 아이들 을 보니 다시 빡쳤다.너희 중에도 분명히 소시지빵을 먹은 녀석이 있겠지? 대체 어떤 놈이 아침부터 빵을 처먹은 거야!
2학기 권희찬이 달라진 점 이 있다면 좀 더 열심히 잔다는 거였다. 1학기 때는 엎드 려있다가도수업이 끝나면 일어나기라도했는데 2학기 때는쉬는시간구분없이그 냥 내리 쭉 잤다.1학기 때는 수업 시간에 자는 문제로 교무실에 몇 번 불려갔었는더
-18과 1/2- 134 / 181
방학전 가출 때문인지, 선생님들도 다들 권희찬을 포기한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는 잠을 잘 만 한 이유도 생겼다.그를 시장에서 봤다는 증인이 하나, 둘 생겼댜 학교 끝나자마자 시장으로 가서 일한대.희찬과 그래도 가끔 얘기를 나누는 앞 자리 아이가 직접 물어봤다.
'너 밤에 시장에서 일해?'
응.’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반 아이 중엔 희찬을 이해 못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 댜 대체 왜 저 얼굴로 시장에서 일하는데? 그거 막노동이나 마찬가지 아냐? 지금이라 도아무기획사에들어가면 당장아이돌로데뷔할수있는데왜 외모를썩히지?이의 문은 학생들뿐만 이 아니었던가 보다.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 한 분이 희찬에게 물었 댜
넌 잘생겼는데 연예인이나 하지 그래?'
'왜요?’
'왜긴? 잘생겼으니까.'
'제가 외모 말고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인가요?'
선생님은 당황하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외모도 재능처럼 태어나면서부 터 네가 받은 특별한 선물이니 활용하면 좋다, 등등. 그러나 희찬은 입을 다문 채 선생 님을 차가운 눈으로 보기만 했다.희찬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일화였으나 여전히 대부분 은이해를못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얼굴로 훨씬 많은 돈을 벌 텐데 왜 저러고 살지? 유일하 게민재만 희찬의생각을조금은이해했다.다들민재가운동에빠져그길로나가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조금만 공부해서 부모님의 돈을 물려 받아 부자로 살면 되잖아. 운동은 취미로 해.
민재의 아버지가 엄포를 놓은 적이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네
-18과 1/2- 135 / 181
가 받을 돈은 한 푼도 없다고. 민재는 이미 마음속에서 돈보다 운동을 택했다. 모든 사 람이 타고난 재능,물려받을 재산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민재처럼 좋아하는 일을 택하 는 사람도 있고, 희찬처럼 타고난 것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남들의 눈에 별종, 계산 못하는 바보로 비치는 게 짜증 났다. 그래서 그는 희 찬이시장에서일하는게나쁘게보이지않았다.그리고이다짐을더확고히 하는일 이 생겼댜 수학여행을 가기 이틀전,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민재는 바로 장례식장으 로향했댜
장례는 무사히 마쳤다. 다만 , 할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시작됐다.민재 는 어른들의 싸움이 역겨워 피하고 싶었으나,어린 그가 바로 싸움의 중심이었다.할아 버지는 손자 중 유독 민재를 예뻐하셨다.
민재는 조부의 애정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그저 자주 찾아뵙고, 얘기를 나누고 하는 건 민재가 그러고 싶어서였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민재가 운동하 는 걸 반대한 분이기도 했다.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년 크게 될 놈이야. 그껏 운동으로 널 가두면 안 돼.'
그런데 변호사가 유언장을 공개할 때 문제가 생겼다. 할아버지가 재산 대부분을 민 재 앞으로 남겼던 것. 다만 ,재산은 민재의 아버지가 관리하고 민재가 서른 살이 될때 까지운동만 한다면돈은받을수없다는내용이었다.친척들은모두화가났다.
분노는 민재와 민재 아버지에게 쏟아졌다. 두 사람이죽으려는 늙은이를 속여 유언 장을 만 들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실제로 유언장은 할아버지가죽기 며칠 전에 변경 되었다고 한댜 민재는 솔직히 아버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무언가 말 한 건 아닐까? 할아버지의 유산도 모두 받고,민재의 앞날도 제 뜻대로 조종하려고 말 01댜
민재가 아는 아버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씁쓸했다.자신이 그의 손 아귀에서 놀아날 것 같은 기분.그래서 더더욱 운동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서른 살이라는 기한을 정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운동에도 질리 고, 돈이 최고인 평범한 어른이 될거라는 계산이겠지.민재의 아버지는 절대 급하게
-18과 1/2- 136 / 181
일을 진행하지 않는댜 그가 무서운 점은 시간을 두고, 포기하지 않은 채 원하는 일을 이루는끈7|였댜
그러나 그의 아들인 우민재는 아버지의 이런 점을 누구보다 쏙 빼닮았다. 지옥 같은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있기싫어서 학교로 향했다. 다들 이미 수학여행을 가버린 후 라, 가지 않은 학생들만 따로 한 교실에 모아서 자율학습을 한다고 들었다.
가면 어차피 빈 교실이겠지만, 뭐든 집보단 나았다. 우울한 기분으로는 운동도 할 수 없었댜 그러나 교실엔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다른 학생이 두 명 더 있었다• 한 명은 얼굴을 모르는 다른 반 학생, 나머지는 같은 반이었다.
그는 xx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2학년 2반 학생이었다.중위권 성적에 여느 고 등학생처럼 게임을 좋아하고, 점심때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를 하며 놀 았댜 2학기 때 가는 수학여행은 다른 친구들처럼 기대가 컸다.
술 가져갈까? 걸리면 어떡해? 씨바, 딴 병에 숨겨서 가면 되지! 모여서 작당도 하고 열심히 기다렸는데 불행이 찾아왔다.운동하다가 팔을 다쳐버렸다.깁스를 한 채로 수 학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부모님과 선생님이 다친 몸으로 가는 게 아니라며 반대하셨 댜
그는 우울했다.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에 자신만 못 가다니. 게다가 수학여행 안 가 는 사람은 학교에 나오란다. 에이 씨. 반 친구들이 버스에 올라타 학교를 떠나는 걸 보 고 우울함에 임 시 교실로 향했다. 분명히 수학여행 안 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생 각하며 교실 문을 열었는데 한 명이 있었다.
흠칫. 2학년 5반 권희찬이었다. 잘생기고 무섭기로 유명해서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매점에서 몇 번 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니까. 잘생긴 얼굴로 피자빵을 먹는데 무슨 피자빵 광고 찍는 줄 알았다. 빵 먹는 것도 존나 멋있었댜
-18과 1/2- 137 / 181
그러나 유명인과 같이 지낸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었다.저 녀석은 다른 학교 일진 과 절친에다가 싸움도 아주 잘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괜히 긴장해선 희찬과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았댜 그리고 힐끔 봤다.그는 이미 엎드려 자고 있었다.
아 씨, 남들은 수학여행으로 즐거울 때 난 존나 심심하겠구나.그의 예상대로 온종 일 한마디도 안 한 채 집으로 가게 됐다.다음 날, 그는 혼자 놀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한 채 학교로 갔다.그리고 또 다음 날.삼 일째 보니 희찬도 익숙해져서 그리 무섭지는 않았댜
게다가 호기심도 생겼다.그는 오전 내내 잤지만, 잠깐 깨어 있는 시간도 있었다.그 럴 때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봤다.그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와, 존나 잘생겼 댜 넋 놓고 그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무슨 음악을 들을까? 락? 메탈? 아니, 어쩌 면 슬픈 발라드를 들을지도.
그도 그럴 게 그의 표정이 왠지 우울해 보였다.창밖을 보는 눈이 슬퍼 보이기도 했 고 무슨 일이 있나?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는 잠시 후 , 희미한 미소를 지었댜 아, 이번 엔 즐거운 노래가 나오나 보다.그렇게 한참 넋 놓고 그를 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새로운 학생이 들어왔댜
수학여행을 안 간 학생은 한 명 더 있었다.이번에도 같은 반이 아니지만,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 학생도 은근히 교 내에서 유명했으니까.190cm에 육박하는 큰 키, 고등 학생으론 볼 수 없는 넓은 어깨와 근육 잡힌 몸.게다가 엄청 난 부자라는 소문까지.
이름이 아마 우민재였을 거다.권희찬도 그렇고 우민재도 그렇고 보자마자 졸게 생 긴 녀석들 과 같이 지내야 한다니.게다가 우민재는 잘웃는다는 소문과 다르게 안 좋 은 일이 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권희찬처럼 그도 인사 따윈 하지 않았 댜썰렁했댜
사람이 셋으로 늘었으나 역시 이날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집으로 왔다.그러나 마지 막 날은 조금 달랐다. 이날도 권희찬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봤고, 우민재는 휴대폰 화면으로 운동 경기를 보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다들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때, 갑자기 권희찬이 우민재에게 말을 걸었다.팔을 다친 학생에
겐 어디로 보나 시비로 들리는 말을 말이다.
-18과 1/2- 138 / 181
"야, 넌 100살까지 그 운동이나 하고 살아라. ”
“정말로 안 갈래? 네 평생 딱 한 번 있는 여행이야.지금은싫을지 몰라도 나중에 좋 은 추억으로 남을 거야.”
담임선생님이 희찬을 설득했다. 그러나 희찬의 의지는 아주 굳었다.수학여행 따위 절대로안가.그귀찮은걸 내가왜가야하는데?
"저 새벽에 일 나가야 하는데요. ”
“그 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어머님하고 통화했는데 큰아버지 가게라 빠질 수 도 있다던데? 그리고 어머니도 너 일하는 거 반대하신다고 하셨어. ”
“그래도 할 겁니댜 이 일 안 하면 전 술이나 먹고, 싸움질이나 하다가 감옥 갈 게 뻔 해요.“
""
.......
"저 지각도 안 하고, 방학 전 며 칠 안 나온 것 빼고 학교 빠진 적도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딱 이 정도까지만 할 수 있어요.수학여행은 진짜로 안 갈래요. ”
선생님은 잠시 희찬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하지만대신학교는나와야해 수학여행안간다고집에서쉬는거아냐.평 소와 똑같은 시간에 학교 와서 자율학습 할 거야. 알았지?"
"네.“
희찬은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돌아서기 전에 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희찬아. 시장에서 일하는 게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해.시장 일을 안 해도 네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방법은 있어. 같이 찾아보자.응?"
-18과 1/2- 139 / 181
네, 답은 했으나 교무실을 나오는 희찬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장에서 꼭 일해야 했 댜 이 힘든 일만이 자신을 엇나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희찬이 시 장에서 일하는 걸 싫어했다.큰아버지와 전화로 싸우는 소리도 들었다.그러나 엄마도 희찬의한마디엔아무말도못했다.
까출보다는 낫잖아요?'
희찬의 가출이 엄마에겐 정말로 충격이었던 것 같다.경찰에도 신고하고 매일 아침 부터 밤까지 찾으러 다녔다니 엄마에게는 끔찍한 경험이었을지도. 그러나 아직은 엄 마를 위로할 여유가 희찬에게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학교 앞에 수많은 버스가 늘어 섰고, 2학년 아이들은 모두 수학여행을 떠났다.
희찬은 빈 교실로 둘어갔다.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으니 외롭기도 했지만, 굉장 히 편했다 학교가 매일 이러면 다닐 맛이 날 텐데.그러나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 이 열리고 다른 학생이 들어왔다.젠장, 수학여행 안 간 녀석이 또 있단 말이야? 몸을 보니 팔을 다쳤는지 깁스하고 있었다.
아쉽댜 혼자 보낼 수 있었는대 희찬은 엎어져서 잠을 청했댜 다음 날, 습관처럼 오 자마자 잠을 잤다.그런데 평소에는 그래도 선생님 눈치를 보며 졸다가 이젠 마음 편히 자는 탓인지 아주 깊게 폭 잤다. 정신 차리고 눈을 뜨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런데 대여섯 시간 잔 것처럼 개운했다.문제는 잠이 깨니 할 일이 없다는 것. 심심 했다 희찬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를 켰댜 채널을 돌리다가 마음에 드는 프로그
램에서 멈췄댜 때마침 방송에선 프로그램을 알리는 로고송이 나왔다.
'00시대 XXX, XXX입니다-'
시작하자마자 홍겨운 트로트가 나왔다. 그래, 역시 가창력은 트로트 가수가 최고지.
감탄하며들었댜그리고사연코너가시작됐다.
'네,공감 사연 시간입니댜 여러분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시간이 죠 하소연도 좋고, 위로받고 싶은 얘기 혹은 기분 좋은 얘기도 괜찮으니 올려주세요. 오늘의 사연은.......'
-18과 1/2- 140 / 181
여성 디제이가 푸근한 목소리로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희찬은 창밖을 보며 한 70 대 아주머니가 보낸 사연을 들었다.아주머니는 20살에 고작 얼굴 한 번 본 남자에게 시집오게 됐댜 그리고 그녀가 아이 셋을 낳을 동안 남편은 집에 생활비 한 푼 가져다 주지 않으며 부인을 구박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첫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남편이 다른 살림을 차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남편의 폭력은 더 심해진 것도 모자라 집의 재산을 모두 팔아먹기 시작했다고. 하다못해 선산까지 팔아 버렸단댜
희찬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울분을 삼켰다. 씨발,남편 개새끼! 애가 셋이나 있는 데, 부인이 돈도 다 버는데 새로운 여자한테 빠져서 선산까지 팔아 처먹었다고?! 선산 이 원데?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기구한 인생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당시에 이혼하지 못했 댜 그러나 남남처럼 십몇 년 넘게 안 보고 지낸 남편이 어느 날 찾아왔단다. 암에 걸렸 던 거댜 이런죽일 놈!죽을 때가 돼서야 찾아오다니.그것도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 어서 기어들어온 것이댜 아주머니는 그가 가여웠단다.
그러나 자식들의 반대에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당연하지! 다행히 사연은 해피 엔딩이었다감동이었댜그래,이런놈은결국천벌을받게돼있어.나쁜짓을하면 벌 받는 거야.입가에 참을 수없는웃음이 감돌았다. 라디오에선 사연이 끝나고 신청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노래가 흘렀다.100세 할머니도 비보잉 하게 할 신명나는 트로트였
명곡이었다 참 알찬 방송이었다 내일 또 들어야지.그렇게 학교에서 유익한 시간 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반에 다른 한 명이 더 왔다.희찬도 아는 사람이었다.어? 우 리 반이잖아. 그러고 보니 녀석은 수학여행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교에 나오 지 않았었다.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많이 슬픈 것 같았다. 안됐네.생각하며 또 잤다. 그리고 마X
막 날.이날은 졸린데 억지로 일어나 라디오를 들었다.오늘은 또 무슨 사연이 나오려
나 기대하는데 신청자는 30대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라디오에 자기 할머니를 소개한
-18과 1/2- 141 / 181
다고 했댜 태어날 때부터 같이 생활했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셔서 할머니가 그녀를 키 웠다고.
할머니랑 한방을 쓰면서 싸우기도많이 싸웠다고 한다. 어릴 땐 자기 방이 없고 할 머니랑 같은 방을 쓰는 게 너무싫어서 울기도 했는데 지금은 서울에 혼자 생활하면서 할머니가 그립고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리고 디제이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제가 하는 일을 항상 응원해주셨죠.저의 가장 큰 지원자셨어요.그런 할 머니는 2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좋아하시던 프로를 보면 항상 눈물이 먼저 납니다.이 라디오 프로그램도 할머니가 아주 좋아하셨죠.'
세상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찡하게 가슴이 울렸다. 할머니 100살까지 사시지.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셔서 손녀를 슬프게 한단 말인가? 희찬도 슬폈다.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시선을 돌리다가 무표정하게 있는 우민재를 봤다.맞다, 저 녀석도 할아버지 가 돌아가셨지.
순간 그가 라디오 사연 속의 손녀로 보였다. 얼마나 슬플까? 그는 휴대폰의 작은 화 면으로 원가를 보고 있었다. 얼핏 보니 운동 경기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을 잊으려고 저러는구나. 안타까웠다• 할아버지도 저 녀석을 응원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시합에서 이겨도 기뻐해 줄 할아버지는 없겠지. 그때, 시선을 느꼈는지 우민재가 눈을 들었다. 그는 희찬을 뻔히 보며 귀의 이어폰을 뺐다. 마치 월 봐? 하는 듯한 태도에 희찬은 입을 열었댜 할아버지 대신 응원해주고 싶었다. 짜식, 운동 열심 히 해라
"야, 넌 100살까지 그 운동이나 하고 살아라. ”
100살까지 이 운동이나 하고 살라니. 우민재는 빡쳤다. 가뜩이나 운동 때문에 할아 버지가 그런 유언을 남기고, 친척들의 욕을 먹어 짜증이 나는데 뭐라고? 저 자식이 시 비를거는건가싶어한판붙을생각으로주먹을쥐었다.그러나권희찬은그말만 하
-18과 1/2- 142 / 181
곤몸을 틀어 엎드려 잠들어버렸다.
자는 녀석을 깨워 싸울까도 싶었으나 이내 허탈해져서 돌아앉았다. 화난 기분을 남 에게풀고싶진않았다.다만,권희찬은이순간이후 그에게재수없는자식으로각인 되었다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기필코 서른 넘어서도 이 운동을 하고야 말리라, 굳은 다짐을 하면서.
-18과 1/2- 143 / 181
-연애의 반쪽-
내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지나간 일은 빨리 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무리 영화에 나 나을 법한 기막힌 일이라도 말이다.
'사장 형은 진짜 대단해요.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나 같으면 방송에 제보하고, 막 인터넷에 경험담 을리고 난리를 쳤을 텐데.'
그런 귀찮은 일을 뭐 하러?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텐데.나도 택인이 몸에서 생활했 던 게 벌써 꿈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 잘됐으니 상관없었다.중요한 건 휴가였다. 남 들에게는 말 못 할 기막힌 일도 있었고, 고생도 했기에 이번 휴가는 특별했다.물론 아 무것도 안 하고,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며 보내겠다는 알찬 계획은 첫날부터 깨졌지만 말01다.
우민재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자식.녀석이 새벽에 가게에 둘이닥쳐서 말했다.보고 싶었다고.내가 다시 택인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떨리고 얼굴로 열이 몰렸다. 그리고 깨달았다.나도 저 녀석 좋아하나 봐.여기까진 문제 될 게 없다.저 녀석도 날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실제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해 안 되는 것 같은데 나 너 좋아한다는 뜻이야.”
이해가 안 되긴. 나도 알아.내가 답하자 그가 진지한 눈으로 쳐다봤다.
"주먹 안 날려?"
주먹을왜?......아,싫으면 난주먹날릴거라고했지.전에한얘기가떠올라그저어
깨를 으쓱했다.
I'날리기 싫어.”
"
"
-연애의 반쪽- 144 / 181
"왜인지 안 물어봐?"
안 물어보면 내가 말해주려고 했다.나도 너 좋아하는 거 같다.아니 좋아하는 게 확 실하댜 이건 택인이 반응과 같으니......·
“그럴 줄 알았어.”
"뭐가? 내가 너 좋아할 줄 알았다고?"
“아니.네가 착각할 줄 알았어.”
착각?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보니 녀석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넌 날좋아하는 택인이 반응을 그대로 느꼈잖아.날볼 때마다 심장이 떨리고 두근 거리는 걸 한 달 넘게 경험했어.그러니 충분히 착각할 수 있어.”
"무슨 헛소리야? 내가 택인이 몸에서 나온 게 언제인데? 게다가 내가 등신같이 남 의 반응을 그대로 따라 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럴 수도 있지.” 울킥했다
''씨발, 좋아한다는데도 왜 지랄이야?! 너도 나 좋아한다며? 그럼 잘됐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 가짜로 생각하냐?"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건 너랑 섹스하고 싶다는 뜻이야.”
뭐? 색.....스.....랴
"너랑 키스하고 싶어.당장 호텔로 데려가서 너랑 팅굴고 싶어.너도 그래?"
“대답 못 하겠지? 넌 아직 진심이 아니야.남자는 마음으로 사랑하면 몸도 반응하잖
II
-연애의 반쪽- 145 / 181
o�."
””
“나도 사람이라 네가 날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만 네가 불확실한 감정으 로 말하는 건싫어. ”
녀석은 딱 잘라 말하곤날 보며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난 너에 대한 욕심이 아주 커. 운동보다 네 옆에 있는 걸 택할 정도로. 앞으로 천천 히,공들여서 네가 날 떠나지 못하게 할 거야. ”
천천히,공들여서라.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감정이 실제 내 감정인가 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상하게도 이건 그 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싶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녀석에 겐 끝까지 말할 수 없던 답 때문이다. 그가 섹스라고 말한 순간 녀석의 나체 동영상이 떠올랐다는 걸 어찌 말하겠는가? 그리고 그게 나한테는 큰 문제가 됐다.
휴가의 첫날은 친구의 생일로 맞이했다. 모처럼 모여 술을 마셨다. 다들 나이 먹고 바쁘니전처럼 자주는 못 만나지만,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했다. 한 명이 아직 안 왔지만, 셋은 이미 술판을 벌이며 서로의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말이 제일많은 건 일찍 결혼해서 벌써 애가 3살인 철환이. 그는통금 시간인 12시 안에 들어가야 해서 빨리 마시고, 빨리 말하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와 지홍이 는 술집에 들어온 이후 입도 뻥끗 못 했다.
"야, 니들 생각해봐.이게 말이 되냐? 50만 원짜리 동화책 세트를 사는 건 괜찮고, 4 만 8천 원짜리 로봇은 안 된다니? 애가 그렇게 갖고 싶다는데, 내가 사주겠다고 약속 했는데! 난 뭐가 되느냐고!"
철환이 부인이 비싼 동화책 세트를 샀던가 보다.
-연애의 반쪽- 146 / 181
"물론 나처럼 동화 신동이 되는 건 좋지. 니들도 알지? 내가 동화엔 빠삭한 거?"
알지. 우리는 인정할 건 인정해준다.
"내가 사자성어를 잡았다면 넌 동화를 잡았지. ”
"바로그거야.하지만 다섯살에권태기가와서손을놓을줄누가알았겠냐.내아 들도 그러지 말란 법 있어?"
"없지. 요새 애들이 얼마나 조숙한데.”
지홍이가 수긍하며 덧붙였다.
“그래도 이미 샀다며? 산 거 그냥 읽혀. 넌 와이프가 한 일 가지고 뭐 그리 쫑알쫑알 뒷말이많아?"
”로봇을 안 사주니까 그렇지?!"
철환이가억울한듯소리쳤다.이쯤되니로봇을가지고싶던 건저자식이아닌가 의심스러웠댜 난 결론 안 날 것 같은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야, 로봇 내가 사줄게. 그럼 되잖아? 어?"
”됐어. 권희찬. 내 아들 장난감은 내가 사줄 수 있어. ”
"누가 너 거지라서 사준대? 조카한테 장난감 한번 못 사준 삼촌이라 그런다. 무슨 로봇인지 사진 찍어서 보내. 그럼 내가....... ”
그때였댜 지홍이가 내 말에 끼어든 건.
“그래, 나도 보탤게. ”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와 철환이는 귀 를 의심했다. ”뭘 보태? 야, 심철환. 저놈이 지금 보탠다고 했어?"
“아니.환청이야, 무시해.”
-연애의 반쪽-
147 / 181
그러나 철환이의 확인에 지홍이가 또 한 번 환청을 들려줬다.
“나도 보탠다니까. 딱 반절 보탤게. 2만 3천 원.”
반절이라며 천 원을 깎는 헛수작을 부리는 걸 보니 이지홍이 맞았다. ''닥쳐 보내려면 2만 4천 원 다 보내. ”
"하지만 수수료....... ”
"너 수수료무료통장쓰는거다알아.”
지홍이가 분하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저 반응을 보면 분명히 제정신에 하는 소 리인데? 하지만 짠돌이 이지홍이 돈을 내다니? 난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쳐다봤고, 철 환이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무슨 짓 했어?"
"무슨 짓은. 아무 짓도 안 했어. ”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네가 왜 갑자기 그런 큰돈을 쓰려는데?"
"뭐, 큰돈이긴 하지만. ”
하지만? 우리는 뒤에 나을 답을 들으려고 귀를 세웠다.그런데 답보다 먼저 지홍이 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댜 녀석이 주체를 못 하며 입술을 씰록거렸다.뭐야, 저 기분 나 쁜 표정은?
”로또라도 됐냐?"
묻는 나와 달리 철환이는 진짜 이유를 찾았는지 눈을 부릅떴다.
"너 연애하는구나!"
연애?! 핵 , 고개를 들려보니 이지홍의 얼굴에웃음꽃이 만발했다.그러며 입으론 이 렇게 말했다
-연애의 반쪽- 148 / 181
"연애는 무슨......• 그냥 뭐, 고백했는데 상대도 알았다고 한 것뿐이야. ”
“그게 연애잖아"
“그렇지? 그런 거지?"
그걸 우리한테 왜 물어.녀석은 어지간히 좋은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난 진짜 거절당할 각오로 말했거든. 인기도많아서 설마 그쪽도 날 좋아할 줄은 몰 랐지.“
녀석은 부끄러워했다 우리는 닭살이 돋았댜 나와 철환이는 동시에 안주로 나온 뻥 튀기를 던졌댜
''씨바, 재수 없게 누구 앞에서 얼굴을 붉혀?"
"당장 그 능글맞은웃음을 집어치우지 못할까?"
그러나 우리의 구박에도 지홍이는 헤벌쭉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언제 고백했는데 그래?"
"어젯밤에.”
지홍이가 다시 쑥스러워했다. 죽이고 싶었다. 대체 고백한 게 뭐가 좋다고 저렇 게....... 아, 맞댜 그러고 보니 나도 새벽에 고백받고, 고백했지. 우민재가 담담한 목소 리로 한 말이 떠올랐다.
'보고 싶었어.'
아우 씨발, 또 존나 떨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입가에 배시시웃음이 나오려고 했 댜 그러나 구박받는 지홍이를 보고 겨우 참았다 술을 마시며 입가를 가리는데 철환이 의 충고가들렸다.
"너 이번엔잘해.돈좀쓰란말이야.또쪼잔하게몇백원아끼려다가차이지말고.”
”이번엔 아니야. 절대 안 그래. 진짜 좋단 말이야.”
-연애의 반쪽- 149 / 181
놀라웠댜 우리한테 온갖 구박을 당하면서도 투철한 절약 정신을 놓지 않던 녀석인 데.
“그래, 이번 기회에 쪼잔함은 완전히 뜯어고쳐라.” 그러나 내 말에 지홍이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고칠 건데? 내가 왜 고쳐?"
"진짜 좋아한다며?"
"응 그래서 그런 척하려고.처음엔 꼬셔야 하니까 열심히 돈 쓸 거야.”
"야, 이 사기꾼아.”
내가 기가 막혀 한마디 했는데 옆에서 안주 주워 먹던 철환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이건 사기가 아냐.희찬이 넌 연애 경험이 적어서 모르지만, 원래 처음엔 다 내 사람 만들려고 평소에 안 하던 짓 하고 그래.그게 일부러 작정하고 속이려는 게 아 니고,그 사람이 아주 좋으니까 저절로 막 그렇게 되는 거야.”
“그럼 계속 그렇게 가야지.나중에 원래로 돌아오면 그게 사기지, 아니냐?"
''또 꽉 막힌 권 사장 나오셨구먼.”
철환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아직 제대로 된 연애 안 해봐서 몰라.상대가 날 좋아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L|}}|?”
맞아, 맞아 지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좋아하는 여자 있으면 알 거다.”
"여자는 없지만 남자는 있어.”
정적이 흘렀댜 안주 먹던 철환이는 동작을 멈췄고, 지홍이는 반쯤 입을 벌린 채 굳
-연애의 반쪽- 150 / 181
었댜 한참 뒤 지홍이가 철환이에게 물었댜
"야, 지금 희찬이가 뭐라고 한 거냐? 좋아하는 남자?"
“아니. 환청이야. 오늘 이 가게 공기가 탁한가 보다. 왜 이렇게 헛소리가 자주 들 려?"
헛소리 아니야. 한마디 해주고 술을 한모금 마시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가 남자랑 사귀는 게 역겨운 놈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 역겨운 놈 얼 굴 다신 안 보게 해줄 테니까. ”
II......야.”
지홍이가 날 부르곤 침을 꿀꺽 삼켰다.
''씨발, 누가 역겹대? 그냥 놀라서 그렇지. 안 그래, 철환아?"
그러나 철환이는 경악한 눈으로 날 보며 답을 못 했다. 역시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녀석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입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
왔다.
"난 반대야!"
"네가 반대해봤자, 이미 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 .... ” "남수는안돼!"
''씨바, 친구 두 놈이 그렇고 그런 짓 하는 꼴은 내가 절대로 못 봐!"
"무슨 소리야? 내가 왜 한남수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해야 하는데?!"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으나 우린 목소리를 낮출 생각이 없 었댜 남수라니? 한남수라니!
-연애의 반쪽- 151 / 181
”?.
뭐”
"너 미쳤어? 여기서 난데없이 한남수가 왜 나와?!"
"왜 나오긴?! 그야 남수는 게이니까!"
금요일 저녁, 여유롭게 맥주 한잔하려고 00 호프에 모였던 10명 남짓의 시민은 남 수가 게이라는 정보를 얻었다.이미 알던 난 놀라서 되물었다.
"어? 너 한남수 게이인 거 알고 있었어?"
"네 상대가 남수 새끼 아냐?"
''씨발, 무슨 소리야?! 내가 친구랑 팅굴 놈으로 보여?!" “아니면 됐어!"
철환이는 화끈하게 받아들이곤 자리에 앉아 다시 먹다가 만 안주에 젓가락을 옮겼 댜
"와, 싸 그런데 너도 게이였다니.어떻게 네 놈 중에 둘이 게이냐고.”
지홍이의 말에 난 녀석에게도 물었다.너도 알고 있었어?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다만 몰랐지, 나랑 철환이는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어.하지만 넌, 와, 진짜 기가 막힌댜"
뭐, 나도 기가 막히니까.
“대체 언제부터 사귀는데?"
사귄댜..... 질문을 들으니 다시 열이 받았댜 우민재 이 자식, 뭐? 난 내 마음을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새벽에 좋아한다는 고백 받았는데 나도 좋다니까 난 좀 더 생각해보라더라 젠장.”
”왜?”
-연애의 반쪽- 152 / 181
“그게 택인이.......뭐, 좀 오해할 만한 사건이 있는데 아무튼 자기는 확실한 게 좋으 니까 아직은 못 믿겠대.”
“그럼 안 사귄다는 거야?"
''확실히 자길 못 떠나게 만들겠대.천천히.공들여서. ” 둘은 잠시 눈을 끔벅이다가 감탄을 내뱉었다. “오을- 센데?"
”이야, 너한테 선전포고할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놈인 거야?"
대단한 놈은 무슨.
“그냥 재수 없는 놈이야. ”
"하지만 넌 그 재수 없는 놈이 좋은 거잖아. ”
”응.“
둘은 또 말없이 날 봤다. 그리고 철환이는 내 어깨만 툭툭. 지홍이는 빈 잔에 술을 따 라줬댜
"축하한다 네가 드디어 지옥 같은 연애의 세계에 들어왔구나. ” “그래, 너 도 연애의 불구덩이에서 몸부림칠 때도 됐지. ”
난 둘을 보며 내 감상을전했다.
’'
웃기는 소리 마. 연애가 뭐 별거냐?"
"푸하하하-- 별거래, 별거.”
“아이고, 권 사장님 별거 아닌 연애에 피눈물 쏟아봐야 정신 차리지?"
난 둘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의 반쪽-
153 / 181
“대체 뭐가 문제인데? 서로 좋아하면 끝이잖아"
"안 끝이거든요? 전혀 아니거든요? 처음엔 좋지.행복하지.막 생각만 해도 들뜨고, 기분 좋을걸? 그런데 말이야, 사랑이라는 건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걸로만 가득차는게아냐.”
오랜 연애 후 결혼한 철환이가 그렇게 강의를 시작했다.
“사랑의 크기만큼 불안감도 커지고,실망도 커져. 너 지홍이가 몇백 원으로 쪼잔하 게 굴면 짜증 나지? 하지만, 그걸로 끝이잖아.그런데 지홍이를 좋아한다면 실망이 몇 십 배는 커지는 거야.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런 끔찍한 짓을?! 게다가 사랑하면 질투 도 함께 따라와.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누구랑 있는지, 혹시 다른 여자, 남자랑 같이 있 다는 걸 알면 막 불안한 거지.그 사람이 우리 자기한테 반하면 어쩌지? 막 이러면서 간섭과 감시를 하게 돼.연애는 이렇게 복잡한 거야.”
그런7�?
"연애는 사랑이 100%가 아니야. 물론 다들 처음엔 100%로 시작하지. 하지만 점 점 사랑의 크기만큼 다른 게 채워져.사랑은 반이고, 나머지가 반이 되는 거야.”
"다른거뭐?"
“사람마다 다르지.질투일 수도 있고, 실망일 수도 있고.물론 사랑이 100%인 사람 도 있겠지.바람둥이들.”
”에이, 그건 아니마'
자신의 사랑이 100%라 믿는 지홍이가 고개를 저었으나 철환이는 강력하게 자신 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야, 진짜 아무것도 상관 안 하고 오직 사랑만 보잖아? 그럼 사랑이 조금만 식어도 뒤도 안들아보고 떠나. 하지만 넌 안 그럴 거잖아? 만나면서 처음보다는 심장이 쿵광 대는게줄었다고해도계속만날거잖아?"
"당연하지.“
-연애의 반쪽- 154 / 181
"바로 그거야. 연애는 사랑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야. 만약 남은 50%가 희생이면 호구가 되는 거고,집착은 스토커, 의리는 결혼이 되는 거지. 내가 그래서 결혼했잖아. 의리 50%로 그런데 결혼하니 의리가 한 90%까지 늘어나더라.”
"네 부인은 99%일 거다"
"야, 그걸 농담이라고.......”
웃으며 반박하던 철환이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사실인가 보다. 녀석이 고개를 들리 며 입술을 깨물자 지홍이가 다독여줬다.
“괜찮아.네 사랑이 더 크잖아.”
''씨바, 난 평생 패배자야. ”
월 또 패배자까지.내가 코웃음을 치자 철환이가 도끼눈을 떴다.
"야, 연애나 결혼이나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야. 연애의 목적이 뭔데? 바로 사랑 을 쟁취하는 거잖아.상대가 날 더 사랑하도록 열심히 꼬셔서 승리하는 거라고. 연애는 싸움01야!"
승리? 싸움? 하긴 상대가 날더 좋아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맞아. 나도 빨리 상대가 날더 좋아하길 바라며 열심히 돈을 쓸 생각이야.이건 일 종의 투자지?
좋아죽는 녀석의 표정을 보니 평생 투자만 하다 끝날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사랑 에 대한 목표는 똑같아 보였다• 승리라. 그럼 우민재의 목적도 내가 자신을 더 사랑하 게 만들려는 건가?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절대 질 수 없어. 난전의를 불태우며 술을 벌 킥 들이켰다.가뜩이나 이미 난 녀석의 거시기가 얼마나 큰지 알아서 패배자처럼 느껴 지는데 말이댜 난 광, 소주잔을 내려놓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나 아는 사람이 게이인데 고민이 있거든? 니들 한번 들어봐. ”
"너 아는 사람? 갑자기 뭐야, 너 게이 월드에 발이라도 담갔냐? 씨바,네가 남자랑 사귀는 건 봐주지만, 우리까지 그 세계에 끌어들이진 마라. ”
-연애의 반쪽- 155 / 181
"걱정 마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해도 내쫓을 테니까. ”
“그래서 무슨 고민인데?"
그게 좀. 나는 말하기가 어려워서 운만 떼고 술잔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전 애인하고 키스하는 동영상을 봐버렸대. 옷도 다 벗고.”
”헉! 모텔 몰카에 걸린 거야?"
“아니면 자기들끼리 찍었나?"
둘은 경악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추측을 해댔다.
’' 둘 다 아니야,새끼들아.전 애인이 몰래 찍었대.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나 아는 사람이 그 동영상을 보고 기분이 좀 그렇대.”
"당연히 안 좋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남하고 붙어있는데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냐? 그래서,그것 때문에 상대가 거북하대?"
“아니.“
“아니야? 기분 나쁘다며?"
"응.그런데 다른 사람하고 한 것 때문에 기분 나쁜 건 아냐.전 애인이잖아. 이미 끝 난 일인데 기분 나쁠 게 어디 있어?"
“그럼 뭐가 기분 나쁜데?"
뭐가 기분 더럽냐면 말이야,바로.
"동영상을 본 이후로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자기가...... 깔리는 쪽만 상상이 된 대.“
-,.
"등�I"
”이런!"
-연애의 반쪽- 156 / 181

-- .
역시나 둘 다 경악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내가 안타까웠다. 씨바,내 가 왜 박히는 쪽이냐고?! 그러나 떠오르는 건 박는 우민재뿐이다. 아무리 내가 우민재 를 뒤집고 넣는 상상을 해보려고 하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내가,내가......·
난 다시 소주를 벌킥 들이켰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동영상 때문이다. 우민재 이 자 식은 왜 그렇게 다 커서는. 덩치도 크고 거시기도 커서 상대를 압도하니까 도저히 내가 그를 이끄는 상상이 되질 않는다. 분노하는 나를 친구 둘이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런데 네 친구 일을 네가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데? 너 혹시. ” 홈칫. 난 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긴장했다. 혹시라니?
“그거 남수 얘기 아냐?! 어? 맞지?!"
II... ... 아니야, 바보야. ”
“아냐? 아니면 말고. ”
철환이는 쿨하게 포기하고 충고를 덧붙였다.
“그리고 네 친구는 그냥 받아들이라고 해. 혹시 알아? 해보면 적성에 맞을지?" ''맞긴 뭐가 맞아? 그 새끼가 얼마나 큰 말자... .... ”
난 나오려던 말을 겨우 삼키며 다시 술만 들이켰다. 안 된다. 내가 박히는 쪽이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지만, 미리부터 아플 거라며 겁먹는 건 더 안 된다. 왜냐면 그럴 일 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발악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우민재의 품에 얌전히 안기는 내 모습이었다. 거대한 나체가 날 옥죄며 두 손으로 내 몸을 만지는 상상. 그리 고 이게 묘하게 흥분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야, 야, 네 친구한테 포기하라고 해. 상대한테 깔리는 것만 생각나면 딱 그거네, 뭐. ” "원데?"
“그쪽으로 타고난 거지. ”
-연애의 반쪽- 157 / 181
"어쩔 수 없다니까. 본인만 인정하면 끝이네.”
“아니거든! 아니야!"
난 강하게 부정하며 술을 연거푸 마셨다. 둘은 날 보며 친구의 고통을 함께하는 진 정한 우정이라며 흐뭇해했다.
"야, 혼자만 처마시지 말고 건배하자. 이 잔만 마시고 내가 잘 가는 가게로 2차 가
天�."
그래, 건베 셋 다 잔을 들고 짠 부딪쳤다 그리고 순간 난 원가 허전함을 느꼈댜 잠 깐, 우리가 오늘 왜 모였지?
"야, 원가 빠진 것 같은데?"
"빠지긴 뭐가 빠져? 우리 다 있잖아. 이렇게 너, 나, 철환이..... 응?" “하나¢.I "
마지막 철환이가 외치며 우린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씨팔! 오늘 남수 생 일이어서 모였잖아!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남수가 일이 늦게 끝난다고 해 서 우리 먼저 이곳에모여 술을 마시던 참이었다. 남수를 만나면 본격적인 2차를 가기 로 했고. 남수가 지금 홀로 외로이 기다릴 어느 술집에서 말이다.
”이 새끼는 왜 전화를 안 해?!”
누군가 불만을 터트렸고 우리는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부재중전화 1통. 헉! 놀라서 다시 보니 남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안심하는 것도 잠시, 부재중전화에 찍 힌 사람을 보고 긴장했다. 우민재였다. 내가 휴대폰을 한참 보고 있자 지홍이가 다가와 힐끗봤다.
"남수한테 전화 왔었어? 아니네? 개부처? 하하, 개부처는 누구야?"
L... CJT·
-연애의 반쪽- 158 / 181
“그냥 재수 없는......”
아까 술 마실 때도 했던 말이 이번엔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휴대폰에 뜬 별명에 대 고 재수 없다고 하는 건 본인한테 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랬다. 그저 휴대폰에 뜬 우민 재의 별명을 찌푸린 눈으로 보는데 옆에서 지홍이가 깐죽거렸다.
"재수 없어? 얼마나 재수 없는데? 개재수 없나 보지? 하하-"
“아냐. ”
“아냐? 그럼 중간 재수?"
"0�."
11.g?" 근·
" 너 재 수 없 어 .”
그때 가게 안을 정찰하러 갔던 철환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빨리 와 안에 남수 없어. 가게 주인한테 지금 바로 세팅해달라고 했으니까, 니들도 한 시간전에 와서 술 마시고 기다린 척해. 알았지?"
“먼저 들어갸 나전화 좀 하고. ”
난 아직 충격받은 지홍이를 철환이와 함께 가게로 밀어 넣고 가게 옆쪽 좀 어두운 골목에 서서 휴대폰을 켰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데 은근히 긴장됐다. 흠흠. 괜히 목소 리를 가다듬는데 우민재의 음성이 들렸다.
「 근O . 」
"왜 전화했는데?"
나도 모르게전투적인 목소리가 나왔다.그냥 가볍게 '전화했네?' 물으면 될것을, 이건 시비 거는 투잖아. 그런데 녀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가벼운웃음소리가 들렸다.
-연애의 반쪽- 159 / 181

--·
JI
휴대폰 너 머로 낮고 짧게 흘렀지만, 기분이 좋은 소리였다. 그의 미소가 상상이 됐다•
"왜 웃어?"
“그냥은 또 뭐야? 왜 전화했는데?"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이번 그냥엔 핀잔을 줄 수 없었댜 난 소리 없이 침을 삼켰다.괜히 혀로 입술을 핥았 댜
「생일파 티 는 잘하고 있어?」
"주인공이 안 왔어.”
「나도 아는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응, 너 다니던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해.한남수라고.그런데 오후에 주로 일해서 넌 아마 못 봤을.......”
「키 177cm, 몸무게 85kg, 남자답게 생기고, 옆머리는 밀고 앞머리는 길어서 뒤로 왁스 발라 넘기는 헤어스타일.」
"어? 맞아.어떻게 알았어?"
「헬스장 트레이너 안내문에서 본적 있어.」
“그런데 키랑 몸무게를 정확히 기억해?"
「나 기억력 좋아.네가 고등학생 때 나한테 한 말도 정확히 기억해.」
"내가 너랑 말한 적이 있어?"
또 낮은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했다. 전이라면 비웃는다며 욕부터 튀 어나왔을 거 댜 그래야 정상인데 난 또 소리 없이 침을 삼켰다.녀석이 입가를 흰 채 짧은웃음을
「기L.t
O.
-연애의 반쪽- 160 / 181
짓곤고개를 소파에 편하게 기댈 모습이 그려졌다.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말했지 몇 번 안 되지만 혹시 네가 만난다는 친구들 어릴 때부터 친구야?」 "응. 중학생부터 어울리던 놈들이지. 나까지 네 명. ”
「홈,그렇군.」
녀석의 말투는 왠지 내 친구들을 안다는 듯 들렸다. 하지만 만났을 리가 없잖아. "뭐 하고 있었어?"
「궁금해?」
"궁금하긴 너 무안할까 봐 예의상 물었댜"
녀석이 또 짧게웃었다룬망. 심장이 이상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자주웃어? 「책 읽고 있었어.」
"책? 또 추리소설?"
난 녀석의 숙소 곳곳에 놓여있던 책을 떠올렸다.표지마다 칼과 시뻘건 피가 등장하 는책들
「응, 맞아.」
"재□I있어?" 「별로.」
"별로인데 왜 봐?" 「끝이 궁금해서.」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랑 보던 드라마도 끝이 궁금해서 본다고 했었지. 그렇게 궁 금하면 끝을 먼저 보면 될텐데? 내뱉으려다가 참았다. 이 방법은 왠지 우민재와 어울 리지 않았댜
-연애의 반쪽- 161 / 181
“그럼 짐은 다 풀었겠네.”
「응 정리도 다 하고.」
"무슨 정리?"
「운동에 대한 거.미련 생기기전에 눈앞에서 치워버렸어.」
"야, 너 다시 생각....”
「나 지금 홀가분해.」
""
「계기는 너였지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전부터 했어.운동이 좋지만, 이게 단순 히 내 고집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거든.난 욕심이많아.단지 내가 정상에 서지 못해서 집착했을 수도 있어.걱정 마.하고 싶으면 네가 조기 축구 하는 것처럼 취미로 하면 돼.」
캐나다로 다시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난 한 번 더 권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에선 나오지 않았다.보내기 싫었다.안 간다니까 사실 아주 좋았다.되게 좋았다.
"야, 취미라도 우리 유기농 회원들은 다들 목숨 걸고 해.”
「이미 몸으로 느꼈어.그래서 지금 어디야?」
"여기? 네 헬스장 근처에 있는 xx란 술집인데.......”
응? 난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술집의 2차선 도로 건너편에 익숙한 형체가 눈에 띄었댜 오늘의 주인공 남수였댜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댜 키가 비슷한 어떤 남 자와 있는데 마치 싸우듯 서로 어깨를 밀치거나 옷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야, 끊어봐 한남수 싸운댜'’
「권희찬.함부로 끼어들지 마」
-연애의 반쪽- 162 / 181
단호한 충고가 들렸다. 아마도 내가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 주먹을 쓸 줄 알았나 보 댜 대체 날 뭐로 보고? 한남수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데.
"안 끼어들어. 구경하러 가는 거야?
전화를 끊고 남수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곤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선 철환 이와 지홍이가 한 시간 동안 먹은 흔적을 만들려고 소주로 병나발을 불며 안주를 흡입 하고 있었다
"야, 그만 처먹고 나와 봐. ”
''권희찬 넌 왜 이제 와? 씨바,배 터져죽겠는데 우리가 지금 얼마나 노력하며 미리 와있던 척을 하려고....... ”
''빈 술병 얻어서 갖다 놓으면 되잖아. ”
움짤 둘이 마시던 술을 멈추고 날 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원망하는 바보들의 눈 빛을 무시하며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한남수 싸운다. ”
둘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댜 그리고 우리 셋은 신이 나서 싸움 구경하러 갔다. 동영 상 찍을까? 상대가 너무 밀리면 남수의 약점은 머리채를 잡는 거라고 알려줄까? 헤어 스타일에 목숨 거는 남수가 이번에도 울까? 등등 온갖 기대를 하며 남수의 근처까지 갔으나 기대한 주먹다짐은 없었다.
"어딜 가! 꺼지라고, 씨발아!"
남수가 상대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그러나 상대는 이를 악물며 남수를 매 단 채 앞으로 가려고 했다.
"내가 가면 왜 안 되는데? 너 친구 만난다며? 그런데 내가 가면 왜 안 돼? 너 내가 부끄러워? 아아- 그러시겠지. 내가 못생겨서 부끄럽지?! 이 씨발 새끼야! 나 오늘 네 친구들 앞에서 다 까발릴 거야. 네가 나하고 1년 넘게 자면서 됭군 거 다 알릴 거라고!"
타닥, 타닥,타닥.우리 셋은 동시에 뒤로 발을 뺐다. 그리고 얼른 눈에 띄지 않는 어
-연애의 반쪽- 163 / 181
둠 속에 몸을 숨겼다.
"저거...... 사랑싸움이야?"
“그런 것 같은데. 희찬이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확실하댜 사랑싸움이댜 난 누구보다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댜 그리고 상대도 누구 인지 짐작이 갔댜 신경 쓰이는 섹스파트너 라던 사람이 저 사람인가 보다.
"저 사람 빡친 거 같은데. 남수가 못생겼다고 말했나 봐. ”
"설마 아무리 예쁜 걸 좋아하는 남수라도 대놓고 그런 말을 했겠냐?"
두 녀석의 대화에 바로 응답하듯 남수의 화난 음성이 들렸다.
''씨바, 이유? 이유는 내가 수백 번도 더 말했잖아. 너 못생겼다고!"
움짤 움짤 움짤 친구지만 부끄러웠댜 저 못돼먹은 것 좀 보게.
"남수 재는 너무 외모를 따져, 솔직히 남수가 우리 중에서 외모는 제일 떨어지잖 O杓"
"맞아. 자기는 스마트하다는데 난 그게 원 소리인 줄도 모르겠어. ”
"자기 얼굴이 TV같이 판판하단 소리인가 보지. ”
내 말에 둘은 날 영어 신동으로 봤다. 뭐, 내가 요새 영어를 좀 하지.
“그나저나 저 사람 상처받겠는걸? 남수 새끼 지가 뭐라고 저렇게 남한테 못생겼다 고 구박을....... ”
그때 티격태격 난 가겠다, 안 가겠다 승강이를 벌이던 남자가 남수의 팔을 확 뿌리 쳤다.
"홍 네가 나한테 못생겼다고 해봤자, 난 하나도 상처 안 받아!" 왠지 둘 다 재수 없었댜 남자의 높아진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연애의 반쪽- 164 / 181
“그래 봤자,너 밤에는 나 때문에 좋아죽잖아? 아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하하 - 거봐! 너 아무 말도 못 하잖아!"
우리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 철환이가 겨우 해결책을 제시했다.
"야, 술이나 마시자.”
“그래.“
”응.“
그렇게 술집에 둘어와 다들 어색한 침묵 속에 술을 마실 때, 드디어 남수가 들어왔 댜 씩씩거리며 혼자 들어오는 걸 보니 섹스파트너는 떼어놓고 오는 데 성공한 것 같았 댜 녀석은 오자마자 소주를 병째 들어 꿀꺽꿀꺽 마시곤탁, 내려놨다.
”에이 싸 여기 소주 두 병, 아니 다섯 병 더 주세요.”
남수의 주문을 보며 우리 셋은 조용히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졌다. 젠장. 내가 또 저 새끼 뒤처리 담당을 해야 한다니. 얼굴이 일그러진 나와 달리 둘은 안도의 표정으로 여유롭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의리 없는 두 놈이 먼저 가버리고 난 무거운 남수를 둘러업고 길가로 나왔다.그리
고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를 살피는데 갑자기 등에 있던 남수의 무게가 쑥 하고 사라졌
댜 어? 뭐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우민재가 남수의 겨드랑이에 팔을 껴서 몸을 받치 고 있었댜
"야, 너 어떻게.......”
”가자"
그는 내가 물어볼 사이도 없이 근처에 있던 차로 데려갔다.그가 뒷좌석에 무거운 남수를 가볍게 밀어 넣자 난 인사불성 된 놈의 옆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서 생각하니
-연애의 반쪽- 165 / 181
이 차는 승차감이 끝내주던 비싼 차잖아? 난 얼른 남수가 토하면 받칠 걸 찾다가 급한 김에 티셔츠를 벗었다.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던 우민재가 날 들아봤다.
"뭐하는거야?"
”이 자식 토할지도 몰라.”
”됐어처야 청소하면 되지.옷 입어.”
"야, 태워준 건 고맙지만, 그 이상 빚지게 하지 마.”
낮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우민재는 날 보며 입술을 휘었다.이 상황에서 대체 왜 웃 지? 꿀꺽.난 또 간질거리는 심장을 무시하려고 눈을 찌푸렸다.그 사이 우민재는 차어 서 나가 트렁크에서 작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이거면 됐지? 이제 옷 입어.”
난 박스를 무릎 위에 올리고 티셔츠를 다시 뒤집어썼다. "너 좀전에 왜 웃었냐?"
" 글 쎄 .“
“나 그 말 되게싫거든?"
다시 씨익 이상했댜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우민재가 밉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빚지는 게 나을까, 내가 네 벗은 몸을 보다가 차 사고가 나는 게 나을 까, 고민이 돼서 웃었어.”
"내 몸이 어때서?"
“나한테는 걸어 다니는 야동이지.”
.......
lJ "
"흥분된다는 뜻이야.”
-연애의 반쪽-
166 / 181
그가 다시 피식웃었다.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웃는구먼.이건 까칠하고 무표 정하던 우민재와는 또 다른 무서움이었다.
"하긴.“
그와 백미러로 눈을 마주쳤다. 난 녀석만큼이나 씩 미소 지었다.웃음만큼은 나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좀 섹시하지.”
녀석이 정색했댜 뭐야, 내웃음은 안 먹혀? 기분 나빠할 때,녀석이 고개를 끄덕였 댜
"맞아.네가 신랑하진 않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섹시하다는데 신랑하진...... 응?
II三1 능 능능II 7...... E. EE.
색시와 신랑! 섹시하니까 신랑하냐니! 너무웃겼다.아 씨,웃겨! 목에서 꼭꾹 소리 나는 걸 겨우 참느라 얼굴에 힘을 줬다.예상치 못한 농담에 표정 관리하느라 바쁜데 녀석은 그런 날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불행히도웃음을 참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
"역시 아저씨 농담을 좋아하.......”
남수를 방에 눕히자마자,녀석이 '우욱' 하며 신호를 보내왔다.난 녀석을 끌며 패대 기치듯 욕실에 처넣었댜 그리고 한바탕전쟁을 치른 뒤 녀석을 데리고 다시 방으로 왔 댜 내가 머리카락을 움켜쥔 덕에 녀석의 자랑 1호인 완벽한 헤어스타일은 미친놈 산
발이 되어 방금 구토를 마친 녀석의 외모를 돋보이게 해줬다.
"서랍에서 티셔츠 좀 꺼내줘.”
-연애의 반쪽- 167 / 181
남수 옮기는 걸 도우려는 민재에게 다른 부탁을 했다.토한 얼굴을 씻기느라 남수의 상의는 완전히 물로 젖어버린 탓이었다.
”에이 씨!"
이 자식은 운동 때문에 술도 잘 안 마시는 놈인데.그런데 하필 마실 때마다 내가 뒤
처리하다니.저 번에는 술주정 때문에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더...... 응? "야! 두 번째 서랍은 열지! 마아.......II
열었댜 우민재는 두 번째 서랍 안을 보며 서있다가 날 돌아봤다.
""
II II
꿀꺽.
"야, 뭐...... 분홍색 딜도가 왜 거기 있나 의아하겠지만.....” ll 1:::::t 호새?”
고o -1 ·
"분홍색이 아냐?"
민재가 다시 서랍 안을 봤다.그리곤 구석에서 원가를 찾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색도 있네.”
분홍색도라니. 그럼 다른 색도 있어?! 우민재는 그리 충격이 아닌지 서랍에서 필요 한 옷을 꺼내곤 대수롭지 않게 닫았다.나는 녀석이 가져온 셔츠를 남수의 머리통에 넣 으려고 애쓰며 힐끗 쳐다봤다.
“사람마다 다 취향이 있으니까.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라.” “그런 생각 안 해 그런데 너.”
”왜?”
-연애의 반쪽- 168 / 181
"네 친구 머리를 팔 구멍에 넣고 있잖아.”
응? 이런 씨.......어쩐지 잘 안 들어간다 했어.난 투덜거리며 다시 녀석의 머리카락 을 움켜잡고 팔 구멍에서 빼냈다.민재가 옆에 앉아 입히는 걸 도와줬다.거의 다 입혔 을 때 갑자기 질문이 들렸다.
"혹시 이 친구가 게이야?"
”딜도 있다고 그런 오해 하지 마.여자 친구랑 쓰려고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애널용이던데.”
내가 아무리 과거에 영어 까막눈이었다가 최근 들어 유창한 영어 사용자가 되었더 라도예전부터 애널의뜻은알고있었다.여자랑할때뒤로하는걸좋아하는어떤미 친놈이 매일 애널,애널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탓에 강제 학습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앤디한테 비슷한 게 있었어.”
앤디라는 사람은 정보가 하L棒| 늘 때마다 새로운 충격을 줬다. "뭐, 애널용이라도 여자가 쓸 수도.......”
”딜도 아래에 게이 잡지도 있었어.”
"응, 게이야.”
순순히 답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남수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었다.아이고, 깜짝 010�.
"야, 너 일어났어?"
"누구세요?"
"
"
-연애의 반쪽-
169 / 181
빌어먹을 취객 발로 밟아주고 싶으나 저번에 당한 게 있어서 주먹만 쥐고 일어섰 댜
"너 쨌으니 난 간다.”
''권희찬.”
우민재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남수가 날 불렀다.뭐야, 제정신 돌아온 거야? "당신 권희찬 닮았네.”
”닮은 게 아니고 권희찬 남......"
"헤혜, 잘생겼다.”
남수가 해맑게웃었다.머리가 산발이라 못난이가 따로 없었다.이 자식이 친구도 못 알아보고 잘생기니 좋다고웃다니.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가렸다.내 앞에 선 우민 재가 날 뻔히 봤댜
"왜?"
"네 친구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난데없는 질문을 왜 저리 서늘하게 물어봐?
’'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되나 봐.아까도 길에서 싸우는 거 같더라.그래서 술 마신 거 니까 너도 이해해라!'
"애인이 있다고?"
“아직 애인은 아닌 것 같고.......아이 씨, 나도 잘 몰라.좋으면 지가 알아서 잘 사귀 겠지.야, 근데 좀 떨어져서 말해.”
왜 바로 코앞에 서서는 긴장하게 만드냐. 뒷말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우민재는 딴생각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아직 애인은 아니란 말이지.......'
-연애의 반쪽- 170 / 181
이런 소리를 한 것 같은데.뭐, 별 뜻은 없겠지.지금은 어서 술꾼의 집에서 탈출하는 게 중요했댜 녀석이 계속 잘생긴 사람을 외쳐대고 있으니까. 친구란 이유로 내가 다 창피했댜 난 힐끔 우민재의 눈치를 봤다. 그는 내내 말이 없다가 차 근처에 다가갔을 때 물었댜
"다른 친구들도 솔로야?"
“오늘 만난 내 친구? 한 놈은 결혼했고, 한 놈은 바로 어제 직장 동료 여직원한테 고 백했다더랴 좋아죽으려고 해.”
“그럼 문제는 저 친구뿐이네.”
남수가 애인 비스름한 사람과 싸우고 술을 좀 마시긴 했지만,문제까지야. 난 고개 를 저었다
"문제는 무슨 좋으면 사귀고,싫으면 안 보겠지.” "싫어도 사귀어야지.”
"뭐?"
"응?"
"너 방금싫어도 사귀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7�?"
갑자기 녀석이 씨익웃었다 쿵.밤인데도 그 미소가 또렷이 보였다. 씨발, 내 눈깔은 저 녀석 한정 야광인가? 왜 저렇게 잘 보여.
"별 뜻 아니야.저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니 마냥싫진 않은 것 같아서.도와주고 싶 네.”
"야, 도와주긴 월. 그리고 넌 한남수 모르면서 왜 도와줘?"
그 는 내 말 에 곧장 답 을 하 지 않 았 다 . 대 신 내 뒤 쪽 을 가 늘 게 뜬 눈 으 로 보 았 다 . 그 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남수의 빌라 입구였다.뒤이어 녀석의 답이 늦게 나왔다.
-연애의 반쪽- 171 / 181
"왜냐면 한남수가 너와 아주 친한 친구니까.”
우민재는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빌라 앞으로 걸어갔다.녀석이 멈춘 곳은 어둠에 가려진 구석진 곳이었다.뭐 하는 거야? 뒤따라가려다가 멈칫했다.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가 움직이더니 앞으로 나왔다.어라? 남수랑 싸운 사람 아냐? 그런데 왜 우민재가 저 사람하고?
난 당황해서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채 한 걸음 떼기도전에 우민재가 다시 돌아왔다.남수의 애인은 여전히 빌라 앞에 서서 남수의 방이 보이는 곳 을 을려다봤다.
”가자"
민재가 내 팔을 잡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대체 무슨 일이야? 하지만 설명은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처음 이곳에 남수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누군가 빌라 앞에서 기다리는 걸 봤다고 한다.남수가 취해서 끌려가는 걸 보곤발 동동거리며 안타 까워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설명을 듣고 누구인지 눈치했다고.
“그런데 그 사람한테 무슨 말을 했어?"
“그냥 조언.”
"무슨 조언?"
“그 사람이 네 친구와 잘되는 방법.”
뭐? 그런 방법이 있어? 그러나 녀석은 끝끝내 그 방법이 뭔지 알려주지 않았다.그 저 단순하다고만 할뿐.그런데 그 방법이 원지는 몰라도 얼굴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안 먹힐 텐데.
“한남수는 연애에서 차지하는 50%가 외모인가 봐.” "50%라니?"
난 철환이한테 들은 말을전했다.처음엔 사랑이 100%인 줄 알지만, 다른 걸로 채 워진댜 만약 50%가 희생이면 호구가 되고,집착은 스토커, 의리는 결혼이 된다더라.
-연애의 반쪽- 172 / 181
일부러 사랑 100% 바람둥이는 말하지 않았다.
’'말도안되는논리네.”
우민재는 논할 가치가 없다는 듯 무시했다. 이 자식이,기껏 알려줬더니.
"야, 그럴듯하잖아. 넌 어떤데? 너 연애해봤으니까 네 연애는 어떤지 알 거 아냐.설 마 사랑이 100%야?"
“그건 안 좋은 거야?"
눈치가 귀신이었댜
“아, 뭐, 딱히 그렇진 않고. ”
"카사노바라도 된대?"
"뭐? 카지노?"
“아니.카사노바. 유명한 바람둥이.”
응, 맞아. 할 수 없이 답을 알려주니 그가 '흠’ 하며 허공을 보다 내게 물었다.
"넌 연애에서 사랑 말고 차지하는 게 원데?"
"내가 먼저 물었잖아. ”
"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넌 이미 생각해봤을 거 아냐?"
IIII
"뭔데?"
왜 나만 답하는 게 억울하지? 그러나 나도 바로 답할 필요는 없었다. 차가 내 아파트 근처에서 갑자기 멈췄다.
"왜 그래?"
-연애의 반쪽- 173 / 181
물었는데 우민재는 나보다는 막 옆을 스치는 자동차에 신경을 썼다.밤늦은 시각이 라 도로에는 차가 그리많지 않았다.그 차가 멀리 사라지고 나자 우민재는 다시 차를 움직였댜
“미안. 별거 아냐. ”
"별거 아니긴.저 차 뭔데?"
"몰랴"
몰라? 모르는 차를 왜 신경 쓰는데?
"내 차를 따라오는 것 같아서.”
그의 답에 이제 내가 신경이 쓰였다. "너 미행당할 일 있어?"
"글쎄.“
우민재는 내가싫어하는 답을 했지만 얼굴은 씩웃고 있었다.재수 없는 자식. 속으 론 투덜댔지만, 그의 미소에 얼굴에 열이 올라 고개를 들렸다. 난 왜 이 자식이웃는 것 만 봐도 심장이 떨리지? 들키기싫어서 차가 서자마자 얼른 내렸다.
''권희찬.”
왜? 돌아보니 녀석도 차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내일 볼까?"
“그러지 뭐. ”
"11시까지 너희 집으로 갈게.”
"싫어. ”
난 바로 인상을 썼다.
-연애의 반쪽-
174 / 181
“중간에서 만나. 왜 너만 움직이는데?"
"알았어. 그럼 11시 30분까지, 중간에서. ”
좋아 난 만족하고 집으로 걸어가다가 슬쩍 돌아봤다. 우민재와 눈이 마주쳤다.
"너 왜안가?"
"넌 왜 돌아봤는데?" ”......씨발, 빨리 가랴"
괜히 욕을 내뱉고 집으로 단숨에 걸어왔다. 중간에 돌아보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아 파트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어두운 곳에 숨어 얼굴만 내밀어 밖을 봤다. 그제야 차에 타 는 우민재가 보였다.난 녀석의 차가 떠날 때까지 그렇게 숨어서 봤다.그냥 계속 보고 싶었댜
진정한 휴가의 첫날. 물론 나에겐 철두철미한 계획이 있었다. 시원한 돗자리 위에 누워 TV를 보기로. 이날을 위해 거금을 투자해 마련한 무려 100% 국내산 쥐포도 뜯 어먹을 예정이었댜 아침부터 밤까지 쭉. 물론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는 빼고, 돗자 리와 한 몸이 될 생각이었다.
이건 쥐포를 산 두 달 전부터 계획했고, 이날만을 위해 일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댜 계획의 첫 시작은 낮 12시 넘어서까지 퍼질러 자기였다. 그러나 우민재 덕분에 이 끝내주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난 8시가 되기 전에 번쩍 눈을 떴다. 어제 새벽에 들어와 2시 넘어서 잤는데도 자동으로 눈이 뜨였다.
계획과는 정반대로 돗자리엔 등을 대보지도 않은 채 열심히 움직였지만, 오히려 마 음은 들떴다 아침을 먹자마자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도 벗기고, 집으로 돌아와 청소하 고세탁기도들렸다그러고나니10시.난시계를보며 또원가할게없나집을둘러 봤다
-연애의 반쪽- 175 / 181
장식장을 들어내고 먼지를 치울까? 작은방의 옷장이 창문을 1/3쯤 가리는데 위치 를 바꿀까?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안 그러면 이 두둥실 떠다니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습게도 난 정말 흥분해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소풍날 아침에 일찍부터 일어나 김밥 싸는 엄마를 귀찮게 굴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11시 30분에 볼 우민제가 꼭 소풍 같았다. 그러다가 평생 해본적 없는 고민이 문득 떠올랐다. 참,뭘 입고 나가지? 난 얼른 작은방으로 갔다. 매일 입는 청바지,계속 돌려 입는 티셔츠 몇 벌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평소에 옷차림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아서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 처음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패션에 대해서라면 가장 잘 아는 이에게전화 를 걸었다 제대로 살아있는지 확인이 필요하기도 했고. 잠시 후,전화기 너머 다 갈라 진 남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희찬아」
"살아있냐?"
「차라리죽고 싶다.」
어지간히 속 좀 쓰릴 거다. 남수는 정말로 아픈지 꿍꿍 소리를 냈다.
「진짜 술 좀 그만 마셔야지. 서른 넘으니까 몸이 안 받쳐줘.」
나이가 문제가 아닐 텐데? 난 매번 남수를 술독에 빠트리는 사람을 생각했다. 길에 서 그렇게 싸우고도 걱정돼서 남수 집 앞에서 맴돌던 사람. 좋아하니까 그냥 사귀면 되 지 않나? 얼굴이 그렇게 중요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닐 테고.
「어제 또 네가 나 데려다줬어?」
“그레 넌 또 이 형님한테 빚졌다는 것만 알아둬. ” 「고맙댜 역시 너밖에 없어」
당연하지. 나만 한 사람이 또 어디 있......·
-연애의 반쪽-
176 / 181
「난 진짜 너만 있으면 돼.」
””
「아, 속 아프댜 같이 해장국 먹으러 갈래?」
내가 아무 말이 없으니 남수가 내 이름을 불렀다.그러나 난 답을 하지 않고 잠시 허 공을 보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야, 물어볼 거 있어. ”
「원데?」
“괜찮은 옷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해?"
「월 산다고? 옻? 삼계탕 끓일 때 넣는 옻?」
“아 씨, 그냥 입는 옷 바지, 티셔츠, 뭐 이런 거 말이야.”
「.......」
"야.못 들었어? 삼계탕에 넣는 옻 말고 입는 옷이라고.”
그러고 보니 삼계탕이 먹고 싶네.오늘 먹을까?
「권희찬, 네가 옷을 산다고? 왜? 너희 집 불났어? 옷 다 없어졌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옷이 왜 없어.”
「그런데 왜 사?」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
"넌 옷도많으니까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알지? 좀 추천해봐.”
「.......」
-연애의 반쪽-
177 / 181
“하나人 ,,
느 o-「•.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야?」
남수의 목소리가 어딘지 떨리는 것 같았다.
"응 그리고 남자야.”
「.......」
"야, 왜 말이 없어?"
「그냥 놀라서.하하.......권희찬이 누굴 좋아할 날이 오다니.그것도 남자? 하하, 참, 씨발,존냐.....신기하댜」
나도 신기하긴 하지.속으로 중얼거리는데 남수가 옷 살 곳을 몇 군데 추천했다.다 행히 집 근처에 상설 매장이모인 곳이 있었고, 남수가 바지는 여기, 티셔츠는 여기, 정 장은 여기라며 상호를 찍어줬다.
「지금 사러 가려고?」
"응.11시 30분에 만나는데 바로 사서 입고 가려고.”
「......그래.」
”이 형님이 데이트한다니까 질투 나냐?"
「질투는 무슨! 그냥...... 그냥, 잘됐다.희찬아.」
"잘됐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고, 너나 잘해라.술 퍼마실 정도로 고민되는 사람
이 있으면 진지하게 생각해.”
녀석은 답이 없었다.남의 연애에 끼어드는 건 정말로 내 취미는 아니지만, 이번엔 한마디 더 해주고 싶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연애의 반쪽- 178 / 181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갔다. 나 역시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댜 우민재는 내 감정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착각이면 또 어떤가? 그냥 지금 감정에 충실해서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예를 들면 문을 열었는데 11시 30분어 만나기로 한 우민재가 눈앞에 서있으니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지금 기분조차 말이다. 그 러나 난 절로 혜벌쭉거리려는 입을 간신히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뭐야?"
“일어났네?"
녀석이 의외라는 듯 날 보곤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벌써 나갈 준비를 다 했어?"
“아,뭐,중간에들를데가있어서.너 때문에일찍일어나서목욕탕다녀온거아냐.”
"목욕했어?"
II... ... 냄새나고, 더럽고, 몸이 간지러워서 좀 했다 됐냐?"
나도모르게 말이 까칠하게 나왔다. 아 씨, 이게 아닌데.그러나 집 안으로 따라 들어 오는 녀석을 힐끗 보니 내 투덜거리는 말투는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
"근데 넌 왜 우리 집으로 왔어? 약속도 한참 남았는데. ”
"빨리 보고 싶어서.”
II I .......I
''들를 데가 어딘데? 지금 나가야 해? 데려다줄게.”
난 뻔히 보는 녀석의 시선에 겨우 입을 열었다. 이상했다. 좀전에 녀석이 한 말이 별 것도 아닌데 왜 심장을 쿵,내려앉게 했는지 말이다. 그냥 빨리 보고 싶어서 빨리 왔다 잖아. 그게 뭐라고? 그러니까 진정해,빌어먹을 심장!
"안 가도 돼.”
-연애의 반쪽- 179 / 181
“그래? 중요한 일 아냐?"
중요했댜 그런데 이제 소용없어졌댜 난 괜히 머쓱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야, 근데 오늘 만나면 뭐 하려고 했어?"
"별거 없어.밥 먹거나, 드라이브하거나, 영화 보거나, 아니면.”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거나.”
“그거좋다'
우민재가 씩웃었댜 이번엔 눈도 휘었다.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자 가자,내 숙소로.”
“그냥 내 집에 있어도 돼.”
얼마나 반질거리게 청소도 했는데.그러나 녀석은 현관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긴 안돼“ "왜?" "좁잖o�."
27평이 뭐가 좁아? 여기서 가구만 치우면 축구도 할 수 있겠......·
"내가 섹스에 미쳐서 돌아버리기 딱 좋은 크기야.”
또 생각났댜 동영상 속의 녀석.나체로 발기한 성기를 드러냈던 모습.난 별다른 반 항 없이 현관으로 가는 녀석을 따랐다.
''좀 아쉽긴 하네.돌아버린 널죽도록 팰 기회였는데.”
-연애의 반쪽- 180 / 181
-연애의 반쪽- 181 / 181
-4권에서 계속-
Back to Top